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호소하거나 떨림의 창법을 구사하는 것은 바로
자기 삶의 진정성을 전하기 위해서다.
살아온 세월이 많을수록 상처와 회환을 많이 쌓게 되는데,
트로트가 이를 어루만지고, 풀고, 위로해줬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트는 트로트가 아니다. 이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느낌이 든다. 르네 마그리트가 자신의 그림에 적은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모방해서가 아니다. 원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트로트와는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기에서는 트로트가 아님에도 이해의 편의를 위해 트로트라고 이름한다.
사람들이 트로트에서 어떤 위안을 받았는지 생각하려면 트로트가 유행가라는 점부터 복기해야 한다. 처음부터 트로트는 전통가요가 아닌 대중가요였다. 대중음악 소비층이 형성되는 시기와 맞물려 출발했으며, 유성기 등 대중 미디어를 통해 유통됐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트로트는 하나의 상품이었다. 상품은 승리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전통 민요나 노동요와 다른 점이다. 선택받기 위해 분투하는 음악은 계속 변화하는 음악 선호에 부응해야 한다. 그만큼 사회적 상황이나 세대 정서에 맞게 트로트가 변화해왔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시대에 따라 사람들은 변화하는 트로트에서 위안을 받았던 것이다.
일단 음악 문화의 흐름을 보면, 초기의 전통 창법은 미국의 폭스트로트 춤곡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당시 문화 유행을 주도했던 일본의 음계가 받아들여졌다. 이 일부 음계 때문에 일제 잔재 시비에 시달렸지만, 그것은 유행에 따른 융합 현상일 뿐이었다. 트로트는 더 이상 일제 시대 엔카 류의 노래로 통하지 않게 됐다.
대중의 희노애락과 함께
시대별로 대중이 원한 음악적 요구는 달랐다. 1928년에 「황성옛터」가 대중가요 1호로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기 때문이다. 1935년 「목포의 눈물」은 겉으로는 개인의 이별과 슬픔을 담은 듯하지만 나라 없는 이들의 고통을 담아냈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도 트로트는 대중의 희노애락을 담아냈다. 이촌향도의 산업화 시기인 1960~70년대는 특히 지역성과 토속성이 결합돼 팍팍하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서민의 애환을 대변했다. 1980년대 고도 성장기를 반영하듯 도시적 감성이 개인화되는 생활 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부상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드디어 밝고 경쾌한 젊은 감각의 트로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 이상 한의 정서를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랄한 곡들이 대세를 이뤘다. 트로트가 엔카류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면 이는 트로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방증할 뿐이다. 트로트는 끊임없이 외부와 융합하면서 트렌디한 요소를 결합시켜 왔다. 예컨대 탱고, 지루박, 맘보, 스윙, 재즈, 발라드, EDM 등 해외의 다양한 음악들을 녹여냈다. 이를 통해 침체기와 부흥기가 교차했다.
이제는 트로트가 위안을 주는 기본 특징을 보자. 트로트가 팬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격하게 감정을 호소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목소리를 떨기도 한다. ‘뽕끼’라 칭해지는 청승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창법은 이런 감정의 공유를 지향한다. 너무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격조를 찾는 이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데 적절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더욱 그렇다. 감정에 호소하거나 떨림의 창법을 구사하는 것은 바로 자기 삶의 진정성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트로트가 좋아진다고 말하는 것은 일리 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살아온 세월이 많을수록 상처와 회환을 많이 쌓게 되는데, 트로트가 이를 어루만지고, 풀고, 위로해줬다.

트로트는 21세기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접근성이 용이하다. 쉽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대리 충족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같이 어울려 부르기도 쉽다. 서로의 마음을 감정이입하고 공명하는 데 복잡할 이유는 없다. 다른 노래들과 달리 오랜 기간 음악적 트레이닝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단순한 박자에 쉽게 느낄 수 있는 리듬감을 필수 요소로 지닌 데다가 쉬운 가사가 반복되는 멜로디이기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하기에 충분했다. 즉 트로트는 예술인 척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듣는 트로트에서 보는 트로트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스탠딩 자세에서 가창력에 의존해야 했다. 표정도 단순했다. 하지만 가수의 캐릭터가 좀 더 대중에게 어필하는 시대가 됐다. 외모는 더 귀엽거나 섹시해졌고 안무도 더 많은 동작을 접목시켜 나갔다. 트로트가 버라이어티하게 변화한 것이다.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등처럼 대중과 교감하고, 상호 리액션을 많이 할수록 더욱 호평받게 됐다. 이 때문에 인간적인 면모나 태도를 보이는 트로트 가수일수록 장수했고 각종 예능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류의 테크니션을 멋지게 날려버린 송가인이 젊은 나이임에도 진중한 트로트와 트렌디한 트로트를 오가면서도 예능에서도 각광을 받는 이유다.
트로트가 다시금 주목받는 데는 아이돌 음악의 편중성과 복잡성 그리고 그에 따른 소외된 이들의 응집이라는 원인도 있다. 요즘 아이돌 음악은 혼자 노래를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파트별로 멤버들이 나눠서 부르고 따로 피처링을 곁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통제감 상실 상태로 접어들게 했다. 하지만 트로트는 스스로 언제든지 가창까지 가능하다. 복잡성과 분할성이 강할수록 개인의 효능감은 떨어지고 만다.
사회적으로 무력감에 시달리게 하는 무한경쟁시대에 온전히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힐링이다.
젊은 세대들이 주목한 이유
최근 젊은 세대까지 트로트에 주목하게 된 것은 감정의 솔직함과 개방성의 힘 때문일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 그리고 90년대 생들은 자신의 느낌과 취향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공유하는 것을 원한다. 다만, 그들은 예전의 트로트 장르처럼 한이나 고통에 젖은 분위기의 노래를 원하지 않는다. 일본 중년층에게서 인기를 끌었던 김연자가 EDM 트로트인 「아모르 파티」를 발표하면서 아이돌들조차 흥겹게 따라부르는 노래의 주인공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젊은 세대에게 고통과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것 자체를 ‘웃프게’ 받아들이면서 극복하려 한다.
트로트가 재미와 웃음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단순한 유희 차원에서가 아니라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요즘 세대 불문의 인기곡인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이나 영탁의 「니가 거기서 왜 나와」
등은 시사적이다. 비록 신나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지만, 시대의 정서와 개인들의 애환을 절묘하게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해 보이면서도 재미로까지 승화시켜 삶의 새로운 동력을 얻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트로트는 트로트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마차가지다. 솔직성, 직접성, 개방성의 코드는 오히려 21세기 디지털 코드에 맞기 때문에 미래에도 더욱 트로트는 위안받을 사람을 위한 문화적 변신을 해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