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거듭나는 DMZ]

2016년 8월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녹색연합이 함께 펴낸 DMZ생태문화지도 ‘마을 편’. DMZ와 서해 5도의 주요 15개 마을의 생태와 문화 정보가 담겨 있다. DMZ생태문화지도 시리즈는 국립수목원 누리집(www.kna.go.kr)에서 전자책(e-book) 형태로 게시돼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동서 155마일에 부는 새로운 바람
1980년부터 DMZ 재조명 작업 진행돼
‘예술의 원천’에서 구체적 변화 지대로
한국전쟁 69주년 이후의 질문 준비해야



한반도 비무장 지대(Korean Demili-tarized Zone, DMZ)는 한국전쟁 이후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구역으로, 동서(東西) ‘155마일(248km)’에 이르는, 남북 4km의 완충지대를 말한다.
정전협정을 맺은 지 4년 뒤, 어느 시인은 이 긴 적대(敵對)의 공간을 가리켜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라고 탄식했다. 그 탄식은 절망적인 비명이 되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전협정을 맺은 지 65년이 흐른 지난 2018년 11월 10일 남북은 역사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날 DMZ에 있는 GP(감시초소) 중 시범철수 대상인 총 22개 GP의 병력과 화기 철수를 완료했다. 바야흐로 긴장과 적대, 증오와 원한의 155일 휴전선에 평화와 화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초중반 문화운동과 DMZ

DMZ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사람이 거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천혜의 생태보존지역으로 남았다. 이런 특성에 착안해 비무장지대를 천연상태로 보존하자는 문화운동이 1990년대 초·중반에 걸쳐 일어났다. 화가인 이반 교수가 주도한 이 문화운동는 작가들을 비롯, 학계, 정치계, 문화계, 종교계 등에서 대거 동참했다.
이를 두고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을 지낸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비무장지대 문화운동은 비무장지대가 지닌 가치를 부각시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냉전체제의 종식과 맞물려 전개된 이 움직임은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시인 박봉우가 1957년 그토록 탄식했던 분단의 비극과 통한이 199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 구체적인 문화운동 형태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미술계에서 선도적인 작업을 진행한 것은 틀림없지만, 박정희 정권 시기에도 DMZ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1972년 당시 건설부장관이었던 장예준은 건축가 김수근 교수와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김성훈 교수에게 ‘금강산 설악산 지역 관광도로 구상 계획안’을 의뢰했는데, ‘DMZ지역 활성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첫 시도였다.
그 뒤 1980년도에 건축잡지 <공간(空間)>지가 잇따라 지면을 통해 비무장지대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 작업에는 다양한 학문 분야 전공자들이 참여함으로써 훗날 풍성한 논의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DMZ는 살아 움직인다’를 주제로 한 이 캠페인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소흥열 교수(철학), 김원석 건축가, 박병주 교수(도시계획) 등이 눈에 띈다. 소흥열은 「DMZ를 기념자연공원으로」를 기고했고, 김원석은 「DMZ 기념공원을 위한 스케치: 민통선 지역개발 구상도」를, 박병주는 「금강산, 설악산 공원구역 설정 구상도」를 발표해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작업이 1990년대 초·중반 화가 이반에게로 수렴됐던 것이다.
이반으로부터 시작된 예술문화운동은 최근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국내 예술가들만의 자리가 아니라 세계 예술가들이 함께 DMZ를 상상하고 해체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지난해 6월 23일 세계 예술가들이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모여 회화, 사진, 서예, 도예 등으로 비무장지대(DMZ)를 조명한 ‘2018 DMZ 아트 & 디자인 국제 초대전’을 개최한 것이 그런 움직임의 하나다. 프랑스, 캐나다, 폴란드 등 35개국 작가 220명을 비롯해 한국 작가 150명이 참여해 다양한 예술기법으로 DMZ의 평화, 통일, 자유, 생태 등을 표현한 전시였다.
오랫동안 억눌린 ‘예술의 원천’이었던 DMZ는 좀더 새로운 상상력과 만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박근혜 정부 후반인 2016년 8월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녹색연합이 3년간 연구한 4권짜리 DMZ 시리즈를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DMZ 8개 시군을 비롯해 서해 5도의 15개 마을의 생태와 문화 정보 등을 담은 ‘DMZ생태문화지도’를 발간한 것이다. 이 생태문화지도는 2000년대 들어 쏟아지기 시작한 다양한 DMZ 관련 작업들에 좀더 체계적인 방향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DMZ연구팀이 내놓은 『생명·평화·치유의 DMZ 디지털 스토리텔링』(박영균 외, 2016.9)도 이런 성과와 궤를 같이 한다.


대결과 적대를 넘어 화해로

시민사회의 노력도 빠뜨릴 수 없다. 지난 1월 28일 ‘DMZ평화인간띠운동본부’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DMZ민(民)+평화손잡기 발대식’을 열었다. 이들은 “판문점 선언 1주년인 4월 27일 14시 27분에 맞춰 70여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동서 양끝인 고성~강화 500㎞의 길 위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인간띠 잇기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 행사의 아이디어는 ‘발트의 길’에서 빌려온 것이다. 동구 사회주의권이 해체되기 시작하던 1989년 8월,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시민 200만명이 620㎞의 인간띠를 만들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열망을 표현한 데서 착안했다. 그래서 소설가 정찬은 한 칼럼에서 “내가 ‘DMZ평화인간띠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촛불혁명의 에너지가 냉전체제 해체를 위한 에너지로 승화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던 바로 그곳 DMZ는 이제 다시 어떤 모습으로 호명되고, 진화할까? 긴 시간 대결과 긴장, 안보와 반공 교육의 최전선으로 활용돼왔던 공간,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예술적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돼 왔던 비무장지대. 한국전쟁 69주년을 앞둔 오늘, DMZ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한국사회가 모색해야할 ‘평화’와 ‘화해’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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