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말에서 읽는 한국인의 심층

한국 사람은 임자가 느껴서 알게 된 온갖 것을 낱낱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곳을 ‘마음’이라고 불러왔다. 마음은 임자가 저마다 나름으로 만들어가는 알음알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말에서 ‘나’와 ‘사람’은 어떤 일에 바탕을 두고서 만들어진 말이다. 예컨대 ‘나’는 ‘나는 일’, ‘사람’은 ‘살리는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과 ‘머리’도 어떤 일에 바탕을 두고서 만들어진 말이다. 낱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몸, 모여서 생겨난 것한국말에서 ‘몸’은 ‘모’, ‘모두’, ‘모이다’, ‘모으다’에 바탕을 둔 말이다. ‘몸’은 낱낱의 ‘모’이면서, 하나인 ‘모두인 것’이고, 하나로 ‘모인 것’이고,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는 낱낱인 하나하나의 것을 가리키고, ‘모두’는 여럿이 모여서 하나의 ‘모’가 된 것을 가리키고, ‘모이다’는 갖가지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모’를 이루는 것을 가리키고, ‘모으다’는 임자가 갖가지 것들을 모아서 하나의 ‘모’가 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나’를 ‘이 몸’으로 일컬어왔다. 예컨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고 말할 때, ‘이 몸’은 ‘나’를 일컫는다. 이두(吏讀)에는 ‘이 몸’을 ‘의신(矣身)’이라고 쓰고, ‘이 몸’으로 읽었다. ‘이 몸’은 ‘나의 몸’으로서, 내가 ‘나’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이 몸’은 아버지 쪽의 ‘몸’과 어머니 쪽의 ‘몸’이 하나로 모여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은 다시 할아버지 쪽의 ‘몸’과 할머니 쪽의 ‘몸’이 하나로 모여서 생겨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나의 ‘몸’은 모든 할아버지 쪽’과 모든 할머니 쪽의 ‘몸’이 하나로 모여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몸’에는 팔, 다리, 배, 가슴, 목, 머리, 마음과 같은 것들이 모여 있다. 이런 것은 다시 손, 발, 창자, 밥통, 허파, 눈, 코, 귀, 입, 혀, 이빨, 느낌, 알음, 기억과 같은 것들이 모여 있다. ‘나’는 이러한 ‘몸’으로써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나고 살고 죽는 일은 나의 ‘몸’에 달려 있다. 나는 ‘몸’으로 숨을 쉼으로써 살아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몸으로 쉬고, 먹고, 놀고, 자는 일을 해야 한다. 마음, 알음알이의 세계한국말에서 마음의 옛말은 ‘마삼’이다. ‘마삼’이 ‘마암’으로 바뀌고, ‘마암’이 다시 ‘마음’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마삼’이 ‘마암’을 거쳐서 ‘마음’으로 바뀌어온 과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어떠한 바탕을 갖고 있는 말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마음’의 옛말인 ‘마삼’은 ‘마사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마사다’는 사람이 어떤 것을 잘게 부수어서, 낱낱의 알갱이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마사다’는 ‘바사다’와 같은 뜻으로 쓰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사다’는 쓰이지 않게 되었고, ‘바사다’는 ‘부수다’로 바뀌어서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 한국 사람이 ‘마음’을 ‘잘게 부수어서 낱낱의 알갱이로 만드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은 눈, 코, 귀, 혀, 살과 같은 것을 가진 임자가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에서 그러한 까닭을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은 함께 어울려서, 온통 하나를 이루고 있다. 작은 것은 작

2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