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공주가 독이 든 사과를 먹는 장면을 유독 좋아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도 순수한 여자가 죽을법한 방식으로 독 묻은 사과를 한 잎 베어 물고 죽었다. 그를 기리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비 내리는 날, 그의 집을 급습하는 경찰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의 동상은 지금 유럽과 미국의 공과대학 건물 앞에서 서 있다.
필자가 칼럼 원고를 쓰는 것도 다 그의 덕분이다. 예전엔 원고지에 펜으로 쓰던 것을 지금은 노트북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24시간마다 바꾸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 연합군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도왔고, 종전을 앞당기면서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를 줄이는 데 일등 공신이었다. 기계가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산할 수 있는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도 썼다. 이 논문은 우리가 지금 쓰는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한 천재의 생각과 행동 덕에 우리는 지금 혁명적 변화를 일구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1952년 그는 동성애(당시엔 ‘품위유지 위반죄’)로 재판에 회부됐다. 징역형과 에스트로겐 처방 중에서 선택하라는 벌을 받았다. 그는 에스트로겐 주사를 선택했다. 일종의 화학적 거세를 택한 것이다. 그 결과 여성 성징(性徵)인 가슴이 나오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는 사과의 도움(?)으로 1954년, 42세에 사망했다.
20여 년 후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회사를 내면서 과일가게로 오인할만한 이름을 지었다. ‘애플’이다. 게다가 회사 로고 역시 온전한 사과가 아니라 한 입 베어낸 사과를 택했다. 잡스의 머리에는 그를 기린다는 생각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이 사과가 ‘앨런 튜링의 사과’다. 잡스가 선택한 사과에는 한때 무지개 색깔을 입혔다. 동성애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퀴어 축제에서 무지개 깃발이 등장하는 이유다.
사과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로 인간은 실낙원에 따른 삶의 고난을 필연적으로 겪게 됐다. 남자 목젖의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가리키는 ‘아담의 사과(Adam’s apple)’는 실낙원 원죄의 징표란다. ‘뉴턴의 사과’로 인간은 물질의 세계를 이해하게 됐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폰 노이만 등이 뉴턴의 사과에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역학의 ‘중첩 현상’과 ‘얽힘 현상’을 적용한 양자컴퓨터의 개발로 이어지는 것도 알고 보면 사과 덕분이다. 폴 세잔의 식탁 위의 사과로 우리는 빛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다. 세잔의 이런 기법에 영감을 얻은 피카소가 큐비즘을 탄생시켰다. 20세기 최고의 화가인 피카소는 세잔의 세례를 받곤 메타언어를 통해 대상을 해체와 재편집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세잔은 내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라는 교훈을 남겼다. 이처럼 이전에도 사과는 인류 역사를 바꾸는 데 등장했다.
튜링의 사과는 제3차 산업혁명에 이어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빅데이터 분석, 유전자공학, 자율주행 자동차 등이 기업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것이 확실하다. 산업혁명은 과학기술혁명이 선도하고 과학기술혁명은 지식혁명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역할은 산업혁명이 아니고 지식혁명을 주창하고 이끄는 데 있다. 그러나 요즘 대학은 산업혁명만을 외치면서 지식혁명의 토대를 다지는 일을 외면하고 있다. 실용 학문(?)이 돈벌이에 도움 된다면서 대학들이 시장의 좌판을 깔듯이 실용 과목을 배열하고 행인들을 향해 전단지를 배포하는 모습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혁명의 본질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뒤집는 거다. 이론적 근거는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에 나와 있다. 가치관을 뒤집는 지식혁명의 본질은 기존의 틀을 해체하는 상징어인 살부(殺父)다. 20세기 모더니티의 출발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고 미래도 기존의 틀을 해체하는 데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출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없다.
잡스의 슬로건 중에는 ‘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되자’가 있다. 혁신과 도전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공하려면 규모가 크고 관료적인 해군보다 작고 민첩한 해적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상식의 반란을 일으키는 잡스 철학의 뿌리는 인문학이다. 지금 대학에서는 실용 학문에 밀려 인문학은 뒷전에 있다.
튜링이 사망한 후 55년이 지난 2009년 영국 정부는 튜링에게 공식적으로 사과(謝過)했다. 2013년 12월 23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를 특별사면했다. 2019년엔 50파운드 신권화폐의 인물로 선정됐다. 55년 만의 사과는 ‘튜링의 사과’가 인류에 끼친 엄청난 영향을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역사의 피륙은 참으로 더디게 짜인다.
이런 것을 보면서 사과 속에 있는 씨앗은 누구나 셀 수 있지만, 씨앗 속의 사과는 아무도 셀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어쩌면 인간이 지닌 인지체계의 한계일는지도 모른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