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가 모교가 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가르치는 일보다 배우는 일을 더 좋아했다. 후학들에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고 싶었다.”
15일(월) 오후 2시 나눔관 409호 전인옥 교수실을 찾았을 때, 그의 연구실은 조금씩 짐을 묶어가고 있었다. 연구실 출입문에는 ‘만나기도 어렵지만 헤어짐도 어려워(相見時難別亦難)’로 시작하는 중국 시인 이상은의 한시를 직접 붓글씨로 쓴 작품이 걸려 있다. 전 교수는 이 작품을 신사임당 서예전에 출품해 수상한 바 있다.
전인옥 교수는 1991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년 후인 1993년 5월 방송대와 인연을 맺은 뒤 3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방송대 교수로 살아왔다. 이제는 떠나가야 할 시간인데도 그는 무척 담담했다. “재직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학생들과 소통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었다. 긴 시간을 함께 나눠왔기 때문에 ‘퇴임’의 의미가 지금도,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효학반(效學半)의 교육관 실천
전 교수는 방송대 유아교육과에서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을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전혀 후회가 없다”라고 말하는 그는 ‘교학상장’이 아니라, ‘효학반(效學半)’을 중시하는 교육관을 실천해왔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고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라는 뜻이다.
“그동안 박사학위를 받고 저와 같이 강단에 서는 제자들을 여럿 두었기에 항상 그들과 인생관, 교육관을 서로 나누며 제자들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방송대 유아교육과 교수들이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현균 교수, 김성재 교수, 안명옥 박사, 장훈 박사 외에도 다수의 제자와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지낸다.”
다양한 세대가 소통하며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방송대라는 교육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마중물이 돼 상생(相生)하며,
하나의 공동체로서 대동(大同)하는
생활인의 자세를 지녔으면 좋겠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전 교수는 조금 일찍 다문화를 경험했다. 그가 유아음악교육, 유아동작교육, 유아미술교육, 유아극화교육을 통합해 ‘다문화예술교육’ 분야의 우수한 콘텐츠를 개발해 유아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 방송대 교수로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세계의 전래동요를 활용한 음악·동작교육 프로그램, 다문화 그림책을 활용한 미술·극화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현장 적용’을 꼽았다.
서울대 학부를 졸업했지만, 그는 자신의 모교가 ‘방송대’가 된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2016년 교육과학대학장이 되면서 구체화됐다. 중어중문학과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해 2020년 2월에 졸업한 것이다. 그는 “방송대 교수로서 가장 좋았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중문학과에 입학해 마침내 방송대를 모교로 둔 방송대 학생이 된 일을 꼽고 싶다. 평생교육을 스스로 실천한 셈이다”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배우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 탓에 전 교수는 교수기도회, 교수서예회와 같은 정적인 모임에서부터 방송대 산악회, 교수합창단과 같은 동적인 활동까지 열정적이었다. 다양한 모임에 참여해 방송대인으로서 일과 놀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 일상생활을 직접 살아왔던 전 교수는 “『맹자』 ‘이루 하편(離婁下篇)’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영과이후진(盈過而後進)’ 즉, 웅덩이의 물이 흐를 때는 조금이라도 낮은 곳이 있으면, 먼저 거기를 가득 채운 뒤에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충분해지도록 마중물이 되는 자세가 방송대 교수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소통과 화합으로 방송대 새역사 만들어주길”
곧 연구실을 비우고 또다시 ‘평생교육인’으로 돌아갈 전 교수 역시 작년 말 국회에서 통과된 ‘방송통신대법’을 계기로 방송대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본다. “방송통신대법이 통과돼 너무 기뻤다. 한국 최고의 원격교육기관이며 동시에 고등교육기관인 방송대만의 특성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구성원인 교직원, 학생, 본부와 전국 지역대학이 하나의 구심점 안에서 방향성을 서로 조율하고 소통하며 화합한다면, 새로운 방송대 역사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한다.”
13개 지역대학으로 구성된 방송대다 보니 출석수업 등 현장 이동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 교수 역시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10대 후반에서부터 80대까지 여러 세대와 만났다. 그는 이들에게 ‘상생’과 ‘대동’을 주문해왔다. “다양한 세대가 소통하며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방송대라는 교육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마중물이 돼 상생(相生)하며, 하나의 공동체로서 대동(大同)하는 생활인의 자세를 지녔으면 좋겠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서 지금, 여기의 방송대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감사의 마음뿐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물은 마음을 맑힐 줄 아니 나의 친구가 되고, 대나무는 마음을 비울 줄 아니 나의 스승이 된다(水能性淡爲吾友 竹解心虛?我師)’라는 말처럼 자연 속에서 마음을 맑히고 비우는 교훈을 배우며, 일상에서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르고 일과 놀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영유하기 바란다(인용한 구절의 출전은 백거이의 시「연못의 대나무 아래에서(池上竹下作)」이다).”
전 교수는 학생부처장, 교육과학대학 학장 등의 보직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다문화접근 세계전통놀이교육』『다문화접근 한국전통놀이교육』『누리과정에 기초한 유아동작교육』등이 있다. 방송대에서 27년 9개월 교수로 근속해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퇴임 후에도 그동안 관심 가졌던 학문 영역에 계속 도전하고, 방송대에서 배운 평생교육을 실천하며 평화롭고 여유롭게 지낼 계획”이라고 말하는 그가 ‘모교 방송대’를 등에 업고 어떤 활동을 이어갈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