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 기획 ‘다시 평화의 눈으로 DMZ를!’

양구에 가면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지금은 분단으로 끊기고 사라진 길이 됐지만, 과거 풍류를 즐기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 길을 따라 금강산 유람을 떠났다. 서울에서 포천, 철원을 지나쳐 금강산으로 갔던 길에서 그들은 시(詩)와 글(書), 화(畵)를 남겼다.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은 철원 ‘용화동(龍華洞)’에 터를 잡고 ‘진경문화(眞景文化)’의 요람을 만들었고, 그의 제자 겸재 정선은 당시 강원도 금화현감이었던 사천 이병연(川 李秉淵)의 초대로 이 길을 갔다. 그 길에서 정선은 아름다운 한반도의 금수강산을 화폭에 담았고, 이를 본 그의 스승 김창흡과 벗 이병연은 글과 시를 남겼다. 그렇기에「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은 그들의 우정과 소통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걸었던 길은 더 이상 없다. 남북의 분단과 군사적 대결이 그들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들을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김창흡이 은거했던 용화동의 산등성이는 나무들이 자라지 않는 벌거벗은 산이 됐고 저수지는 녹물에 오염되고 말았다. 금강산 가는 길은 한탄강의 거센 협곡을 가로지르는 낡은 교량으로 남은 채, 무성한 수풀과 철책선에 가로막혀 있다. 포탄에 스러진 진경산수의 흔적김창흡의 호는 삼연(三淵)이다. ‘삼연’은 세 개의 연못이라는 뜻으로, ‘삼부연(三釜淵)’의 별칭이다. 이 삼부연폭포는 산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데도 아래에서 보면 마치 용이 승천하듯이 좌우로 가늘고 긴 몸을 비틀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삼부연폭포를 실견한 겸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답게 ‘마치 도끼로 쪼개내듯 붓을 쓸어내려’ 그리는 ‘부벽찰법(斧劈擦法)’을 사용해 3단 폭포의 흐름을 하늘로 솟구쳐 오르듯 호방하면서도 장쾌하게 그려냈다. 아래쪽 봉우리 끝과 떨어져 내린 물줄기를 따라 들어선 소나무숲은 ‘먹을 잔뜩 머금은 붓을 눕혀’ 그린 ‘먹칠법’을 사용했다. 폭포 뒤편 겹겹이 들어선 용화산의 산봉우리들을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에 폭포수 아래 연못을 강조하고, 폭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매우 작게 그려 봉우리에 대한 경외감을 극대화했다.「해악전신첩」그림 21폭의 하나인「삼부연」이 바로 그 작품이다. 삼부연폭포 오른쪽 뒤편은 겸재의 스승 김창흡이 은거했던 용화사(龍華寺)가 있는 ‘용화촌’이다. 김창흡은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아버지 김수항이 죽자 약관 27세에 가족들과 함께 용화사에 은거했다. 그 후 ‘용화동’은 진경문화의 요람이 됐다. 하지만 그들을 품었던 용화동은 분단과 냉전체제 하에서 완전히 파괴됐다. 오늘날 용화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삼부연폭포 인근의 ‘용화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낡은 터널 하나가 더 있다. 1973년 육군 공병대가 뚫은 ‘오룡굴(五龍窟)’이다. 이 굴은 원래 민간인의 왕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용화동저수지 마을 뒤편의 명성산 산등성이 일대가 군부대들의 포 사격 ‘피탄지(彼彈地)’가 되면서 군부대의 입·출입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50여 년 전부터 용화동 저수지 마을 뒤편의 산등성이는 갈말읍 문혜리 및 동막리 포사격장, 동송읍 장흥리 Y진지, 연천군 다락터 포사격장 등에서 실시하는 사격훈련의 표적지가 됐다. 포탄에 맞은 용화동 마을 뒤편 산등성이는 하얗게 맨살을 드러내고 있으며, 용화동 앞 저수지는 사격장의 탄피에서 흘러나온 빨간 녹물에 오염돼 갔다.용화동저수지는 1960년 기존의 자연 소류지(沼溜地)를 확장해 만든 인공저수지로, 삼부연폭포의 힘찬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물들의 저장소다. 하지만 불과 3~4년 전만해도 마을 사람들은 꼬리가 굽은 기형 물고기가 잡히는 등 ‘수질이 오염됐으며 주민들이 알 수 없는 질환을 앓고 있다’면서 역학조사를 요구했었다. 지금은 정비돼 청정마을을 내세우지만 포탄에 파괴된 산은 여전하다. 이렇듯 군사적 긴장과 대결이 지배하는 냉전적 분단 질서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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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pp***
    한편의 드라마 같은 역사를 잘 보고 갑니다. 새록새록 읽었던 기억들이 살아납니다. 감사합니다.
    2020-10-07 11:23:34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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