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옥렬의 미술로 읽는 세계사

 폴록의 추상 미술이 칸딘스키와 말레비치를 벗어나 그만의 독창성으로 인정받는 지점은 바로 드리핑이라는 제작기법, 즉 액션 페인팅이었다. 대재앙이나 전쟁은 삶 자체뿐 아니라 삶을 투영하는 모든 것을 새롭게 정의하게 만든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에 역사적 흐름은 영웅을 예고한다. 그리고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지각변동이 이뤄진 시기를 꼽자면 바로 제1차, 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시기 유럽중심의 미술이 미국으로 대이동을 했다. 이러한 변동은 예술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진행됐다. 2020년 현재, 포스트-코로나에 내일의 역사는 어디를 향할지 이 난세에는 또 어떤 영웅이 도래할까.  세계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전쟁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 물자를 보급해서 세계 최고의 채권국으로 호황을 누리던 미국은 거대 자금을 투입해 산업시스템을 갖추고 대량생산을 추구했다. 내수뿐 아니라 제1차 대전의 후유증으로 유럽의 국가들 역시 해외 구매능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주가폭락으로 은행과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대량실업으로 경제의 악순환이 시작됐다. 미국의 대량생산과 패전국인 독일의 바닥난 재정 그리고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은행들이 파산함으로써 세계경제는 대공황 상태였다. 세계 각국은 경제공황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1933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스벨트는 경제 회복을 위해 뉴딜정책을 추진했다. 수정자본주의 이론을 받아들여 사회 보장법을 만들어 고용을 늘리고, 과잉 생산을 조절하는 정책을 통해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정부는 라틴 아메리카 시장까지 개척해 ‘달러 블록’을 형성하고 소비 증가를 이끌었다. 영국과 프랑스도 자국과 식민지를 하나로 연결하는 ‘파운드 블록’과 ‘프랑 블록’을 형성해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세계 경제 사이클의 변수는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회복됐던 미국경제는 대공황으로 경기가 하락하고 가계도 무너졌다. 전쟁을 경제 질서의 붕괴와 재산 손실만으로 나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전쟁도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었기에 서둘러 평화조약이 맺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의 남은 불씨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동아시아에서도 수백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전화 속에서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인명 손실과 물질적 비용을 통계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정치뿐 아니라 장고한 문화예술의 역사가 유럽 중심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러한 전환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이뤄진 전위적인 미술이 미국 뉴욕으로 이동한 데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추상미술의 영웅 잭슨 폴록의 탄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피카소, 호안 미로, 시케이로스의 영향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의 농가에서 태어나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했다. 1930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활동이 시작됐다. 대공황 시절에는 공공사업진흥국 연방미술사업계획에서 화가로 일하기도 했다. 이 시기 폴록은 멕시코의 3대 벽화가 중의 한명인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1896~1974)를 만나면서 새로운 미술에 눈을 뜬다. 이후 그는 당시 미술계의 유력한 후원자 페기 구겐하임을 만나 1943년 뉴욕의 금세기 화랑에서 초대 개인전을 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폴록은 존경하는 화가인 피카소와 호안 미로(Joan Mir, 1893~1983)의 주제의식과 시케이로스의 기법을 통해 그만의 방식으로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을 시도했다. 그의 액션페인팅은 미국의 추상미술 그리고 미술계의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예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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