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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이른바 시간강사로 매주 먼 지역의 대학에 강의를 가는 일이 잦아졌을 때였다. 자가 운전을 하기 전이라 교통편에 따라 오고가는 와중에 비는 시간이 많이 생기곤 했다. 그때마다 들르곤 했던 곳이 바로 그 지역의 헌책방이었다. 아마도 상경 기차 편을 기다리다 우연히 들른 서대전역 인근 헌책방에서 무더기로 꽂혀 있던 창비시선 초판 1쇄본을 가방 가득 담아 짊어지고 기차에 오른 때부터였을 것이다. 때로는 광주 송정역 인근 헌책방에서, 대구 대학가 헌책방에서,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그리고 신촌로터리 인근 헌책방에서 초판본을 찾아 이리저리 오갔던 시간이 내 인생의 한켠을 오롯이 차지하고 있다.


언젠가 청계천 헌책방에서 안도현 시인의 첫 시집『서울로 가는 전봉준』, 서울지역 헌책방들을 모아놓은 잠실 인근의 ‘서울책보고’에서 도종환 시인의 베스트셀러 시집『접시꽃 당신』의 초판 1쇄본을 각각 발견하고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던 일이 떠오르는가 하면, 최근에는 아들과 함께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뒤지다 198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끌었던 현암사 판『어둠의 자식들』(황석영)과『꼬방동네 사람들』(이동철) 초판 1쇄본을 구했던 기억이 새롭다.


기실 내가 관심을 갖고 수집하는 것은 초판 1쇄본뿐만이 아니다. 정기간행물 중 첫 번째로 발행된 창간호에도 초판 1쇄본 못지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래저래 모아놓은 단행본 초판 1쇄본이 약 5만여 종, 정기간행물(신문, 잡지, 기관지, 사보 등)이 약 1만5천여 종 되다 보니 이제 이것들을 잘 보관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정도가 됐다. 그렇다면 왜 나는 보관할 만한 공간을 갖출 능력도 없어 겨우 컨테이너에 의지해 전전긍긍하는 처지에 초판 1쇄본과 창간호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지 못하는 걸까?


단행본 초판 1쇄본은 말 그대로 그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독자들과 만난 존재다. 정기간행물 창간호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막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얼굴을 내민 순간의 존재라고나 할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변모하는 것처럼 책 또한 쇄(刷)와 판(版)을 거듭할수록 달라진다. 정기간행물도 발행호수가 늘어날수록 애초의 기획의도를 수정해 나가면서 그 속성이 변하게 마련이다. 나는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다.


우선 단행본 초판 1쇄본에는 저자나 편집자가 잡아내지 못한 오류를 비롯해서 의도하지 않았던 기록들이, 정기간행물에는 창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 인물들이 고스란하다. 예컨대, 도종환 시인의『접시꽃 당신』(1986) 초판 1쇄본에 실린「아홉 가지 기도」라는 시를 보면 아무리 세어보아도 기도는 여덟 가지밖에 없다. 왜 그럴까?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1981)의 간기면에 붙어있는 인지(印紙)에는 ‘정국(正國)’이라는 글자가 선명한데 과연 누구일까? 이런 의문들이 쇄와 판을 거듭하면서 점차 수정된 정보로 가려지곤 하는 것이다. 또, 초판본을 찾아다니다 보면 저자가 누군가에게 정성스레 서명을 해서 건넨 증정본을 만나는 행운도 자주 찾아오곤 한다.


정기간행물 창간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은 그 분야의 중견을 지나 원로가 된 사람들이 파릇파릇한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이 세상을 구원할 듯 거창한 창간사를 뒤로하고 얼마 못가 폐간을 면치 못한 것들도 부지기수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젠 떠올리기 싫은 순간들을 기록해놓은 것들도 많이 있는 게 창간호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초판 1쇄본과 창간호를 ‘발견과 앎의 기쁨을 주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아우라(aura)’가 무엇인지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초판본과 창간호를 찾아보라고 일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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