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방송대에서 후학
을 양성하셨는데요. ‘퇴임’을 맞으신 소회가 궁금합니다.
“방송대 간호학과 개설과 거의 동시에 (6개월 후) 시작된 지난 28년을 돌이켜보니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이 밀려옵니다. 이를 요약하자면,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고, 28년을 완주한 마라토너의 자신에 대한 대견한 느낌이 일부이며, 부임할 때 가졌던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온 내 자신도 별 것 없구나 하는 50보 100보의 심정이 무거운 가운데, 결론적으로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구나! 하는 성적표를 받은 수험생의 마음입니다.”
방송대는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는지요?
후회는 없으신가요?
“얼마만큼 정직하게 오픈해야 할지 조심스러운데요. 사실은 제가 박사학위 취득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리가 많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방송대를 선택해야 했을 때는 석·박사 과정도 없는 대학에서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나? 하는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7년도에 석사과정이 개설되긴 했습니다만) 제가 배운 것 내지는 가진 것을 다 풀어서 발전시켰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 방송대가 다른 대학에선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값진 많은 것들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매우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오랜 강단 생활을 하셨는데, 교수님에게 ‘제자’란 어떤 존재였는지요?
“제가 가르치면서 스스로 깨우쳐 간 것도 많지만,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우리 학생들의 부지런함, 인내함, 성숙함 등을 통해서 제가 배운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제자일 때도 물론 있지만, 때로는 동료 같기도 하고 가르침을 주는 스승 같기도 했는데, 그런 학생들로부터 단지 교수라는 이름 하나로 너무 받기만 많이 한 것은 아닌지……. 퇴임을 정리하다 보니 나를 영광스럽게 해준 것은 바로 우리 학생들이었구나! 하는 것이 피부로 와닿더군요.”
가장 기억나는 강의는 어떤 강의였나요?
“‘간호사의 윤리적 의사결정’에 관한 TV 스페셜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 강의는 정규 강의가 아니었지만, 삼성병원에서 실제 상황을 연출하면서 찍었는데요, 배우들과 함께 삼성병원 간호사들이 실제 상황에 참여하면서 아주 실감 나는 유익한 강의로 이끌어 주었어요. 어렵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하는 우리 학생들이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자기 주관을 가지고 바른 마음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강의가 될 수 있었죠. 방송대가 아니면 이런 강의는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방송대 교수’로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무엇일까요?
“명실공히 방송대는 원격교육의 메카가 아니겠습니까? 방송대에 재직한 교수로서 좋은 콘텐츠의 강의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에게 알찬 내용과 저의 마음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대학으로 발령 난 후배 교수들이 원하면 제 강의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오픈해 줄 수 있어서 간호계 전반으로 폭넓게 저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구태여 말하라고 한다면 이런 것들이 미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자들을 비롯 재학생들에게 덕담 한 말씀 주신다면.
“현재의 자신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이 너무 아름다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이니, 매일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성찰이나 일기 쓰는 습관을 가지면, 그 습관이 바르고 행복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리라 믿습니다.”
퇴임 이후 어떻게 지내실 계획인지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님의 말씀을 빌자면 ‘60세쯤 되어야 철이 든다. 철이 든다는 것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되는 나이다. 75세까지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저를 성찰해 보니 저는 아직 저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거 같아요. 당분간은 철들기 위해 조용히 내면 작업을 더 해야 할 것 같네요. 지혜롭고 보람 있는 새로운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기초를 좀 더 닦아야 할 거 같아요.”
이상미 교수는 『간호윤리: 윤리적 갈등과 의사결정』 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전략적 간호관리 베스트 티처상, 간호 윤리와 법 베스트 티처상, 간호관리특론 웹강의 우수프로그램상, 교육영역 우수 교수상 등을 수상했다. 방송대에서 교수로 28년 3개월 봉직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