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트로트, 새로운 귀환

트로트에는 기나긴 역사라는 지원군이 있다.
서민대중 저 아래로 파고드는 ‘물밑사랑’을 끌어내는
노래라면 지금 상황으로 봐선 폭풍전야나 다름없다.
트로트에 봄이 왔다.

 

 

트로트와 관련해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대목은 ‘우리 대중음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점이다. 시기적으로 양식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트로트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지만 포크송, 로큰롤, 스탠더드 팝, 팝 발라드 등의 장르를 더 기억하고 선호한다. 김민기, 송창식, 한대수의 ‘포크송’, 신중현, 키보이스의 ‘로큰롤’은 1960년대 중후반 싹이 텄고 최희준, 패티김의 ‘스탠더드 팝’은 1953년 한국전쟁 이후 국내 주둔한 미8군과 함께 개화한 음악으로 평가된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말 잉태해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트로트는 상기한 다른 음악들보다 최소한 시작점이 30년 정도 빠르다. 가장 유서 깊은 음악인 셈이다. 오래됐다는 사실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닌다. 먼저 단점은 저 옛날의 음악이다 보니 지금의 새로운 세대와 접점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풍파와 시련
반면 장구한 세월을 거쳐 지금도 살아있는 음악, 이른바 ‘역사성’을 소유한 음악이라는 점은 다른 장르가 넘볼 수 없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지금 불고 있는 트로트 열풍은 이를테면 단점이 내려가고 장점의 상승이라는 측면에서 풀이해야 할 것이다. 어렵다는 ‘젊은층의 관심’이 손에 잡힐 듯 가능해졌고 역사의 힘이 발휘되면서 다시금 트로트는 영원, 불사(不死)의 음악으로 수식되고 있다. 확실히 다수의 음악 인구가 트로트를 들먹인다. 이건 전에 없던 일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다 보니 풍파와 시련도 많았다. 먼저 빠른 친화력으로 기성세대 감성자극에 집중하는 바람에 서구적인 신세대와 거리가 생겨났고 이후 ‘저학력과 가난’ 그리고 ‘중장년과 고령’의 음악으로 연결되곤 했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고속버스 음악’으로 전락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기원을 놓고도 ‘한국 고유의 음악이다’, ‘일본의 엔카(演歌)에서 비롯했다’는 갑론을박이 수십 년간 계속됐지만 아직도 결론을 얻지 못했다.
학계에서는 트로트를 식민지 시대의 비탄 정서를 노린 일본이 퍼뜨린 것이며 당연히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트로트의 고된 숙명이라고 할 ‘왜색’ 시비가 끊임없이 일었고 그 와중에 불미스러운 타이틀인 ‘뽕짝’이란 수식을 얻었다. 그러나 일본 일각에서는 엔카의 원류는 도리어 한국이며 특히 영남 쪽의 민요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주장이 엄존하며 국내 트로트 진영은 “트로트는 명백한 한국 자체의 발전”이라는 거센 반론을 편다.
그럼에도 초기에 세련된 도시 인텔리겐차의 음악으로 통하던 이미지가 이렇듯 극심한 굴곡과 하락을 겪은 음악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비극이다. 트로트는 미국의 춤곡을 가리키는 폭스트로트에서 나온 말로 지금의 트로트 곡조와는 별 관련이 없다. 그래서 용어를 바꾼다고 ‘전통가요’, ‘성인가요’와 같은 어휘를 찾았지만 지금까지도 트로트란 말을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덧 쌓인 한 백년 이력을 어찌 무시할 수 있으랴. 트로트는 그토록 위상이 흔들리다가도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혹자는 우리 민족의 ‘끈기’에 빗대기도 한다. 그 저변에 위치한 것은 다름 아닌 긴 역사요, 바로 이게 트로트의 저력이라고 음악종사자들은 분석한다. 1930~40년대 초창기에 「목포의 눈물」 이난영, 「애수의 소야곡」 남인수, 「타향살이」 고복수 등과 해방 후 「굳세어라 금순아」 현인의 맹활약으로 트로트는 단숨에 주류음악으로 성장한다.
당시 트로트의 라이벌은 바로 민요였다. 민요 진영은 대중화를 기하기 위해 김세레나 김부자, 박재란 등의 ‘신민요’로 맞서지만 결코 트로트를 이기지 못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명절 때면 판소리·민요 진영의 명인들이 텔레비전을 장악했다. 하지만 트로트에 비해 스타 생산력이 떨어지면서 차츰 주류에서 퇴각하고 말았다. 
트로트에는 슈퍼스타들이 있었다. 바로 1960년대에 ‘엘리지의 여왕’으로 통한 이미자였다. 그의 노래는 경제개발시대의 가부장제에 묶인 한(恨)의 여인들을 위로해주었다는 시대적 의미를 띤다. 이미자와 더불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한반도 반쪽을 다시 반으로 갈랐다는 남진과 나훈아의 살기등등한 라이벌전은 트로트의 마지막 전성기를 견인한다.
당시 흥겨운 댄스인 남진의 「임과 함께」와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는 전(全) 세대의 폭발적 지지를 얻었다. 당대에는 남진이 승자였지만 주로 이농(離農)의 아픔과 고향의 그리움을 노래한 나훈아의 생명력이 길었고, 그는 지금도 트로트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트로트는 전과 같은 전성기를 재현하지는 못한다. 젊은 음악인 포크와 로큰롤에 헤게모니를 빼앗겨버린 것이다. 이후부터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소멸의 늪에 빠지지는 않는다.
록을 하는 조용필도 1975년 대박인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말해주듯 트로트를 동원해 성공을 거뒀다. 가왕이란 타이틀을 획득한 1985년에도 그는 3박자 트로트 「허공」을 불러 트로트 소생에 기틀을 제공한다. 1980년대 후반에 와서 「신사동 그 사람」 주현미와 「봉선화 연정」 현철이 가수왕상을 거푸 수상하면서 트로트는 마침내 기사회생의 용트림을 한다. 「그때 그 사람」 심수봉, 「남행열차」 김수희의 분전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에는 현철·태진아·송대관·설운도의 4강 체제를 구축, 트로트의 저력을 행사하지만 너무 오래가는 바람에 신인들의 등장이 더뎌졌고 트로트시장이 더 왜소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판을 다시 바꾼 인물이 2004년 TV 음악순위 프로에서 1위에 오른 경쾌한 트로트 「어머나」의 장윤정이었다. 이후 박현빈·박상철·홍진영과 같은 인기가수가 속속 등장하면서 트로트는 부흥기를 맞는 듯했다.
심지어 아이돌인 슈퍼주니어가 티(T)라는 프로젝트로 「로꾸거」, 빅뱅 출신의 대성이 「날 봐 귀순」을 발표해 트로트의 시장 잠재력을 타진할 정도였다. 그러나 잠깐이었을 뿐 젊은층으로의 확장을 꾀하지는 못했다. 트로트는 다시 잠복기에 들어갔고 10년 이상 K팝의 댄스에 밀려 고사하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 다시 주류 점프의 날갯짓을 펼치며 저력을 행사 중이다.

진정한 열풍이 되려면
면면히 저 밑에서 흐르는 트로트의 파워는 선거 기간에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여전한 트로트의 서민적 흡수력을 의미한다. 압도적 기술문명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한테는 ‘고향’ 같은 음악이 트로트 아니겠는가.
모처럼 돌아온 이번의 트로트 바람은 아직은 세대를 관통하는 열풍으로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생각이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같은 텔레비전 프로의 인기로 머무를 소지도 없지 않다. TV가 이끄는 인기몰이는 역사적으로 장기(長期)화하기 어려운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트로트에 ‘부활’의 가능성이 주어진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주류 공간에서 덜 비쳐져 도리어 음악 팬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와 반가움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K팝의 역풍일 수도 있고 트로트의 재발견일 수도 있다. 과연 젊은층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가장 중요한 ‘시장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상기했듯 영 스타들인 슈퍼주니어 티와 대성이 가대중음악 평론가, 팝 칼럼니스트.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Mnet 「볼륨텐」 등 고정으로 출연하는 음악 프로그램도 많지만 방송용이 아닌 ‘글쓰기’에 의한 고전적 평론을 중심축으로 삼으며 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을 운영하고 있다. 역서로는 『존 레논』, 저서로는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록 그 폭발하는 젊음의 미학』,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 『우리대중음악의 큰 별들』이 있다.담했음에도 그 물결이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트로트시장이 허약하고 불려나가기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진정한 열풍으로 번지려면 판을 전복할 만큼의 큰 히트곡 하나와 장윤정을 넘어서는 화제의 인물이 필요하다. 송가인과 임영웅에게 기대치가 높지만 젊은층도 호응할 실시간 차트 히트 레퍼토리가 나와야 할 것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가 코로나19로 식는 느낌도 있다. 모든 것을 떠나서 트로트에는 기나긴 역사라는 지원군이 있다. 서민대중 저 아래로 파고드는 ‘물밑사랑’을 끌어내는 노래라면 지금 상황으로 봐선 폭풍전야나 다름없다. 트로트에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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