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방송대에 코로나19로 개강이 연기된 대학에 콘텐츠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방송대가 재조명받고 있다. 양질의 국립대 콘텐츠를 48년 된 노하우와 우수한 인프라로 제공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본질은 가려져 있다. 코로나19로 고등교육의 위기가 닥치니 국가 시스템이 필요해 방송대가 부각됐고, 국가로부터 도움도 요청받는 상황이다. 코로나19는 개교 50주년을 목전에 둔 방송대에 기회일까, 위기일까? 방송대 교수 4인에게 그 답을 물었다.
“경직된 관료 문화 벗어나 新기술 시도해야…매체연구소 설치 시급”

코로나19가 종료되면 세상이 확 바뀔 거다. 노인들이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월급이 줄어도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니 사회 틀이 바뀐다는 이야기다. 온라인 교육 시대에 방송대는 이 틀을 바꾸는 준비를 하고 있나? 방송대 조직구성원의 상당수는 공무원이다. 뷰로크러시(bureaucracy, 관료제)로 똘똘 뭉쳐 의사결정은 미루고 책임회피에 급급하다면, 방송대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2012년 구글 지수를 도입하려 했지만 반대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8월 도입했지만, 보급도 제대로 안 되면서 결국 흐지부지됐다. 방송대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정보기술 내지는 정보화 기반 측면에서 방송대만이 보유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도 아니라면 보편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는 정보기술을 선도입이라도 해야 할 텐데, 경직된 관료제 아래서 선례, 예산,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교수들도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방송대에는 강의를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 콘텐츠 품질이 좋다고 하는데, 이제는 교수가 강의안을 읽는 수업은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소리만 전달되는 강의라도 석학의 강의를 원한다는 말이다. 대학의 근원적인 경쟁력은 석학을 얼마나 보유하는가에 달렸다.
지금은 방송대의 기회가 아닌 위기다. 방송대가 지금까지 온라인 교육 준비를 해왔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반 오프라인 대학이 온라인·화상 강의 메커니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방송대가 대규모 학생을 이유로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 온라인을 통한 선행학습 이후 오프라인 강의로 교수와 토론하는 ‘역진행 수업 방식’)이 어려웠다면, 일반 소규모 대학은 가능하다. 방송대가 구글 등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타 대학은 더 가볍게 적용하는 온라인 강의를 시도하고 있다.
방송대가 코로나19 사태 전 구글 행아웃이나 줌(화상회의 시스템) 등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봤다면? 작금의 사태에서 국내 모바일 러닝, 온라인 수업의 표준을 방송대에서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방송대의 위상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리딩 그룹으로도 자리잡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방송대에 매체연구소를 설치해야 한다. 매체연구소의 연구로 방송대가 온라인 교육 국가 표준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로드맵을 펼쳐야 한다.
“등록금 올리더라도 학생은 쌍방향 교육 원해”
방송대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혼자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학생이 학교로부터, 교수로부터 방치된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걸로 끝이다. 코로나19가 방송대에 기회이기도 하면서 위기인 이유다.
양질 교육의 핵심은 무엇일까? 학생이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교수가 동영상 강의에서 지식을 쏟아내는 걸로 끝이 아니라 교재·수업 관련 어려움을 질문하고 피드백을 받는 기제다. 방송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취약하다. 어떤 교수는 게시판에 달린 질문에 한 달에 한번 몰아서 답변을 달기도 한다. 질문에 답이 없으면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기도 한다. 2000년대만 해도 잠재적 학생이 많았다는 이유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다른 대학은 코로나19 사태를 그들의 교육시스템을 혁신하는 계기로 활용할 것이다. 동영상 강의 관련한 기술적인 부분은 1~2년 내 충분히 따라잡을 것이다. 이제 온라인 강의는 오프라인 대학에서 하나의 중요한 보충 교육 도구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방송대가 기존의 교수학습 틀을 유지한다면 위기다. 방송대는 최근 3년간 튜터 축소 문제를 비롯해 출석수업을 대체할 쌍방향 온라인 소통 시스템이 지금까지도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다. 중어중문학과장을 하던 2016년에 20명이던 튜터가 올해는 6명이다. 튜터 운영기간도 단축했다. 교육부에 기획재정부를 설득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인건비성 예산은 불허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학생 입장에서 정말 소통할 수 있는 기제가 사라졌다. 온라인으로든 오프라인으로든 만났던 학생 모두가 등록금 올리더라도 튜터제도를 제대로 서비스해달라고 요구했다. 등록금을 올리더라도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게 학생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은 12년째 동결 상태다. 방송대 등록금은 상해·북경 오픈 유니버시티 등록금보다 30% 저렴하다. 방송대가 △국립대 △원격교육 △성인대상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평생교육을 실천하려면 적어도 물가상승률을 적용한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 방송대 전체 예산에서 국고 보조 비율은 35%선이다. 등록금 인상이 됐든 국고 보조 비율 상향이 됐든 새로운 시도를 못 한다면, 학생 감소 추세를 돌려세울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에 오히려 과감한 투자와 혁신이 필요하다.
“우수한 고3 끌어올 ‘콘텐츠 플랫폼 방송대’ 고민해야”

방송대는 이제 ‘콘텐츠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온라인 시대에는 콘텐츠가 좋아야 방송대가 산다. 서울대가 온라인 대학을 출범한다고 상상해 보라. 가격 경쟁력 덕분에 방송대는 당장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먼저 방송대 콘텐츠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방송대 강의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타 대학 강의를 방송대가 제공할 수 있다면? 대학 간 협력이 가능하다면? 타 대학이 방송대 플랫폼을 활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200명도 채 안 되는 교수진으로 콘텐츠 싸움에서 이기기는 어렵다. 당장 수만 명 국내 교수, 수십만 명 해외 교수들과 어떻게 경쟁이 되겠나?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대의 기존 지역대학 중심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지역대학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프라인 수업방식을 지양하고, 온라인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출석수업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짜지 말고 교육콘텐츠를 더 제공하도록 전환해야 한다. 콘텐츠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학생이 자유롭게 여러 강의를 교차 수강할 수 있다. 출석수업도 1학점(15시간)을 별도로 운영해서 학점을 부여할 수 있다. 등록금이 싸서 아무나 올 수 있는 대학이 아니라 우수한 고3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이 돼야 한다.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일방적인 강의 듣기가 아니라 상호작용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거칠게 말해 월요일은 국문학, 화요일은 통계학 등 이런 식으로 주 45시간이 돌아가는 방식도 고민해볼 수 있다. 온라인 출석수업 별도로 하고, 화상회의 방식 등을 이용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걸 확보해야 한다.
타 대학 강좌 제공에 따른 채점 등 소소한 문제들을 모두 교수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교수 수가 중요한 건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확충할 필요는 있지만, 방송대가 모두 다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새로운 전환의 시기에는 반대가 많다. 방송대가 진정한 의미에서 ‘오픈 유니버시티’(open university)로 바뀌는 것에 대해 구성원들의 두려움이 있다. 고령 학생은 신기술 도입에 거부감이 있다. 하지만 결국 이들도 모바일 체제에 적응했다. 기술이 사람의 일을 대체하기도 해 일자리 위협도 있다. 조화롭게 추진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기술은 언제든 따라갈 수 있다. 방송대 혁신을 위한 동력과 합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은 도구일 뿐…37만원 10만명 일방향 교육 벗어날 때”
방송대의 기능과 역할이 과거에는 20만 명이 넘는 인원에게 고등교육을 제공하고, 대학을 못가는 사람에게 교육기회를 줬던 ‘한(恨)의 교육’이었다면, 그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70% 아래로 떨어지긴 했지만, 대학이 특권이었던 시대가 지났고, 방송대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부닥쳤다.
코로나19로 발생하는 방송대에 대한 요구는 두 단면으로 보인다. 첫째는 국립대인 방송대가 제작하는 콘텐츠가 일정 부분 우리 사회의 기준을 충족한다는 점을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다른 단면은 ‘저렴한’ 플랫폼이다. 37만원짜리 대학.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그만둘 수 있다는 값싼 대학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방송대는 이 두 가지 모순되기도 하고 충돌되기도 하는 측면, 즉 국립대니까 양질일 것이라는 점과 저렴하다는 점을 딛고 기술 혁신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처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구현할 것인가다. 어떤 사회적 기능을 할 것인가. 이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 하고, 체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37만원 등록금으로 10만명에 대한 일방향 교육을 지속할 건지, 국가보조든 등록금 인상이든 비용이 들더라도 투자해서 양질의 콘텐츠와 교육체제를 만들어갈 것인지가 중요한 부분이다. 그게 방송대의 핵심역량이 될 것이다.
사회체제가 있고, 고등교육체제(대학 생태계)가 있고, 또 방송대라는 원격체제가 있다. 이 세 가지 체제를 모두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기술은 세 체제 모두에서 작동한다. 구글, 줌, LMS 등 방송대에서도 기술이 작동한다. 기술은 구현의 요소일 뿐,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대는 남들은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줌도 구글도 좋지만 이건 외부 기술이니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 만병통치약이 될 것이라는 접근은 오류를 발생시킬 여지가 많다. 방송대는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다. 기술은 구현해내는 수단일 뿐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체제가 명확하지 않은데 기술이 먼저 들어오면 매번 부딪힌다. 도구가 먼저 이야기돼서는 안 된다.
방송대 재학생 수는 계속 줄어 10만 명 아래다. 향후 인구구조로 볼 때, 지금의 교육체제로 방송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이 획기적으로 늘 가능성은 많지 않다. 어느 시점이 되면 방송대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줄어들 것이므로 대학 내에서도 돌파구 찾자는 움직임이 생길 것이다. 그때 미리 우리가 어떻게 예측하고 준비할지, 어떤 기술이 접목돼서 어떤 교육을 구현해낼 수 있는가가 방송대의 키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