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 기획 ‘다시 평화의 눈으로 DMZ를!’

파주는 군사분계선(MDL)에 설치된 1,292개의 팻말 가운데 첫 번째 팻말이 세워진 곳이다.하나의 땅이었던 곳에 쇠붙이들이 늘어서면서서로 넘어설 수 없는 경계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파주는 그 넘나듦이 허용됐던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숨가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로 이어졌던 땅의 이야기,갈라져 살아가는 분단이라는 현실은 마음에 닿지 않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일 수 있다.하지만 분단은 두 국가 간의 대립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직·간접적인 상처와 아픔을 남긴다.망향의 한 치유하는오두산 통일전망대자유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왼편에 불쑥 솟은 봉우리가 있다.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휴전선 전망대인‘오두산 통일전망대’다.전망대에 오르면서 쭉 뻗은 자유로를 보면, 막다른 길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의 개성이나 평양에 도달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오두산 통일전망대의 내부 전시는 분단으로 인해 일어난 사람들의 이별과 아픔,그리고 그리움과 통일의 기대감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특히2층에 있는‘그리운 내 고향’이라는 주제의 전시는 예술이 가진 치유(healing)능력을 아낌없이 보여 준다.이곳의 벽면에는 타일 형태의 그림들,약4천여 점이 조각조각을 이어가며 붙어 있다.이 그림 조각들은 실향민들이 그린 그림들로,자신이 떠나온 고향에 대한 기억들을 담고 있다.전시실 안에 설치된 아날로그TV에서는「고향의 봄」이 흐르고 있다.음악은 벽면 서툰 그림 속에 담긴 실향민들의 사연과 공명하면서 더 깊은 향수에 빠지게 한다.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각선 방향의 북쪽 땅이 개풍군이다.날이 좋을 때는 망원경으로 개성 송악산을 볼 수 있다.게다가 전망대 서쪽에는 한강이 흐른다.한강 건너편에는 김포가 있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 너머로는 개풍군이 있다.개풍군 앞쪽에는 강물이 실어다 토해낸 모래들이 넓게 삼각주를 이루고 있다.바다에 이르러 넓어진 강물은 합쳐졌다 나누어지기를 여러 차례 하다 강화도 앞으로 빠져나가는 바다에서 다시 만난다.강은 막히면 돌아가는 길을 만들어 기어이 바다에서 만난다.오늘날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보는 물줄기들은 그렇게라도 남북을 이어줌으로써,서로 분단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고 있는 듯하다.  촛불과 바람개비는 평화누리의 상징이다.바람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바람개비들은 아직은 닿지 않은 평화의 미래가 불어오길 바라는 듯 돌아가며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평화누리의 언덕은 남과 북이 함께 할 수 있는 내일을 만들어 줄,미래로 향해 열린 공간이다. 폐허의 정념,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적과 싸우는 것은‘전쟁의 논리’지‘평화의 논리’가 아니다.그런데도‘전쟁의 논리’가‘평화의 논리’가 되는 곳,바로 그것이‘분단의 현장’이다. ‘자유’나‘평화’라는 것을 위해 우리가 우리의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한다는 역설 속에서 우리 스스로 자유와 평화를 배반하는역설이 작동한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렇게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고,전쟁의 와중에서 서로를 죽이고 죽어갔다.전쟁은 모든 생명을 파괴하는 죽음의 영혼만을 갖고 있기에 거기에 자유와 평화가 있을 수 없다.죽음을 불러오는 전쟁이 남긴 참혹하고도 쓸쓸한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있다.바로 임진각의 장단역기관차 화통이다.장단역 기관차 화통은 원래 비무장지대 안 옛 장단역 구내에 있던 것을2005년 임진각으로 옮겼다.그 후,약2년 동안 보존처리를 거쳐2009년6월부터 임진각에 전시하고 있다.한국전쟁 당시UN군 군수물자를 나르기 위해 남쪽의 기관차들이 개성역 이북까지 올라갔었다.그런데 중국군에 밀려서 장단역까지 내려온UN군은 후퇴하면서 중국군이나 북쪽 군대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이 기차를 폭파했다.따라서 이 기차는 그 당시 운행됐던 마지막 기차였던 셈이다.폭파돼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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