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말에서 읽는 한국인의 심층

‘나’는 따로 하는 것이면서, 함께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낱낱으로서 따로 하는 ‘나’를 ‘저’라고 부르고,

다른 것과 함께 하는 ‘나’를 ‘우리’라고 부른다.
이때 ‘저’는 저마다 따로 하는 닫혀 있는

 ‘작은 나’를 말하고,
‘우리’는 다른 것과 더불어서 함께 하는 열려 있는
‘큰 나’를 말한다.

 

말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공동체가 공유한 말은 공동체의 정신을 일정하게 담아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들, 나, 너, 우리라는 말은 한국인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지만, 그 기원은 아직도 깜깜하다. 나아가 묻다, 따지다, 풀다와 같은 동사들이 빚어내는 의미의 다양한 풍경은 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개념어보다 형용사와 같은 수식어가 발달한 우리 말모이에서 주요 개념어들과 용언의 기원과 그 활용을 통해 한국인의 심층을 짚어보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KNOU위클리>는 20회에 걸쳐 한국학자인 최봉영 교수의 연재 ‘우리말에서 읽는 한국인의 심층’을 통해 이러한 말의 시간적 변화와 함께 변화의 밑바닥에 유지되고 있는 한국인의 심층을 진단하고자 한다.

옛사람들은 깊고 넓게 묻고 따져서 ‘나’, ‘사람’, ‘물’, ‘불’, ‘풀’과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람은 옛사람이 어떻게 묻고 따졌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말의 쓰임뜻만 배우기 때문에 뜻이 얕다고 생각한다. 옛사람들이 어떻게 깊고 넓게 묻고 따져서 이러한 말을 만들어 썼는지 알게 되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우리 모두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 한국말의 말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져서, 한국 사람의 바탕을 찾아가는 일을 해보고자 한다. 

나-따로, 그리고 함께
한국말에서 ‘나’는 ‘나다’ ‘낳다’, ‘내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나다’는 어떤 것이 나는 것을 말하고, ‘낳다=나+히+다’는 어떤 것이 나게 되는 것을 말하고, ‘내다=나+이+다’는 어떤 것이 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절로 ‘난 것’이면서, 어버이가 ‘낳은 것’이면서,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같은 것이 ‘낸 것’을 말한다.
‘내’가 ‘나’를 절로 난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낱낱이 저마다 따로 하는 것이다. 저마다 따로 하는 낱낱의 ‘나’를 바탕으로 삼아서 ‘나’는 숨을 쉬고, 손발을 놀리고, 생각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러한 낱낱의 ‘나’를 잣대로 삼아서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을 나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어버이가 낳은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낳은 어버이와 함께 하고, 어버이가 낳은 형제와 함께 하고, ‘내’가 어버이로서 낳은 자녀와 함께 하고, 어버이와 어버이를 통해서 누리에 이미 있었거나, 지금 있거나, 앞으로 있을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나’를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같은 것이 ‘낸 것’으로서 보게 되면, ‘나’는 다른 모든 것들과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낸 해와 달과 물과 불과 흙과 바람 따위와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에서 비롯한 풀과 나무, 벌과 나비, 개와 돼지 따위와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는 따로 하는 것이면서, 함께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낱낱으로서 따로 하는 ‘나’를 ‘저’라고 부르고, 다른 것과 함께 하는 ‘나’를 ‘우리’라고 부른다. 이때 ‘저’는 저마다 따로 하는 닫혀 있는 ‘작은 나’를 말하고, ‘우리’는 다른 것과 더불어서 함께 하는 열려 있는 ‘큰 나’를 말한다.

사람-살려서, 살아가는
‘나’라는 말은 저마다 따로 하는 ‘나’를 일컫는 말이다. ‘제’가 ‘저’를 일컬을 때만, ‘나’라고 말한다. 이런 까닭으로 수없이 많은 말 가운데서 ‘나’라는 말은 오로지 ‘내’가 ‘나’에게만 쓸 수 있다. 그런데 ‘나’를 일컫는 나의 이름은 ‘나’도 쓸 수 있고, ‘너’도 쓸 수 있고, ‘남’도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나’만이 쓸 수 있다.
누군가 ‘나’라고 말할 때,이종상은 오랫동안 한국의 심상을 형상화하는 데 앞장서 왔다. 최봉영 교수 역시 한국말을 통해 한국인의 바탕을 찾는 작업을 해왔다. ‘나’는 사람인 ‘나’를 가리킨다. 사람만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내’가 ‘나’를 알아가는 것은 사람인 ‘나’를 알아가는 일로써 이뤄진다. ‘내’가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의 바탕인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한국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살다’는 사는 일을 말하고, ‘살리다’는 ‘살+리+다’로서 살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사람과 살리다의 옛말을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은 살리는 일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풀과 나무, 벌과 나비, 개와 돼지와 같은 것도 사람처럼 살아가는 일을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사람’만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만이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 불, 흙, 채소, 곡식, 광물, 소리, 말과 같은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한다.
한국 사람은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살림살이’의 임자를 ‘나’라고 말한다. 따라서 ‘내’가 ‘나’라는 사람이 되는 일은 ‘내’가 살림살이의 임자로서 나름과 줏대를 갖추어가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내’가 살림살이의 임자로서 나름과 줏대를 갖추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사람의 잣대가 무엇인지 또렷이 알아야 한다.
한국 사람은 ‘사람’의 잣대를 ‘사람다움’에 두었다. 이러니 걸핏하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다움을 잣대로, 사람답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어서 좋음과 싫음, 옮음과 그름, 맞음과 틀림 따위를 달리한다.
한국 사람이 사람의 잣대로 삼는 ‘사람다움’은 ‘사람’과 ‘다움’으로 이뤄진 말이다. ‘사람다움’에서 ‘다움’은 ‘다 하다’, ‘다 되다’를 뜻하는 말이다. ‘사람다움’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진 본디의 가능성을 ‘다 이룩함으로써’, ‘다 되어진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행과 복과 은과 덕과 약
한국 사람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이 잘 이뤄지면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하다’라고 말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하게 되는 일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러니 행복해지기 위해서 도리어 불행으로 내닫는 이들도 생겨나게 된다.
사람들이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잘하려면, 살려서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갖가지 것을 고루 그리고 두루 갖고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좋은 몸, 좋은 머리,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연장, 좋은 집, 좋은 이웃, 좋은 나라 따위를 가지고 살고자 한다.
한국 사람은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갖가지 것을 바탕으로 행(幸), 복(福), 은(恩), 덕(德), 약(藥)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말이 어떠한 뜻을 갖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① 행(幸): ‘행(幸)은 어려움에 놓여 있는 사람이 살리는 힘을 가진 어떤 것을 만나서,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다른 사람이 그를 건져내어서 목숨을 잃지 않게 됐을 때, 사람들은 ‘다행(多幸)’이라고 말한다.
② 복(福): ‘복(福)’은 사람이 저를 살리는 힘을 가진 어떤 것을 받아서 누리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부모나 조상과 이웃과 같은 사람이 베풀어주는 ‘복’을 받아서 누리기도 하고, 해, 달, 물, 불, 흙, 풀, 나무, 개, 돼지와 같은 것에서 비롯하는 ‘복’을 받아서 누리기도 한다.
③ 은(恩): ‘은(恩)’은 사람이 저를 살리는 힘을 남에게 빚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이 남에게 ‘은’을 빚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남에게 ‘덕’을 베푸는 일에 눈을 뜨게 된다.
④ 덕(德): ‘덕(德)’은 사람이 살리는 힘을 가진 것을 베풀어서, 남이 받아서 누리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남에게 ‘덕’을 베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먼저 남에게 베풀어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져야 하고, 다음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더라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없으면, ‘덕’을 베푸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⑤ 약(藥): ‘약(藥)’은 사람이 몸이나 마음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몸이나 마음을 살리는 일에 쓰는 것을 말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년이 넘도록 학계에서 개념을 다듬어서 이론을 만들면서 우리말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과 한국문화에 관심을 둬왔다.『한국문화의 성격』,『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한국인의 사회적 성격』등을 썼다.사람들은 몸이나 마음을 고쳐서 낫게 하는데 쓰는 약을 ‘치료약’이라고 말하고, 몸이나 마음의 힘을 키워서 스스로 낫게 하는 약을 ‘보약’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행’을 만나고, 많은 ‘복’을 받고, 많은 ‘은’을 입고, 많은 ‘덕’을 베풀고, 좋은 ‘약’을 먹더라도, 그것을 누릴 수 없으면 어떠한 쓸모도 없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은 누리는 힘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갖가지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잘 살려서, 고루 그리고 두루 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글 싣는 차례(1~10회까지)

① 나와 사람
② 몸과 마음과 머리
③ 하늘과 바다, 해와 달과 땅
④ 물과 불, 바람과 흐름
⑤ 나비와 벌, 파리와 잠자리, 쓸개와 파래
⑥ 물음과 따짐과 풀음, 깨침과 익힘과 배움
⑦ 아름과 그위와 아름다움
⑧ 느낌과 얼임, 여김과 알음
⑨ 임과 아님과 바뀜, 참과 속임과 거짓
⑩ 이지와 이다, 이야와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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