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종이 교재를 추격하는 움직임들

ebook은 작은 사이즈이지만 커다란 서가를 담고 있다. 출처=en.wikipedia.org

올 3월 한 경제지가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제목인즉슨「몇 만원씩 하는 대학교재 빌려쓰세요」(<한국경제>, 2019.3.6.). 이 기사의 리드문은 이렇다. “대학 교재는 발행부수가 적어 일반 도서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한 권에 몇 만원씩 하는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대학생들이 학교 주변 복사집에서 불법 복사해 사용해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교재를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는 서비스가 나왔다.”
이 기사가 안내하는 인터넷서점을 따라 들어갔더니, 화면 상단에 큼직하게 ‘1200종 대학교재를 최고 90% 할인된 가격에 대여하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정가 20~45%에 2천여종의 교재를 대여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니 수년전 미국에서도 논란이 일었던 ‘대학생의 65%가 가격 때문에 교재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아마존(amazon.com)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중고책을 구매하거나 일정기간(대체로 한 학기) 동안 책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rent)하고 이후에 택배를 통해 반납하는 서비스가 자리를 잡았다.


최고 90% 할인된 가격에 교재 대여?

지난 3년간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과정으로 공부하면서 강의조교(associate instructor)로 근무했던 김민혁 씨는 “내가 조교로 참여했던 지난 학기의 「미국정치개론」 수업에서는 『미국의 정부(American Government)』최신판을 필수 주교재로 채택했는데, 이 책의 정가는 77달러가량 되지만 아마존닷컴을 통한 대여는 18달러가량의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학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주교재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란 설명이다.
국내 대학의 경우에도, 학생들은 대부분 ‘가격’ 때문에 교재를 피해간다. 대학교재를 빌려 쓰라고 권유하는 이 인터넷서점도 빠듯한 용돈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주머니를 계산하고 움직인 것이다. 대학생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불법복제의 그늘로부터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설명. 대여한 교재는 회수함으로써 환경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으니 ‘공유경제 모델’로 운영하겠다는 이 회사 대표의 포부 역시 선명하다.
그렇지만 그보다 앞서 ‘공유경제 모델’을 교재에 도입한 이들이 있다. 2013년 ‘무료 대학교재’ 100권 만들기 운동을 시작한 ‘공유와 협력의 교과서 만들기 운동본부’(대표 조영복 부산대 교수·경영학과)다. 이들은 2013년 6월부터 홈페이지(www.bigbook.or.kr)를 열어 대학 교재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영복 교수는 “2년이 돼야만 내용이 바뀌는 서책형 교재와는 달리 실시간으로 새로운 내용을 담아내는 ‘살아있는’ 100권의 대학교재를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핸드폰의 앱으로 만나게 될 날도 머지 않았다”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대여’와 ‘공유경제 지식나눔’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대여는 글자 그대로 저렴한 가격에 한 학기 교재를 빌리는 것이지만, 공유경제 지식나눔은 무료로 교재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전자는 대학생들의 주머니에 착안한 것이고, 후자는 좀더 진화된 교재 형태를 고민한 결과다. ‘빅북’ 홈페이지 하단에 새겨져 있는 문장이 이를 방증한다.
“공유와 협력의 교과서만들기 운동본부에서 제작하는 모든 빅북 교재의 저작권과 판권은 운동본부에 있으며 빅북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는 콘텐츠는 무료로 사용가능하나 운동본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상업용 출판 및 활용(홈페이지 게재 등)은 금합니다.”
빅북의 운동 방식은 대학교재의 진화에 자극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오픈강의 바람이 국내에서도 일고 있는 것처럼, ‘공유경제형’ 교재 제작과 공유도 대학교재의 새로운 진화 모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움직임의 근저에는 기술 변화, 즉 ebook이라는 형태가 맞물려 있다.


기술 변화와 교재의 ‘내용적 진보’

최근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자료 가운데「교재 출판의 죽음과 대학 학위과정의 미래」라는 글이 있다. ebook으로 안내하는 내용인데, 이렇게 ‘안내글’을 덧붙였다. “학술 출판사들이 궁상맞게 있는 가운데, 기술은 전통적인 교재 시장을 뒤집어 놓고 있다.” 이어지는 글이 어떨지 예상할 수 있다. 디지털화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출판사들이 (종이) 인쇄 작업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데, 이 인쇄 작업이란 건 그들의 최종 결산 결과를 저해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한 뒤, 이 ebook 안내자들은 ‘학생들이 정보를 배우고 흡수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스마트 폰, 랩톱 및 기타 개인 기술이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돼 인쇄된 교재는 학생들에게 많은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김민혁 씨의 말을 들어보자. 그 역시 ebook 구매 옵션에 주목했다.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또 강의조교를 하면서 지난 3년간 내가 느낀 인상은 미국의 대학생들도 수업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교재 구입에 상당히 소극적이라는 점이었다. 대체로 비싼 가격대에 형성돼 있는 주요 교재의 가격은 수업 주교재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교과서를 출간하는 주요 출판사들은 학생들의 비용부담을 덜어주고자 책의 정가보다 싼 가격으로 ebook을 구매하는 옵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또한 기술력이 뒷받침해주는 교재의 물질적 형태는 ebook이 단연 앞에 놓이지만, 교재의 진화라는 게 꼭 형태적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교재의 내용적 진화도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교재의 내용적 진화는 수업방식과도 밀접하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현대철학을 가르치는 A교수는 강의에 교재를 사용하지 않은지 꽤 됐다. 그의 강의는 대부분 PPT를 활용한다. 슬라이드 형태의 PPT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려놓으면 학생들이 미리 출력해서 수업 준비를 해 온다. 필요한 경우에 한해 A교수는 직접 집필한 학술 출판물을 활용할 뿐 교재를 따로 선정하진 않는다. 다양한 시각 확보를 위해 특정 교재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PT의 단점을 고려한 그는 다수의 책을 참고문헌으로 제시해 수업 전 미리 읽어오도록 했다. PPT는 키워드만 제시해 책을 읽어오지 않으면 수업을 이해할 수 없게 안배한 것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 보다 혁신적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상이나 PPT 등 강의자료와 디지털 교재(ebook)를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U-KNOU 캠퍼스에 로그인해 자신의 클래스 룸에서 학습활동을 하면서 디지털 교재 내용을 카피해 붙이고, 강의영상이나 다른 자료들을 편집해서 학생들이 자신만의 ‘학습노트’를 만들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등록기간 중에는 무료로 사용하고, 이 노트를 플랫폼 바깥으로 반출할 때는 사용료를 부과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저작권도 보호할 수 있고, 학생들은 개인 소장이 가능해서 졸업 후에도 활용할 수 있다. 등록금 안에 이러한 콘텐츠와 서비스 비용들을 포함해야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검토해 볼 만한 모델이다.
불법복제에 치이고, ebook에 추격당하고 있는 대학교재는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 방향과 위상을 재점검할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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