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스스로 동료들과 문제 해결하는 교육 방법
원격 교육과 스터디, 방송대가 미래형 대학의 원형
학문 전수와 삶의 철학 공유하는 학생과 선생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기반된 신뢰 형성
“앞으로 20년 후 세계에 존재하는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대학의 ‘운명’에 대해 이와 같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라틴어 universitas(종합, 전체)를 어원으로 하는 university(대학)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길드(공동체)라는 의미로, 최초의 대학인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설립 이후, 학자들과 학생들의 학문 공동체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그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게 되면, 1천여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대학은 인류의 역사 속에 ‘박제’ 될 수도 있다. 대학은 사라질 것인가? 그렇다면 교수-학생의 관계도 사라질까?
교육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 관계
사제(師弟)지간을 표현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 이 말은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는 뜻으로,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정신적 가치 중 하나였다. 한편으로는, 지식과 도덕적 삶의 규범을 가르쳐야 하는 스승 스스로의 ‘권위’를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선생의 정성에 대한 제자들의 ‘존경’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즉 ‘군사부일체’는 선생의 도덕적 권위에 대한 학생들의 자발적 순종을 토대로 한 신뢰 관계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변하고 있다. A교수는 학회 일로 수업 당일 갑작스럽게 휴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A교수는 한 학생에게 택시비를 돌려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휴강 소식을 접하지 못한 그는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타고 수업시간에 맞춰 출석했는데 갑작스러운 휴강으로 손해를 입었으니 배상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정도는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는 빈번하다. 학생들은 교수와의 관계를 ‘교육서비스의 공급자와 소비자’로 규정한다. 비싼 등록금을 낸 만큼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권력의 민주화-권위의 약화
그렇다면, 과연 비싼 등록금만이 학생과 선생의 관계를 변화시킨 이유일까? 등록금이 낮아지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다시 권위와 존경의 관계로 돌아올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이미 4차산업혁명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서양에서는 교회가, 동양에서는 일부 정치 권력자들이 지식의 내용과 양을 결정해 일방적으로 유포하거나 접근을 제한했다. 지식이 곧 권력이 되는 사회였다.
그러나 인쇄기술이 발명되면서 지식은 이전보다 쉽게 유포되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이 보편화된 현대에서의 지식은 드디어 개방 되었다.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매체를 통하여 누구나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데다가 가공과 유통도 손쉬워졌다. 게다가 예전에는 백과사전을 뒤지거나 권위자의 논문을 찾는 데만도 여러 날이 걸렸으나, 이제는 검색 엔진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를 더 많이 습득할 수 있다. 이로써 지식권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고급 정보를 대학에서 얻을 필요가 없어졌다. 지식은 교수들만이 소유하는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교수 개인이 가진 것 이상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ㆍ적용만 하면 된다. 이제 교수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스스로 그것을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위치로 그 역할이 바뀌고 있다. 이런 일은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대학은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잃게 되면서, 지식으로 대변되는 교수의 권위도 상실의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
미래형 대학의 사제 관계
교육 전문가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인재를 기른다는 의미에서 교육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그러나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나 학습하는 3A(anyone, any time, any place)교육으로 교수자가 수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 학생이 스스로 동료들과 문제를 해결해 가는 협업 방식을 미래형 교육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20세기의 ‘가르치는 행위’, 즉 교수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활동으로서의 교육 패러다임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미래 고등교육의 사례로 하버드 미네르바 스쿨이 대표적이다. 2011년에 설립된 미래형 대학 형태인 미네르바 스쿨은 해가 거듭될수록 하버드대 보다 높은 경쟁률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100% 온라인 수업을 제공하며, 입학한 모든 학생들은 6개국에 위치한 기숙사를 필수로 돌면서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한다. 미네르바 스쿨이 이 교육방법을 채택한 이유는 3A를 통해 교수자의 역할을 중재자 혹은 공동 학습자로 위치시켜, 학습목표가 같은 학생들끼리 함께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여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의 동료를 가르치고 이들로부터 배우는 협업의 학습 과정을 체득시키기 위해서다.
우리 대학의 B교수는 “세부사항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미네르바 스쿨의 교육방법은 방송대 학생들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대학 학생들은 이미 40여 년 전부터 통신을 통한 원격교육의 형태로 학습해 왔고, 스터디라는 공동체를 통해 ‘동료 티칭’의 협력적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미래형 대학을 먼저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방송대가 미래형 대학의 원형이라면, 여기서 미래의 사제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우리 대학 학생들은 학습 공동체를 통하여 서로를 ‘선생’으로 존중해 왔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학문 습득 과정을 포함함과 동시에 삶의 지혜나 철학을 공유하는 유기적인 관계다. 이 관계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라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우리 대학 교수들도 학생과 선생의 관계를 학문과 학습의 세계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C교수는 “학생들에게 학문적 지식을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들의 태도와 열정은 오히려 내게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기반으로 가르침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일상이 되는 모습이 바로 미래 대학에서 볼 수 있는 사제관계일 것이다.
원격 교육과 스터디, 방송대가 미래형 대학의 원형
학문 전수와 삶의 철학 공유하는 학생과 선생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기반된 신뢰 형성
“앞으로 20년 후 세계에 존재하는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대학의 ‘운명’에 대해 이와 같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라틴어 universitas(종합, 전체)를 어원으로 하는 university(대학)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길드(공동체)라는 의미로, 최초의 대학인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설립 이후, 학자들과 학생들의 학문 공동체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그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게 되면, 1천여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대학은 인류의 역사 속에 ‘박제’ 될 수도 있다. 대학은 사라질 것인가? 그렇다면 교수-학생의 관계도 사라질까?
교육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 관계
사제(師弟)지간을 표현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 이 말은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는 뜻으로,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정신적 가치 중 하나였다. 한편으로는, 지식과 도덕적 삶의 규범을 가르쳐야 하는 스승 스스로의 ‘권위’를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선생의 정성에 대한 제자들의 ‘존경’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즉 ‘군사부일체’는 선생의 도덕적 권위에 대한 학생들의 자발적 순종을 토대로 한 신뢰 관계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변하고 있다. A교수는 학회 일로 수업 당일 갑작스럽게 휴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A교수는 한 학생에게 택시비를 돌려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휴강 소식을 접하지 못한 그는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타고 수업시간에 맞춰 출석했는데 갑작스러운 휴강으로 손해를 입었으니 배상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정도는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는 빈번하다. 학생들은 교수와의 관계를 ‘교육서비스의 공급자와 소비자’로 규정한다. 비싼 등록금을 낸 만큼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권력의 민주화-권위의 약화
그렇다면, 과연 비싼 등록금만이 학생과 선생의 관계를 변화시킨 이유일까? 등록금이 낮아지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다시 권위와 존경의 관계로 돌아올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이미 4차산업혁명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서양에서는 교회가, 동양에서는 일부 정치 권력자들이 지식의 내용과 양을 결정해 일방적으로 유포하거나 접근을 제한했다. 지식이 곧 권력이 되는 사회였다.
그러나 인쇄기술이 발명되면서 지식은 이전보다 쉽게 유포되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이 보편화된 현대에서의 지식은 드디어 개방 되었다.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매체를 통하여 누구나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데다가 가공과 유통도 손쉬워졌다. 게다가 예전에는 백과사전을 뒤지거나 권위자의 논문을 찾는 데만도 여러 날이 걸렸으나, 이제는 검색 엔진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를 더 많이 습득할 수 있다. 이로써 지식권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고급 정보를 대학에서 얻을 필요가 없어졌다. 지식은 교수들만이 소유하는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교수 개인이 가진 것 이상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ㆍ적용만 하면 된다. 이제 교수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스스로 그것을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위치로 그 역할이 바뀌고 있다. 이런 일은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대학은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잃게 되면서, 지식으로 대변되는 교수의 권위도 상실의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
미래형 대학의 사제 관계
교육 전문가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인재를 기른다는 의미에서 교육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그러나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나 학습하는 3A(anyone, any time, any place)교육으로 교수자가 수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 학생이 스스로 동료들과 문제를 해결해 가는 협업 방식을 미래형 교육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20세기의 ‘가르치는 행위’, 즉 교수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활동으로서의 교육 패러다임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미래 고등교육의 사례로 하버드 미네르바 스쿨이 대표적이다. 2011년에 설립된 미래형 대학 형태인 미네르바 스쿨은 해가 거듭될수록 하버드대 보다 높은 경쟁률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100% 온라인 수업을 제공하며, 입학한 모든 학생들은 6개국에 위치한 기숙사를 필수로 돌면서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한다. 미네르바 스쿨이 이 교육방법을 채택한 이유는 3A를 통해 교수자의 역할을 중재자 혹은 공동 학습자로 위치시켜, 학습목표가 같은 학생들끼리 함께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여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의 동료를 가르치고 이들로부터 배우는 협업의 학습 과정을 체득시키기 위해서다.
우리 대학의 B교수는 “세부사항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미네르바 스쿨의 교육방법은 방송대 학생들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대학 학생들은 이미 40여 년 전부터 통신을 통한 원격교육의 형태로 학습해 왔고, 스터디라는 공동체를 통해 ‘동료 티칭’의 협력적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미래형 대학을 먼저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방송대가 미래형 대학의 원형이라면, 여기서 미래의 사제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우리 대학 학생들은 학습 공동체를 통하여 서로를 ‘선생’으로 존중해 왔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학문 습득 과정을 포함함과 동시에 삶의 지혜나 철학을 공유하는 유기적인 관계다. 이 관계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라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우리 대학 교수들도 학생과 선생의 관계를 학문과 학습의 세계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C교수는 “학생들에게 학문적 지식을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들의 태도와 열정은 오히려 내게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기반으로 가르침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일상이 되는 모습이 바로 미래 대학에서 볼 수 있는 사제관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