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 기획 ‘다시 평화의 눈으로 DMZ를!’

한국전쟁 당시 UN군 희생자 4만여 명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육신을 불길 속에 날려 보냈다. 이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에는 국적도, 인종도 없다. UN군 희생자들에게 안식이 있기를! 3년 1개월 동안 이어진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남북 모두에게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계속 유지되거나 심지어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은 남과 북의 전쟁 당사국을 제외하고 UN군이라는 이름으로 총 22개국, 195만여 명이 참여했으며 약 4만600여 명이 희생된 전쟁이었다. 바로 그런 까닭에 한국전쟁이 남긴 역사적 상처와 아픔은 단순히 한반도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보훈처의 기록에 의하면 UN군에 소속돼 참전한 해외 국가들의 군인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한국전쟁 참전국기념비와 전적비(戰績碑) 등은 전국에 67개가 있다. 그런데 경기도 연천에는 그 의미가 분명한 UN군 관련 기념물들이 있다. 흔히 알고 있는 미군과 영국군뿐만 아니라 프랑스, 필리핀, 타일랜드, 터키 등에서 온 군인을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그 동안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했던 생명들의 희생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체감할 수 있는 역사적 공간이 된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자신들과는 상관없을뿐더러, 그들의 의지와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전쟁에 참여하면서 죽어간 이들에 대한 기억과 애도는 정형화된 방식으로만 이뤄질 수 없다. 제일 먼저 세워진 필리핀 참전비남쪽에 세워진 국가 단위의 참전국 기념비는 1966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 기념비가 바로 지리적으로 연천군의 중심에 건립된 ‘필리핀 참전비’이다. 국방부 기록(군사편찬연구소 2005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군의 인명피해는 사망 112명, 부상 229명, 실종 16명이다. 1950년 9월에 공식적으로 참전한 필리핀군이 적군과 벌인 가장 큰 전투가 바로 이곳 연천에서 발발한 ‘율동리 전투(栗洞里戰鬪)’였다. 1966년 4월 22일 UN한국참전국협회와 연천군은 바로 이 율동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필리핀 참전비를 건립했다.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기념비는 2009년 12월에 새롭게 확대돼 조성된 것이다. 기념비가 있는 넓은 공간에 ‘필리핀 참전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새롭게 조성된 1.5m 규모의 기단 위에 비가 세워졌다. 그런데 대리석으로 조성된 기단 위에 놓인 기념비는 과거 1966년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비율빈 참전비’라는 제목과 함께 “자유와 세계 평화를 위해 이 땅에서 공헌한 영웅적인 비율빈 용사들에게 바친다”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필리핀’이라는 익숙한 이름 대신에 ‘비율빈’이라는 낯선 한자어 이름을 통해서 50여 년이 넘는 시간의 숭고한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터키군 추모하는 ‘장승천 전투 전적비’연천군 신서면 내산리로 진입하면 ‘장승천 전투 전적비’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은 필리핀 참전비와 연관이 있는데, 바로 필리핀 참전비가 기념하고 있는 율동리 전투와 같은 날 발생한 연천지역의 또 다른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1951년 4월 22일부터 23일까지 연천 장승천 부근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장승천 전투’라 이름 붙은 이 전투는 미군 25사단에 배속된 터키군이 수행한 전투이기도 했다. 이 전투에서 터키군은 66명의 전사자와 105명의 실종자, 3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장승천 전투 전적비는 터키군이 수행한 장승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2012년에 건립했다. 기념비 상단에는 ‘We remember Turkey’ 및 ‘Kan Kardei Trkiye(혈맹관계 터키)’라는 영어와 터키어가 함께 새겨져 있다. 기념비 하단에는 터키 국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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