“양을 왜 죽여요? 과일이나 곡식을 하나님께 올리면 되잖아요?”
“양이나 염소는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를 대신 갚아주는 존재야. 그래서 우리 대신 죽었던 거란다.”

 

희생과 살생이 따르는 제사의 역사
아홉 살의 저는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실로 정의롭고 자애로운 분이시라면, 죄 없는 양과 염소를 죽여서 올리는 걸 과연 기뻐하셨을까?’ 계속 떠오르는 이런 의문과 찜찜한 기분을 결코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속죄양’에 대해 품은 의문은, 제가 정신적으로 성장, 정확히는 ‘독립’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어른들 말씀이라고 다 옳은 건 아니야! 모든 것은 내 느낌과 생각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따져봐야 해’라는 제 마음속 울림에 더욱 솔직해진 것입니다. 특정 종교를 비판하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동물 희생 제사가 성경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이후에도 이런 ‘제사’에 대한 거부감을 굳이 거부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사(祭祀)를 국어·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신령(神靈)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飮食)을 바치어 정성(精誠)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儀式)’이라고 나옵니다. 영어사전에서는 ‘Ancestral rites(조상을 위한 의식)’, ‘Memorial service(기념을 위한 의식)’, ‘Ceremony(의식, 격식)’ 등으로 나옵니다. 프랑스어 사전에서는 ‘Rite sacrificiel(희생의 의식)’이라고 그 성격을 밝히고 있네요. 한층 솔직합니다. 이처럼 제사에는 희생과 살생이 따릅니다. 오랜 세월 당연시됐던 인간(주로 여성)의 노동 즉, 희생으로 상이 차려지고 동물의 죽음 즉, 살생으로 그 재료가 마련되니까요.

 

제사상에서 가장 상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저는 상 한가운데 놓인 ‘돼지머리’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최근에는 구하기 어렵다, 비싸다는 경제적 이유와 보기 불쾌하다는 정서적 이유 등으로 점차 사라지는 추세죠. 하지만 제사, 고사(告祀)상에서 돼지머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필수 요소였습니다. 저는 제사상에 놓인, 웃는 표정의 돼지머리를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희생과 살생으로 올린 제사상이 과연 안녕과 행운을 가져다줄까?’ 하는 의문과 함께요.

 

영화 제작 과정에 희생된 동물은 없을까?
상에는 죽은 돼지의 머리가 올라가지만, 굿판에는 살아있는 돼지를 올립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죽인 후 제물로 바치는 이 굿의 명칭은 ‘타살(打殺)굿’입니다. 주로 황해도 지역에서 행해졌고, 동물(주로 돼지)을 죽여 피를 흘리며 죽어간 군웅(軍雄)신들을 대접함으로써 ‘험한 일’을 막으려는 굿이라고 하는데 ‘타살군웅굿’이라고도 합니다. 예상을 뛰어넘은 흥행과 이념 논쟁, 최근에는 동물학대 의혹까지 더해져 여러모로 화제가 됐던 영화「파묘」(감독 장재현)에 나온 ‘대살굿’도 바로 이 ‘타살굿’입니다.

 

「파묘」를 공격하려는 의도는 단연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념 논쟁을 떠나, 영화 속 항일코드에는 박수를 치기도 하면서 영화 자체를 흥미롭게 봤습니다. 하지만 내내 불편했습니다. 돼지, 닭, 은어 등 동물들의 피와 비명, 몸부림이 계속 나오기 때문입니다. 보는 내내 결말보다 훨씬 더 궁금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저 장면은 동물에게 안전하게 촬영된 것일까?’, ‘굿 과정에서 애꿎은 동물들을 죽인다면, 동물 원혼이 보복하지는 않을까?’

 

영화에서는 감독의 변명처럼 들리는 대사도 등장합니다. 귀신에 들린 법사를 구하기 위해 무당들이 닭을 대속물 삼아 죽이려는 장면입니다. 어린 막내 무당이 닭을 죽이기 싫다고 하자, 선배 무당이 “교촌(치킨)은 잘 먹으면서”라고 합니다.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차마 웃지 못했습니다. 동물의 고통, 죽음을 희화화 하는 일종의 잔혹유머로 들렸기 때문이죠. 다른 장소도 아닌 절에서 개가 짧은 줄에 묶여 있는 장면도 불편했고요.

 

저만 그랬던 건 아니었나 봅니다.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가「파묘」 제작 및 촬영 과정에서의 동물학대 의혹을 제기한 것입니다. 다음은 카라가 3월 12일「파묘」제작사에 보낸 공문에 담긴 여섯 개의 질문입니다. ① 촬영 중 다치거나 죽은 동물이 없었는지? ② 실제 동물이 출연했다면, 섭외 및 반환 경로는? ③ 돼지 사체 5구에 칼을 찌르는 장면은 실제 사체였는지, 모형이었는지? ④ 촬영 전후 및 진행 단계에서 동물의 스트레스 최소화, 안전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이 이뤄졌는지? ⑤ 촬영 현장에 수의사 등 전문가가 배치됐는지? ⑥ 동물의 안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는지?

 

제작사는 한 달이 훌쩍 지난 4월 18일에야 답변을 냈습니다. △돼지 사체 5구는 실제 사체로, 축산물 유통업체를 통해 확보 및 촬영한 후 해당 업체에서 회수 △식용 전문 양식장에서 통상 수명을 넘긴 은어를 선별 및 활용했고, 물 밖 촬영 직후 수조에 옮겼으나 일부는 폐사 △수의사 대신 전문업체와 양식장 대표 등 관리주체가 동행했다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권나미 카라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촬영 시 동물사체 이용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촬영 후 법률에 따라 즉각적인 화장이나 적절한 매장방법으로 사체를 처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촬영 후 축산물업체로 돼지 사체를 반환한 것은, 국내 축산물 위생관리법상으로 부적절한 행위다. 정부 측에서 미디어 출연 동물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준수를 의무화해야 안전한 촬영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비건 무당 홍칼리의 제안
저는「파묘」속 무당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사든 굿이든, 모든 의식에서 살생을 없앨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라고요. 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무당이 있습니다. 비인간 동물의 생명권도 중시하기에 살생을 거부하며, 생활의 전 영역에서 비거니즘(Veganism)을 실천하는 비건(Vegan) 무당 ‘홍칼리’입니다.

 

홍칼리는 “동물 희생 굿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무당들이 있다. 이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무당의 본분이기도 하다. 무당은 만물의 신령을 모시는 사람이고, 그 안에는 ‘비인간’인 동물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무당에게 비거니즘은 샤머니즘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지인 무당 중에도 살생 없는 의식을 하는 이들이 있고, 이런 분위기가 확장되고 있다고 덧붙이면서요.

 

저는 홍칼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무당은 만물의 신령을 모시는 사람이니까요. 동물의 생명도 중시하며, 여성들의 노동을 당연시하지 않는 ‘살생과 착취 없는 제사’,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세상. 그런, 소박하지만 엄청난 욕심을 감히 가져봅니다.

김진주 동물권활동가

 

 

「화이트 갓」을 동물권 영화 명작으로 꼽는 이유

 

버려진 개들에 관한 영화「화이트 갓(White God)」(감독 코르넬 문드럭초, 2014)의 주인공은 두 마리의 주연견과 250여 마리의 조연견들이다. 주연 ‘하겐’ 역은 ‘루크(Luke)’와 ‘바디(Body)’ 형제가 2견 1역을 했다. 반려인 릴리와 함께 있을 때는 순했던 하겐은, 사람에게 버려지고 고통받으면서 점점 사나워진다. 바디는 전반부의 유순한 하겐을, 루크는 후반부의 사나워진 하겐을 연기했다.

 

이 형제견 배우는 제67회 칸영화제에서 ‘팜 도그 상(Palm Dog Awards, 칸 국제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뛰어난 연기를 펼친 견공(犬公) 배우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2001년 창설)’을 받았다. 감독 코르넬 문드럭초에게는 ‘주목할 만한 시선상’이 돌아갔다.

 

문드럭초 감독은 조연견들을 전부 보호소와 길에서 섭외했다. 버려진 개들 역할을, 실제로 버려진 개들에게 맡긴 셈이다. 문드럭초 감독은 개들의 연기훈련을 위해 동물조련사 테레사 밀러를 고용했다. 밀러는 경찰견 영화 「케이 나인(K-9)」(감독 로드 다니엘, 1989) 등 여러 영화에서 개와 촬영한 경험이 있는 ‘견공 연기 지도’ 분야 베테랑이다.

 

개들에게 가장 위험할 수 있는 투견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을까? 평소 친한 개들끼리 촬영한 후 인간 성우들이 목소리를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밀러는 “개들이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모든 상황을 6개월에 걸쳐 시뮬레이션한 끝에 최대한 안전을 기해 촬영했다”라고 밝혔다.

 

촬영 후 250여 마리 조연견들은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98% 이상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견들의 안전 촬영과 입양에 대한 내용은「화이트 갓」의 엔딩크레딧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