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누리 경영학과 졸 : 우리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외대에서 MBA를 마치고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 해에 엄마가 됐다. 그래서 주변 사람뿐 아니라 지하철에서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까지 ‘애가 애를 낳았다’는 무례한 말을 수시로 들었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나에게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성 역할은 한겨울 서릿발 속에 알몸으로 서 있는 것처럼 가혹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앳된 얼굴이나 어린 나이 따위를 고려해 주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가사노동과 육아, 시집살이에 직장 일까지 당차게 감당해내는 나에게 애라니! 애라고 봐주는 것도 없으면서! 요즘 미디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저녁 있는 삶, 워라밸이 이슈다.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았나?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
남편의 일이 잘 안 풀리면서 나는 24세 때 가락시장에서 식육을 유통하는 장사를 시작했다. 자정에 출근해서 새벽 배송을 하고 오후에는 수도권의 음식점에 고기를 배달하는 것으로 일을 마쳤다. 요샛말로 하면, ‘청년창업’에 ‘스타트업’ 게다가 두 명의 어린 아이를 둔 ‘워킹맘’이였다. 열정이 넘쳐서라기보다는 없는 돈에 창업해서 인건비와 배송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16시간 이상 직장에서 일했는데 그중에서 몇 시간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일해야 했다. 처음에는 19개월 된 둘째와 만 3세 된 큰애를 데리고 출근해서, 가게 한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전기 패널 위에서 재웠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대문에 머리를 박으며 우는 둘째를 뿌리치고 출근하는 길 위에서 내내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어린이집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엄마였다. 오후 2시면 다른 아이들은 다 집에 갔지만, 우리 아이들은 3~4시까지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내가 물건 배달을 하러 다니는 2시간 남짓을 자동차 뒷자리 카시트에 메여 끌려 다녔다. 언제 잠을 자고 언제 밥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었다.
나는 여성으로서 별로 살아보지 못했다. 거의 엄마로서만 살아온 것 같다. 자녀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에게 ‘워라밸’이 존재할 수 있기는 한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삶을 ‘워라밸’이라 한다면, 그 저녁은 누가 준비하는가? 또 그것은 누가 치우는가? 그리고 그 식사의 질을 좌우할 가계소득은 얼마나 넉넉한가? 직장은 ‘엄마 직장인’에게 엄마를 쏙 빼고 프로직장인으로서의 직무역량만을 요구한다. 한편, 가정에서는 ‘직장인 엄마’에게 직장을 쏙 빼고 엄마로서의 푸근한 가슴과 보살핌을 요구한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는 한쪽 성(性)에게만 유독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 같다.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으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 있는 가정문화와 사회적 인식이 어서 빨리 자리 잡히기를 희망한다. 이쪽저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직장과 가정 간의 역할 갈등 속에서 죄책감을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수많은 워킹맘의 삶을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어서 빨리 왔으면 한다. 저녁 있는 삶으로 우리 모두의 ‘워라밸’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믿음직스러운 제도적 환경이 뒷받침 된다면 워킹맘에게는 그것이 곧 ‘워라밸’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의 일이 잘 안 풀리면서 나는 24세 때 가락시장에서 식육을 유통하는 장사를 시작했다. 자정에 출근해서 새벽 배송을 하고 오후에는 수도권의 음식점에 고기를 배달하는 것으로 일을 마쳤다. 요샛말로 하면, ‘청년창업’에 ‘스타트업’ 게다가 두 명의 어린 아이를 둔 ‘워킹맘’이였다. 열정이 넘쳐서라기보다는 없는 돈에 창업해서 인건비와 배송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16시간 이상 직장에서 일했는데 그중에서 몇 시간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일해야 했다. 처음에는 19개월 된 둘째와 만 3세 된 큰애를 데리고 출근해서, 가게 한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전기 패널 위에서 재웠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대문에 머리를 박으며 우는 둘째를 뿌리치고 출근하는 길 위에서 내내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어린이집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엄마였다. 오후 2시면 다른 아이들은 다 집에 갔지만, 우리 아이들은 3~4시까지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내가 물건 배달을 하러 다니는 2시간 남짓을 자동차 뒷자리 카시트에 메여 끌려 다녔다. 언제 잠을 자고 언제 밥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었다.
나는 여성으로서 별로 살아보지 못했다. 거의 엄마로서만 살아온 것 같다. 자녀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에게 ‘워라밸’이 존재할 수 있기는 한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삶을 ‘워라밸’이라 한다면, 그 저녁은 누가 준비하는가? 또 그것은 누가 치우는가? 그리고 그 식사의 질을 좌우할 가계소득은 얼마나 넉넉한가? 직장은 ‘엄마 직장인’에게 엄마를 쏙 빼고 프로직장인으로서의 직무역량만을 요구한다. 한편, 가정에서는 ‘직장인 엄마’에게 직장을 쏙 빼고 엄마로서의 푸근한 가슴과 보살핌을 요구한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는 한쪽 성(性)에게만 유독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 같다.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으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 있는 가정문화와 사회적 인식이 어서 빨리 자리 잡히기를 희망한다. 이쪽저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직장과 가정 간의 역할 갈등 속에서 죄책감을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수많은 워킹맘의 삶을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어서 빨리 왔으면 한다. 저녁 있는 삶으로 우리 모두의 ‘워라밸’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믿음직스러운 제도적 환경이 뒷받침 된다면 워킹맘에게는 그것이 곧 ‘워라밸’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