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도서관에 바람이 분다


보르헤스 소설 『바벨의 도서관』 속에서 사람들은 진리의 책을 찾기 위해 죽을 때까지 도서실을 순례한다. 각자가 추구하는 진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삶 전 생애를 살펴보면 소설 속 순례자들의 모습은 우리 인생 그 자체와도 닮아있다.

도서관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과 정보가 만나는 장소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 아닌 사람이 중심 될 것
방송대 그 자체가 미래형 도서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서관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종이책을 통해 지식정보를 제공했던 과거 도서관은 기술혁신으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그 역할과 기능을 달리했던 도서관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은 도서관, 그 중에서도 대학도서관의 움직임 그리고 방송대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 짚어본다. 아울러 하반기에는 도서관 의제를 확장해 국내·외 도서관 현황과 국가 정책 등 거시적인 내용들을 다룰 예정이다.


바벨의 도서관, 진리의 책 찾기

보르헤스는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을 거대한 우주로 묘사했다. 바벨의 도서관은 육각면으로 이뤄진 도서실이 무한히 쌓인 탑 형태의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에는 25개 기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책들이 있다. 책들은 아무 의미 없는 문자 나열로 이뤄져 해석할 수 없거나, 별 의미 없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책 중에서 모든 책의 암호이자 우주의 진리가 담겨진 책이 있는데, 사람(사서)들은 이 책을 찾기 위해 죽을 때까지 육각면의 도서실을 순례한다. 어떤 사람은 진리의 책을 읽고 신과 같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무한대의 도서관에서 진리의 책을 찾을 확률은 거의 없다. 보르헤스가 묘사한 도서관은 모든 지식정보를 갖춘 곳으로, 정보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 시대 모습과도 닮아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도서관은 사람과 정보가 만나는 장소였다. 과거 도서관에서 유통되는 정보는 종이책 혹은 미디어 자료를 포함하는 정도였지만, 이젠 전자책, 오디오북,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가 됐다.


대학도서관이 움직인다

“책 놓을 공간도 부족한데 도서관을 이렇게 비워놓는다는 말입니까?”
도서관 중앙 공간을 천장까지 뚫어놓은 모 대학 도서관을 본 어느 교수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과거 종이책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로 대학도서관의 우수성을 평가했기에 이런 반응이 낯설지만은 않다. 그러나 IT혁명은 도서관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해외에서는 신기술이 적용된 대학도서관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노스캐롤로라이나주립대는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해 도서관 실내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장서를 점검한다. 또한 스마트로커(smart locker)와 좌석예약서비스, 장서 및 행사정보 푸시서비스 등을 도입했다. 노스텍사스(North Texas)대학 도서관은 빅데이터(big data)를 활용해 도서를 추천하고, 대규모 역사적 신문자료를 텍스트 마이닝과 시각화방법으로 제공한다.
국내 대학도서관들도 점차적으로 첨단 기술들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대학도서관들은 ‘창의력’ ‘협업능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기술혁신으로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몇몇 직업들이 사라지면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더 크게 요구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미 국내 대학도서관들은 디지털이 종이를 대체하며 멀티미디어 자료와 전자책 등으로 자료를 채우기 시작했으며, 칸막이 책상이 놓인 열람실 대신 토론과 그룹 스터디, 문화, 강연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고려대는 도서관에 CCL(CJ Creative Library)을 세우고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스튜디오, 문화공연과 강연을 할 수 있는 무대, 누워서 쉬거나 학습할 수 있는 쉼터 등을 마련했다. 광운대 역시 도서관에 학생들의 휴식 공간, 토론실, 그룹 스터디룸,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룸 등 이용자 중심 서비스를 구축했다. 이처럼 대학도서관들은 변화를 꾀하고, 도서관을 협업과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 대학도 유휴 공간 활용 방안으로 메이커 스페이스, 영상 제작 스튜디오, 문화행사, 강연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또한 내년 초 중앙도서관 개축 및 리모델링과 관련해 이번 달 구체적 계획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중앙도서관 측은 “방송대의 열린교육 이념과 이용자의 수요를 공간구성에 반영할 것”이라며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스마트 도서관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했다(관련기사 2면).
한편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도서관 외형에 치중해 정작 그 대학만이 지닌 가치와 이념을 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타 대학 벤치마킹 사례로 유명한 모 대학도서관 관계자는 “심미안적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학생들은 보기 좋고 쾌적한 환경의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백화점과 같은 대형 쇼핑몰 인테리어를 모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팀장은 “당장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시설에 집중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버려야 한다”며 “대학은 장기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 각 대학만이 지닌 고유 특성을 공간에 담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가 사서를 대체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미래에 사라질 직업군에 대한 예견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 사서의 역할을 AI가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AI가 사서 대신 도서를 분류하고 주제에 맞는 도서들을 추천해주기 때문에 사서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서의 역할을 ‘도서관의 핵심’으로 꼽았다. 자칫 사서는 단순히 도서를 분류하고 책을 추천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여길 수 있지만 도서관 현장에서 사서는 다양한 능력을 요구받는다.
현재 기술로는 AI는 비교적 단순한 업무만을 대체할 수 있지만, 발전 속도는 빠를 것이다. 때문에 사서는 역할이 달라져야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용자들과 끊임없이 직접 커뮤니케이션하거나, 이용자들이 상호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사서 인력이 부족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 교육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문헌정보학회지에 발표된 ‘4차 산업혁명 시대 도서관의 미래상에 대한 사서의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3.5%가 “도서관 분야의 4차 산업혁명 전개수준이 미흡하다”고 응답했으며. 94%는 “4차 산업혁명 실현에 필요한 인프라로 실무자 교육훈련을 확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도서관의 발전에 있어 사서의 역할은 크지만, 실제 새로운 지식정보를 습득하거나 보수 교육을 받을 시간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다.
정재영 팀장은 “이용자에게 필요한 교육을 구성하고 이들과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면 사서는 공간 관리자나 도서 관리자에 머무를 수 있다”며 “도서관 운영에 있어 사서를 먼저 고민하고 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방안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대 학습공간이 도서관 그 자체

우리 대학 도서관의 평생교육과 원격고등교육의 이념을 담은 공간이 돼야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학당국도 원격교육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중앙도서관의 리모델링 필요성과 공간에 담을 내용에 대해 연구·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중앙도서관뿐만 아니라 재학생들의 학습이 실제로 이뤄지는 지역대학과 시·군학습관에 대한 구성원의 고민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각 지역대학과 시·군학습관들은 도서관 또는 도서실을 보유하고 있지만, 도서관의 기능을 온전히 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지역대학과 시·군학습관 안에서 이미 강의, 토론, 협업, 평생교육, 커뮤니티 활동, 문화공연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방송대 학습 공간 그 자체가 미래형 도서관 그 자체다.
다행스럽게도 방송대는 창의력과 협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와 경험은 이미 많이 축적돼 있다. 사람과 정보를 매개로하는 곳이 도서관이지만, 더 이상 기계가 주는 정보가 아닌 사람 그 자체가 정보가 될 것이다. 도서관은 사람(정보)과 사람(정보)이 만나 협업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인간 중심의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구성원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할 때다. 우리 대학 자체를 도서관으로 보고 다양한 정보 교류가 이뤄지고 창의 활동이 발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용자 중심의 참여가 도서관 바꾼다

먼저 중앙도서관이 실시한 이번 과제물·교양 큐레이션 서비스는 정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재학생들을 위한 선도적 서비스였다. 무엇보다 타 대학에 앞선 서비스였고,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원격고등평등교육의 이념을 잘 살려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할 수 있는 정보취약 계층의 정보접근성을 높였으며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는 것도 의미가 남다르다.
중앙도서관 개축 및 리모델링을 앞두고 우리 대학은 국내 타 대학과 해외 대학의 사례들을 더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성공 그리고 실패요인을 철저히 분석해, 우리 대학만의 장기비전을 공간에 녹여내야 한다. 지난해 원격교육연구소가 발표한 『미래형 중앙도서관 공간구성 방안연구』를 살펴보면 대학당국과 관계자는 이러한 고민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중앙도서관은 보고서를 통해 ‘열린 도서관, 개방된 도서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가장 큰 주안점으로 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독서와 휴식을 하는 곳, 다수 학습자가 원격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 각종 문화행사가 진행되는 곳 등 다양한 공간 마련 방안에 대해 연구했다. 해당 연구결과가 얼마나 구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더 중요한 과제가 한 가지 남아있다. 바로 구성원의 참여와 관심이다. 이제는 도서관의 주인인 이용자가 직접 나서야 할 때이다. 미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하기위해 도서관을 비롯한 우리 대학 학습공간을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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