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시작한 공부니까 순간순간이 행복했어요. 서울과 필라델피아의 시차도 있었고, 가게 일도 많아서 한국에 가서 몸살 하고 미국에 돌아와서 몸살을 앓았죠. 1학기 시험을 보고 돌아오면서 마음이 흔들렸는데, 제가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스님께서 입학을 했으면 졸업하는 게 중요하고, 힘들지 않은 공부는 없다고 하면서 졸업을 강조하시더군요. 그래서 이 악물고 버틴 거죠.”
8월 26일 2019학년도 후기 졸업식이 열린다. 여느 대학의 졸업생과 달리 방송대 졸업생에겐 모두 가슴 울리는 저마다의 깊은 사연이 있다. 1982년 미국으로 이민했던 이재숙 학우(국문 4)에게도 그런 뭉클한 이야기가 있다. 이메일과 카톡으로 그를 만났다. 
이민 34년 만에 ‘방송대 공부’ 도전
1958년, 낙동강이 흐르는 경남 창녕군 남지읍에서 4남1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어렵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대학을 가야 한다고 권유해준 이가 없어 고등학교 공부를 끝으로 사회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1982년 큰오빠의 초청으로 온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필라델피아에 정착했다. 최초의 정착지이자, 지금까지 그가 삶을 이어오고 있는 제2의 고향이다.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 땅을 밟는다고는 하지만 그에겐 단순한 생활공간의 이동이었을 뿐이다. “아메리칸 드림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미국 생활은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일의 연속이었죠. 사회활동 같은 건 생각도 못했어요. 자영업을 했기 때문에 일에 파묻혀 살아야 했으니까요.”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탓에 그는 한국의 소식에도 어두웠다. 그가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은 이민 25년만인 2007년이었다. 그때도 ‘방송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가 방송대를 알게 된 것도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인 강숙례 학우(청소년교육학과 졸업 후 지금은 중어중문학과 1학년 재학)의 소개와 권유로 2016년 2월 무작정 방송대에 입학했다. 그가 다니고 있는 사찰의 주지 스님도 적극 권장했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다듬어지고, 이성을 기르는 힘이 생긴다. 장사만 하면 이윤을 남기는 생각만 하게 된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대학 공부를 해보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오히려 제가 알던 방송대 교수님께서는 필라델피아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가 어떠냐고 하셨지만, 저는 매일 사용하는 영어로는 공부하고 싶지 않았어요.”
자영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영이나 회계 등 실용 학문을 선택했을 법한데 그는 국어국문학과를 택했다. 인문학과 가장 가까운 과목이라고 생각해서다. 입학은 했지만, 시간에 쫓기는 자영업 종사자다 보니 모든 게 막막했다. 그래도 조금씩 길이 보였다. 그가 방송대 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 지인들은 그의 용기에 부러워하기도 했다.
비행기 일등석에서 공부하기도
방송대 공부야 원격교육이라 시간만 내면 따라갈 수 있지만, 문제는 시험이었다. 1년에 두 번 기말시험 때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한국을 드나드는 비용도 의외로 쉽게 해결했다. 그간 가게 물건 값을 신용카드로 지불하면서 쌓아뒀던 마일리지가 유용하게 쓰였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일등석을 타고 다니면서 비행기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어요. (웃음) 궁리 끝에 알아낸 방법이었는데, 모두 다 방송대 덕분이죠.”
기말시험을 위해 때에 따라
서울과 부산에 머물러야 했기에 체제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삯이야 마일리지로 해결한다지만 머무는 동안 지출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는 이걸 ‘휴가 비용’이라고 역발상을 했다. “휴가 비용이라고 생각하니 아깝지 않더라고요. 등록금도 비싸지 않아서 도움이 됐고요. 사실 장학금도 받긴 했지만, 항상 제가 내는 등록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고마운 거죠.”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중도 포기 유혹에 시달리는 것도 방송대에선 흔한 일이다. 그렇지만 서울·부산과 필라델피아를 오가야 했던 이재숙 학우는 포기를 몰랐다. 1학년 1학기 시험을 마치고 힘이 들어 잠깐 흔들린 것을 제외하면, 그는 쉬지 않고 내달렸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모국어’ 단어들을 많이 까먹었던 것도, 특별히 공부하는 요령에도 밝지 않았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게 돼 가슴 벅차”
그런 그에게는 힘이 되어 준 이들이 많다. 그에게 방송대를 소개한 친구의 가족들이 많은 부분을 도왔다. 과제물을 위한 자료를 챙겨주기도 했고, 힘들어 하면 용기를 내라고 격려도 해줬다. 특히 부산 해운대에 살고 있는 고향 친구 ‘경희 씨’가 많은 도움이 됐다. 집을 통째로 내주면서 공부할 여건을 만들어 줬다. 이재숙 학우는 이분들이 그 어떤 물질적인 도움보다 큰 자산을 만들어준 분들이라고 말한다.
“1년에 두 번 기말시험을 보러 한국으로 가야 하는 점이 불편했지만 감수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성과가 있었다고 확신해요. 언제든지 제가 원하는 시간에 훌륭한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었는데, 오히려 개인교습을 받는 것 같아서 흐뭇했어요. 방송대의 원격교육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학습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방송대 공부를 하면서 힘들면서도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공부를 하면서, 강의를 듣고 책을 보면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와 만나서 공감을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4년 내내 새 학기를 맞을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새 책을 받아도 가슴이 뛰었다. “과제물을 해낼 때마다 뿌듯했어요. 이런 모든 과정들이 저를 더욱 단단하고 멋있게 변화시키는 요인들이라고 생각해요. 이 나이에 방송대 공부도 해냈다 싶으니 자신도 생겼고요. 누가 저를 알아주는 것보다도 제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할 수 있게 돼 가슴이 벅찹니다.”
8월 26일 이후면 그는 이제 ‘방송대 졸업생’이 된다. 졸업 후에 무얼 하겠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런 답을 들려줬다. “졸업한다는 생각이 없어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강의 듣는 것을 생활화하고 싶어요.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하잖아요. 방송대 공부를 해낸 것은 어떤 것이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훈련이었다고 평가해요. 졸업할 수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학교 교수님들과 주변 분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이재숙 학우가 어떤 새로운 도전에 나설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