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에서 「트롯신이 떴다」까지, TV 예능프로그램의 중심에 트로트가 들어섰다. 가히 열풍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젊은 세대에서부터 노년 세대까지 반응이 뜨겁다.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우울 속에서 대중들은 ‘트로트’를 재발견해냈다. 트로트에 쏠린 대중의 관심 저편에 존재하는 것은 위로받고 싶어하는 심리, 그리고 공감의 스토리에 대한 화답이라고 할 수 있다. <KNOU위클리>는 이 새로운 트로트의 귀환에 주목해, 트로트가 급격하게 관심을 끈 현상을 진단하고, 대중문화 전문가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커버스토리를 꾸렸다.
코로나19 때문에 트로트가 한풀 꺾인 게 아니라,
바로 코로나19와 같은 시대의 우울이
나와 우리 주변까지 돌아보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60대 초반의 김 아무개 교사는 뒤늦게 트로트 방송프로그램에 꽂혀 채널을 고정하고 재방송을 시청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최근 코로나19로 모든 게 우울해졌는데, 갑자기 노래가 들려왔다. 이미자도 아니고 주현미도 아닌 젊고 젊은 친구들이 우울을 벗어던지고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인생을 노래하는 게 흥미로웠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도 이미 ‘트로트’는 화제가 됐다고 귀뜸했다.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트로트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TV 채널을 고정해 놓기도 했다.
지난 2018년 5월 25일 부산대 축제장에서 가수 김연자는 자신의 최신 대표곡인 「아모르파티」를 열창했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였기에, 한류 아이돌 가수도 아닌 그가 대학가 축제에 초대됐을 때 어느 정도 이변은 예상됐다. 김연자는 젊은 아이돌 가수들 못지않게 화려한 비주얼과 막강한 퍼포먼스로 축제 현장을 사로잡았다. 그의 대표곡 「아모르파티」가 시작되자마자 축제행사에 참석한 부산대생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트로트가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했다. 그간 트로트는 ‘뽕짝’으로 하대받기도 했으며, 특정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져 주변적인 상태에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 한 종편 방송사의 아이디어 상품으로 출발한 이래 세몰이가 여간 이채롭지 않다. 「미스트롯」에 이어 「미스터트롯」(TV조선)이 인기몰이를 했고, 이에 뒤질세라 「놀면 뭐하니: 뽕포유」, 「나는 트로트가수다」(MBC), 「트롯신이 떴다」(SBS) 등도 흥행대열을 노크했다. 아마도 코로나19 시국이 아니었다면, 거리 곳곳에서 젊어진 트로트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열풍인가? 일시적 현상인가?
최근 트로트 열풍에는 이렇듯 방송사의 적극적인 소비마케팅이 큰 몫을 했다. 단순한 가요 프로그램이 아닌 입체적인 예능프로그램화가 분위기를 돋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대현은 “시청자의 의사를 통해 참여자들의 생존 여부와 프로그램의 서사가 결정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은, 제작진이나 작가에 의해 결과가 고정된 서사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노년층에게 본인들이 직접 권력자가 되어 프로그램의 서사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들 트로트 프로그램이 무엇보다 장·노년층을 새로운 소비층으로 복귀시켰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새롭게 부상한 트로트는 장·노년층만의 애호를 넘어 다른 세대까지 흡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상대적으로 트로트에 관심이 낮았던 10~20대까지 소비층으로 확장했다는 진단도 있다.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지난 2월에 발표한 「노래를 넘어 콘텐츠로 재탄생한 2020 뉴·트롯이어라~」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트로트가 예능과 즐거움, 다양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분석한 이노션의 이수진 데이터커맨드팀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이 트로트의 귀환이 일시적 열풍,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김대현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 역시 이 트로트 열풍이 상당기간 유통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장·노년 세대에게 익숙한 트로트라는 음악적 형식을 매개로 그 동안 문화트렌드에서 소외된 세대들이 서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서사-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소년·청년세대의 아이돌 문화처럼 음악적 취향과 무관하게 상당기간 유통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반면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조금 신중하게 평가한다. 지난달 29일 밤에 방영된 OBS 「명불허전Ⅱ」에 출연한 그는 최근의 트로트 열풍이 아래(대중)에서부터 올라온 것이 아니라 특정 방송 프로그램이 이끌고 있는 것이어서 ‘완전한 열풍’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본지 기고문을 통해서도 “TV가 이끄는 인기몰이는 역사적으로 장기(長期)화하기 어려운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트로트에 ‘부활’의 가능성이 주어진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힘, 스토리와 위로
방송을 타고 무한 질주하는 트로트는 일견 새로운 터를 잘 잡아 정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TV조선이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PD 출신의 유능한 기획자를 영입해 「미스트롯」을 선보인 게 물꼬를 튼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트로트 열풍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 중진 교수의 분석이 흥미롭다. “새로운 플랫폼, 예능, 즐거움 모두 트로트의 인기를 설명하는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나는 최근의 트로트 열풍이 탄생한 근본 배경에는 ‘휴먼 스토리’라는 단순하면서 강렬한 서사의 병행이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라고 말하는 그는 「미스터트롯」의 13세 소년 정동원을 주목했다.
“폐암을 앓다 작고하신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경남 하동의 이들 조손이 보여준 남다른 삶의 궤적과 아픔이 노래보다 더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마침내 가슴을 움직였다.” 완성된 스타가 아니라, 남루한 처지에서 솟구친 소년의 ‘출세기’에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그의 아픔을 어루만지면서 트로트는 더욱 뜨거워졌다는 지적이다.
트로트가 가진 또 하나의 힘은 위로와 위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정희 대구한의대 교수(보건학)는 같은 대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오명규와 함께 쓴 논문 「노래 부르기 활동을 통한 노인 스트레스 및 우울 감소에 미치는 영향: 트로트 노래 중심으로」(<예술심리치료연구> 제15권 제13호, 2019)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표했다. 65세 이상의 경남 밀양시 노인 315명을 대상으로 트로트 노래 중심 노인집단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스트레스와 우울 개선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한 결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스트레스가 17% 감소됐고, 우울점수도 53.4% 줄어드는 유의한 변화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사람들의 왕래를 통제했다. 봄이 왔건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시민들은 어쩌면 트로트에서 출구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남루한 삶을 돌아보게 됐으며, 젊은 세대가 울려주는 창법에 호응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트로트가 한풀 꺾인 게 아니라, 바로 코로나19와 같은 시대의 우울이 나와 우리 주변까지 돌아보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2020년 트로트 귀환의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