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노동 현실과 워라밸

김병국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실장 : 전국대학노동조합 창원문성대지부장을 거쳐, 전국대학노동조합 사무처장으로서 민주노총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전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2017년 기준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평균 2,069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에 해당한다. OECD국가 평균이 1,763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평균 306시간을 더 일하는 것이다. 독일이 1,356시간, 프랑스가 1,503시간, 일본이 1,713시간인 것과도 너무나도 대비된다.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이므로, 상당수 노동자들의 연 평균 노동시간은 상상을 초월한다.

근로기준법­주 40시간, 현실-주 52시간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지난해에 들어서야 정부가 나서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하도록 강제하기에 이르렀다. 흔히들 주 52시간 노동제의 정착을 외치고 있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1주간의 노동시간을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1일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으면 1주일에 12시간을 한도로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해 초 시행된 정부와 국회의 법률 개정 등의 조치는 단지 기존에 지켜지지 않던 근로기준법을 법대로 지키도록 강제한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이 영위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입법 취지대로 주 40시간 이내의 노동시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주 40시간을 일해도 공휴일과 휴가 등을 제외하고 연간 1,90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주 52시간의 연장노동이 일상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건강권 악화하는 야간노동도 문제
낮과 밤의 일상이 바뀌는 야간노동도 문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야 정상적인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데, 주야 2교대 또는 3교대 근무 방식 등 야간 노동이 일상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야간노동은 여기에 더해 노동자들의 생체리듬을 깨고 수명을 단축시키는 등의 건강권 역시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2011년 회사의 용역 구사대 동원으로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로 사장이 구속까지 되었던 유성기업의 경우,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야간노동을 없애라는 것이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도록 해 달라는 어쩌면 당연한 요구였는데, 노동자 보다는 이윤을 중심에 둔 우리나라 기업과 노동의 현실 속에서 그것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서구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미 100여 년 전에 야간 노동이 철폐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

소득과 임금 그리고 고용 안정성
노동자들이 연장노동과 야간노동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소득과 임금의 문제가 있다. 시간당 임금이 적을 경우 일정 정도의 소득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연장 또는 야간노동을 추가로 더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본급과 각종 수당의 형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체계상 낮게 책정되어 있는 기본급도 노동시간을 늘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 임금수준이 높아져야만 실질 노동시간이 줄어들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는 고용 안정성 증대의 필요성이다. 오늘날 장시간 노동문제의 시작은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정리해고 등 고용불안 상황에서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인력을 덜 쓰려는 기업과 연장노동을 해서라도 임금을 충분히 더 확보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미래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노동자 입장에서는 수입이 보장될 때 연장노동을 감수하고서라도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하려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노동자들이 해고의 불안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고용 안정성의 증대가 필요하다.

‘카톡금지법’ 여전히 계류 중
노동자 보호와 노동 존중을 위해서는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 즉, 업무시간 외에 SNS 등을 통해 업무지시를 법으로 금지하는 일명 ‘카톡금지법’이 2017년 발의되었지만 법안 발의 2년이 가까워 오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국회는 방관하면서 20대 국회 회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오히려, 노동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정부와 국회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불규칙적 노동기간의 확대와 노동자의 건강문제 야기, 실질 임금의 저하를 초래하는 등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가뜩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이다. 탄력근로제가 현재는 일부 업종에만 시행되고 있지만, 단위기간 확대 시 인건비 절감과 이윤 확대라는 기업의 이해관계와 맞물릴 경우 잠재적으로 다른 업종으로 확대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 노동과 일상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누리려면, 정부와 국회가 기업 중심이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과 노동 중심의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 노동 현실이 처참한 상황에 이른 지 오랜 지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진단과 선제적 해결 없이 ‘노동자들에게 준 만큼 기업에도 돌려준다’는 식의 등가적 교환원칙에 입각한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소리만 요란한 실패한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정부 정책의 대전제를 자본과 기업이 아니라 노동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 탄력적 근로시간제=일정기간 내에서 특정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정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노동시간에 맞추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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