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초쯤인가 위클리의 기자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학부도 방송대를 나오고 대학원도 방송대 대학원을 나온 연유를 물었고, 신·편입생 모집에 맞춰 새로운 이들에게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를 해야 공감을 얻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미사여구 없이 나의 지나온 이력을 있는 그대로 말 하는 게 가장 공감을 얻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0년대 학번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나 역시 군부독재에 맞서 운동권으로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 때문에 최종학력은 4학년 1학기 제적이 전부다. 이 미완성 최종학력을 달고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중장비 기사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운동권으로 활동하다 대학에서 제적됐다.
중장비 기사로 살아오다가 방송대를 만나 대학원까지 마쳤다.
나는 지금 새로운 꿈에 도전하고 있다.
마흔일곱살 되던 해, 나는 ‘싱글대디’ 13년차였다. 아이들은 직장으로, 또 대학으로 내 품에서 떠나갔다. 나는 홀로 남아 강아지와 대화를 하면서 일상을 무료하게 보내던 때였다.
매일의 일상은 특별한 일이 없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이런 가운데 2006년도에 행정학과에 편입했다. 태백·정선에서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2010년에 어렵사리 졸업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추억이 생각나 다시 대학원 진학도 꿈꾸게 됐다.
그런데 왜 방송대냐고? 방송대는 장점이 많지만 그중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선택의 기로에서 선 나에게 주저없이 결단을 내리게 했다. 일단 등록금이 싸다. 일반대학원 등록금은 아이 둘을 키우며 감당해내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로 생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커리큘럼이기에 부담 없이 지원할 수 있었다.
방송대 슬로건이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인데, 나는 그 말에 딱 부합되는 사람이다. 나는 ‘추가합격’으로 간신히 방송대 대학원에 합격했다. 12기 원우회 활동을 하면서 아들 둘을 둔 싱글맘 직장인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바로 그해 2012년에 결혼식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 ‘원 플러스 원’이면 혹하는 세상인데 ‘투 플러스 투’가 됐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아내는 아직 자기가 손해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졸업식 때 교수님들이 공부하려고 대학원 온 줄 알았더니 연애만 한 것 같다며 박장대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나는 아직도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방송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강원대 경제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지난 봄에는 저널에 소논문도 등재했다. 지금은 박사학위 논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꿈꾸던 것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아마도 머지않은 날에 현직 포크레인 기사이면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양기현’을 보시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쯤엔 살아온 세월 속에서 축적된 삶의 지혜를 후배들에게 좀더 온전하게 전달하는 모습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