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옥렬의 미술로 읽는 세계사

‘서체추상의 몸과 정신’이란 주제에서 본다면, 프랑스의 미술가인 앙리 미쇼와, 한국인으로서 일본 유학 후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콜라주, 수묵, 유화, 타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태의 문자추상을 발전시킨 이응노의 서체추상은 서로 만나게 된다.서양의 미술은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정형화된 아카데미즘의 회화, 특히 어두운 역사를 주제로 한 그림자를 걷어내고자 했다. 그 자리에 비정형의 미술(informel)로 시대적 아픔을 품으려고 했다. 이 시대적 우울을 담고자 했던 앵포르멜은 미리 계획된 구성을 거부하고 자발적이며 주관적인 표현이 담고자 했던 미술의 한 경향이다. 이는 전후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녹여내는 새로운 미술을 향한 시대적 요청이기도 했다.엥포르멜의 이념이 구체화된 것은 비평가 타피에(Michel Tapi)에 의해서다. 그는 아르 오트르(Un Art Autre(1952)라는 소책자에서 본래 앵포르멜의 근원적인 생명의 징후는 구상, 비구상을 부정하고 ‘생생한’ 포름(forme)에 정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앵포르멜은 2차 대전 이후 단시간에 기존의 미술을 대체하면서 전후미술의 상흔 속에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펼쳐놓았다. 앵포르멜과 먹의 가능성대표적인 화가로는 먹의 가능성을 확장한 앙리 미쇼와 고암 이응노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독특한 추상을 통해 근대 이후의 ‘현대성’의 미술을 변화시키고자 새로운 길을 걸어간 서양과 동양의 두 예술가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문정희 국립타이난예술대 교수는 이응노의 위치를 이렇게 정리했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아시아 미술계에서 모더니즘의 뚜렷한 족적은 추상회화의 수용과 발전에서 나타난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1950년대 후반부터 유럽의 앵포르멜 사조의 유행 전후로 추상회화를 전개시켰고, 이는 바로 한국화단에서 한국적 모더니즘 담론이 등장하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추상회화 조류와 맞닿아 있다. 이 시기에 이응노(1904~1989)는 세계 미술의 국제적 조류와 함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또 다른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예술로 향하고 있었다. 1960년대 이응노의 작품은 유럽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회화인 액션페인팅보다는 오히려 ‘서체(calligraphic)’라는 동양적 근원에서 새롭게 시작됐다고 본다.”(<미술사논단> 제47호. 2016)  당시의 ‘서체추상’은 문자와 추상미술을 결합하는 시도였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시대정신인 ‘현대적인 것’이나 ‘새로운 것’이라는 전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술이 ‘전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요구와 창조적 체험에 의해 그 시대가 지향하는 어떤 이념을 양산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서체추상의 몸과 정신’은 한국의 수묵을 통해 서체추상의 길을 열어 놓은 이응노의 해서와 행서 그리고 초서까지 두루 익힌 자유분방한 필력에 대한 시대정신과 미의식을 인식하기 위한 주제다. 이 주제에서 본다면, 프랑스의 미술가인 앙리 미쇼와, 한국인으로서 일본 유학 후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콜라주, 수묵, 유화, 타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태의 문자추상을 발전시킨 이응노의 서체추상은 서로 만나게 된다.이응노가 1962년 파리화단(폴 파케티 화랑)에서 열었던 개인전은 전위적인 실험의 콜라주 형식의 전서체와 예서체의 작품을 선보인 전시였다.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콜라주 기법으로 폐자재를 활용하고 그 위에 수묵을 엷게 칠하는 새로운 양식으로 파리화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후 시서화를 근간으로 서체추상(calligraphic abstraction)을 통해 예서와 해서풍의 전각 장법(章法)으로 정신성과 조형성이 결합된 작품(콜라주, 1962)으로 발전한다.   앙리 미쇼, 손이 쓰는 내면 추상벨기에 출신의 프랑스 작가 앙리 미쇼(Henri Michaux, 1899~1984)는 시인이자 화가다. 브뤼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학을 공부하다가 포기하고 선원 생활을 했다. 1922년 파리에 정착한 후에 로트레아몽의 시에 심취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1925년부터는 파울 클레와 막스 에른스트 등을 만나 본격적으로 드로잉과 회화작업에 몰두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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