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장웅상의 공부야, 놀자

고등학교 때 노자를 처음 만났다. 동양사상 단원에서 노자를 배웠다. ‘다음 중 노자가 주장한 것은?’ 이런 시험문제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답을 쓰기 위해서였다. 노자의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는 게 ‘도(道)’니라, 등 세상사에 초연한 해탈 승 같은 모습이 어쩐지 멋있어 보였다.  이후 영문학과에 입학해 젊은이라면 동양 고전 하나쯤은 읽어야 한다는 말에 ‘어쩐지 멋있는’ 노자의 도덕경을 집어 들었다. 표지를 열자,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란 구절이 나왔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니. 글은 글이로되 글이 아닌 암호 같았다. 대학원에서 다시 노자 강의를 들으며 이 말의 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도는 너무 광대해서 도라는 한 글자로 표현할 수 없으며, 경치가 너무 아름다울 때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노자와 동서양 고전 읽기에 취미를 들였다.  단순한 고전의 정의는 일단 오래된 것, 아직도 유명한 것, 지금에도 의미와 가치를 가진 지혜다. 즉 오랫동안 인류에게 지혜를 주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검증된 진리에 가까운 사상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는 고전을 거대한 시간과 공간을 넘는 대화라고 했다. 공자도 옛것을 익혀 새것을 배우는 공부(온고지신, 溫故知新)로 스스로 고전의 반열에 드셨다. 퀘퀘묵은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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