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파빌리언」(1929) -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작품으로, 유명한 근대 건축물 중 하나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지난 세기 우리 건축계는 양적 공급과 보편적 수준의 확보라는 과제에 매달렸다. 최근 그것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게 되자 지역의 특성과 문화 그리고 정서에 부합되는 수준 높은 건축을 논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건축은 갖가지 형태적 실험을 했지만 인간의 마음과 정서를 담아내려는 노력은 미미했다. 높이 솟은 세련된 닭장 같은 건축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린 지난 세기 동안 도시에서 자연은 축출됐고 공동체는 사실상 붕괴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건축계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새로운 건축이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근대건축과 탈근대건축
20세기 전반은 건축이 그간의 역사주의 건축에서 벗어나 기능주의 건축을 추구한 시기다. 건축의 목표와 관심이 ‘형태’에서 ‘공간’으로, 지역의 특수성에서 전 세계적 보편성으로 옮겨졌고 그 결과 장식을 배제하고 철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단순한 조형의 국제주의양식 건축이 전 세계를 풍미한다. 이러한 근대건축운동의 핵심적 추진체는 근대건축국제회의(C.I.A.M.; Congre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였다. 1928년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주동이 되어 결성한 이 모임은 당시 사회 문제를 기계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방식의 건축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우리나라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뒤 이러한 근대건축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근대건축운동의 정신을 이해하고 따르기보다 르코르뷔지에나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 같은 근대건축 거장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형태 언어들을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건축과 도시 문제에 주목하고 그 해법을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는 시도보다는 주로 근대건축의 형태 특성과 스타일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한국의 20세기 건축은 한계를 드러냈다.
우리 사회는 20세기 후반까지 국제주의건축의 보편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채 그와 반대 방향으로 일렁이는 탈근대건축 혹은 포스트모더니즘건축이라는 또 하나의 사조를 만난다. 건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처음 사용한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는 그것을 ‘건축을 언어로 간주하고 그 의사전달의 정도를 높이기 위하여 엘리트 코드(elite code)와 대중 코드(popular code)를 모두 사용해 건물을 이중 코드화(dual coding)하려는 건축’이라고 정의했다. 대중소비사회인 후기산업사회의 시대상황에서 태동된 포스트모던건축은 1960년대에 싹을 보였고 1970년대에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과거의 익숙한 건축에서 형태 언어를 차용하는 특성을 보였다. 이는 1980년대에 우리 건축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우리 건축의 고유한 특성과 서양건축의 근대성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일정한 자극을 제공했지만 서구 포스트모던건축의 외양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우리 전통건축의 요소를 섣불리 차용함으로써 한국의 포스트모던 건물들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근대건축과 탈근대건축
20세기 전반은 건축이 그간의 역사주의 건축에서 벗어나 기능주의 건축을 추구한 시기다. 건축의 목표와 관심이 ‘형태’에서 ‘공간’으로, 지역의 특수성에서 전 세계적 보편성으로 옮겨졌고 그 결과 장식을 배제하고 철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단순한 조형의 국제주의양식 건축이 전 세계를 풍미한다. 이러한 근대건축운동의 핵심적 추진체는 근대건축국제회의(C.I.A.M.; Congre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였다. 1928년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주동이 되어 결성한 이 모임은 당시 사회 문제를 기계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방식의 건축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우리나라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뒤 이러한 근대건축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근대건축운동의 정신을 이해하고 따르기보다 르코르뷔지에나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 같은 근대건축 거장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형태 언어들을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건축과 도시 문제에 주목하고 그 해법을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는 시도보다는 주로 근대건축의 형태 특성과 스타일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한국의 20세기 건축은 한계를 드러냈다.
우리 사회는 20세기 후반까지 국제주의건축의 보편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채 그와 반대 방향으로 일렁이는 탈근대건축 혹은 포스트모더니즘건축이라는 또 하나의 사조를 만난다. 건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처음 사용한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는 그것을 ‘건축을 언어로 간주하고 그 의사전달의 정도를 높이기 위하여 엘리트 코드(elite code)와 대중 코드(popular code)를 모두 사용해 건물을 이중 코드화(dual coding)하려는 건축’이라고 정의했다. 대중소비사회인 후기산업사회의 시대상황에서 태동된 포스트모던건축은 1960년대에 싹을 보였고 1970년대에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과거의 익숙한 건축에서 형태 언어를 차용하는 특성을 보였다. 이는 1980년대에 우리 건축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우리 건축의 고유한 특성과 서양건축의 근대성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일정한 자극을 제공했지만 서구 포스트모던건축의 외양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우리 전통건축의 요소를 섣불리 차용함으로써 한국의 포스트모던 건물들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