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대갈등이라는 유령

한국 사회에 세대 차이를 넘어 세대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교육, 문화, 소득, 가치관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빠른 시대 변화와 이를 받아들이는 세대 간 속도·온도 격차가 크게 작용한다. 지난 2년간 생산된 데이터의 양은 유사 이래 생산해낸 양의 9배. 하루에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양도 8제타바이트(ZB)에 이른다(2GB짜리 영화 4조 편 분량). 후배·자녀 세대가 겪은 유년 시절은 선배·부모 세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다. 과거에 갇힌 ‘꼰대’와 불신에 갇힌 ‘요즘 것들’의 갈등을 개인 성향의 차이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세대 충돌이 갈등 양상으로 빚어질 수 있는 일터에 주목했다. 차이와 충돌은 결국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와 관련해 첨예한 갈등 양상을 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2면에서는 한국 사회 세대갈등의 원인을 부의 불평등한 분배 측면에서 분석한다. 그렇다고 세대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3면에서는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세대의 역동적인 이야기를 만나본다.

hoxy… 나도 ‘꼰대’?

영국 공영방송사 <BBC>는 지난해 9월 23일 ‘오늘의 단어’로 재벌, 갑질에 이어 ‘KKONDAE’(꼰대)를 소개하며,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 풀이했다. 꼰대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비꼬는 신조어는 많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 틀딱(틀니한 노인을 비하), 할매미(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 연금충(나라에서 주는 노령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을 비하) 등의 속뜻을 듣고 나면, 고령사회로 질주하고 있는 한국에서 노인 인권이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네 젊음이 네 노력으로 받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은교」(정지우 감독, 박범신 원작, 2012)에 등장해 유명해진 미국 시인 시어도어 루스케의 말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독일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세대를 ‘인간의 생물학적 리듬에 기반을 둔 사회적 위치’라고 주장했다. 세대는 중요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며, 유사한 의식·태도·행위 양식 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인구학적으로 연령집단을 나누는 코호트 분석을 하지만, 같은 연령대라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세대론을 일반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세대갈등 중에도 직장 내 세대갈등 양상은 매우 뚜렷하게 표출되는 편이다.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했던 성장 위주 시대에 직장생활을 한 윗세대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생활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남편 부재라는 문제의식이 없던 시절이다. 하지만 최근 아랫세대들은 연봉이 높은 직장보다 정시퇴근이 가능한 직장을 선호한다. 저성장시대에 자신을 회사에 ‘갈아 넣어도’ 또 다른 부속품으로 대체될 뿐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기에, 가족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팀장은 야근하고 막내는 칼퇴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가 지난 4월 발표한 ‘직장 내 세대갈등 진단보고서’(30개 기업 1만3천여 명 설문조사, 126명 심층면접)에 따르면, 직장인 63.9%가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갈등의 표면적 원인은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진출로 꼽힌다. 1980년대부터 2000년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가 지금의 2030세대를 형성하면서 집단주의 성향이 약해지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심층면접을 통한 갈등 상황 분석에서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인식 차는 극명하게 갈린다. ‘정시퇴근’에 대해 윗세대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보고, 아랫세대는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의무 중심으로 생각하는 윗세대가 맡겨진 일을 우선하는 반면, 권리 중심으로 생각하는 아랫세대는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업무지시’에 대해서도 윗세대는 “왜, 어떻게 할지 스스로 생각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라고 말하지만, 아랫세대는 “불명확한 지시에 대해 물어보면 짜증내고, 그냥 하면 멋대로 했다고 화내는 딜레마를 겪느니, 일일이 물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윗세대가 두루뭉술하게 일을 배워왔지만 관행으로 받아들이는 ‘지도(map) 세대’인 반면, 아랫세대는 명확한 지시를 바라는 ‘내비게이션(navigation) 세대’에 가깝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할 지점은 직장 내 세대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바뀐 구성원’을 담아내지 못하는 ‘바뀌지 않는 조직’이라고 지적한 부분이다. 업무 역할과 프로세스가 모호해 개인 간 갈등이 생기고, 혁신·학습이 부족하다 보니 리더가 환경변화를 못 따라간다. 비합리적 평가와 보상은 아랫세대의 적당주의를 부르고, 자율성과 권한위임이 부족하다 보니 윗세대와 갈등한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경직된 기업문화로 세대 벽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젊은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와 386세대가 이룩한 물질적·민주적 토대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저성장시대와 맞닥뜨렸다. 불황의 늪에 빠진 이들을 세상은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국민학교’에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충효의 가치를 배운 세대와 ‘초등학교’에서 민주화된 교육을 받은 세대가 생각하는 방식과 관심사는 다를 수밖에 없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회사를 가족처럼 여기며 고성장을 견인했다고 자부하는 산업화 세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의 지식을 가졌다고 평가받으면서도 정규직 일자리에 목매는 청년 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

 

해체를 택할 것인가, 소통을 택할 것인가

2020년,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세대갈등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지만, 갈등 관리 과정은 첫 단추도 마무리도 ‘소통’이다.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감’ 능력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것, 자신과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이고, 우리는 공감 부족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은 필연적으로 해체 또는 소통을 소환한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법적으로 대응한다면 그 공동체는 소통 대신 해체의 길을 택한 것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대한상의 보고서는 세대 갈등을 넘어서려면 피상적인 리더십 교육이 아니라 조직의 체질을 ‘가족 같은 회사’에서 ‘프로팀 같은 회사’로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조직의 지향점을 프로팀처럼 하면 리더는 프로팀 코치와 같은 역량을 갖추려 할 것이고, 팔로어는 프로 선수처럼 팀에 공헌해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직장 내 갈등관리 전문가인 테미 에릭슨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세대 간 갈등을 다스리는 것이 리더십의 주요 덕목이 됐다”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한 단계 나아가 여러 세대가 융화할 수 있는 근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서로 다른 시간의 고향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한 세대를 이룬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본 각자의 시각을 공유하고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면, 소통과 포용의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서 있는 그곳에서, 바로 지금 시작할 수 있다면…. 시시포스의 돌처럼 끝없이 떨어지며 우리 주위를 배회하는 세대갈등이라는 유령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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