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백발을 가지런히 뒤로 묶은 얌전한 할머니가 단상에 섰다. 청중들은 모두들 긴장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우우~ 우우~’ 하는 동물 소리를 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의아해하는 청중들에게 그녀가 말했다. “여러분 이 소리는 제가 침팬지들에게 인사하는 말이에요. ‘나, 제인이야!’ 하고요.”인간을 다시 정의하다이 할머니는 제인 구달(Dame Jane Morris Goodall, 1934~) 박사다. 그녀는 살아있는 신화이자 화석이다. 동굴 속 벽화의 고대 원시인들처럼 그녀는 침팬지의 말을 할 줄 안다. 침팬지뿐 만이 아니다. 그녀가 공개하지 않았을 뿐, 여러 종의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루이스 리키(Louis Leakey, 1903~1972) 박사는 탄자니아 곰비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제인이 발견한 결과를 듣고 무릎을 쳤다. “도구를 다시 정의하거나 ‘인간’을 다시 정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겠군!” 제인 구달은 현재 제인구달연구소 소장이며 ‘세계비폭력운동 간디·킹 비폭력상’(유엔, 2001) 등 수 많은 상을 받았고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 운동을 펼치며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애초에 이런 자신의 유명해진 모습을 상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1934년 영국, 카레이서 아버지와 비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2녀 중 맏딸로 태어난 제인은 모험가적 아버지의 기질과 긍정적이고 밝은 어머니의 성품을 빼어 닮았다. 자연 속 농장인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 제인은 달팽이, 지렁이, 닭 등을 친구삼아 놀았고 타잔 이야기를 읽으며 아프리카의 자연을 꿈꾸었다. 그게 전부였다. 루이스 리키와의 만남동물을 사랑하고 교감했던 소녀는 어느샌가 탄자니아의 곰비 지역으로 옮겨지게 됐다. 그것은 그녀의 운명이었다.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외가에 남겨진 그녀는 외할머니, 유모, 이모들, 이렇게 여성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랐다. 가난했지만 집안은 늘 활기 있고 즐거웠다. 남성이 없었던지라 ‘여자라서 안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인은 한 가지만 생각하고 지냈다. 타잔처럼 ‘아프리카에서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그녀를 비웃었지만 단 한 사람 그녀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제인,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한단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지내던 중, 아프리카로 이사한 친구에게서 놀러오라고 연락이 왔다. 제인은 케냐로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고되게 일했다.  케냐에 도착한 그녀는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Louis Leakey, 1903~1972)를 만나게 되고 그의 조수로 일하면서 본격적인 동물연구자의 길로 들어선다. 루이스 리키는 현대인과, 현존하는 생물 중 가장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행동패턴이, 둘의 공통의 조상에서도 나타났을 것이라는 추론을 했다. 그는 영장류 연구를 기획하고 탄자니아 곰비 침팬지 보호구역에 보낼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는 제인이 동물을 사랑하고 열정적이며 인내심이 강한 사람임을 알아보았고,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인정해 주었다. ‘하얀 유인원’의 기적1960년 7월, 제인은 이제까지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미지의 길로 접어들었다.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닮은 영장류이지만 덩치와 힘은 인간과 비교가 안 된다. 26세의 연약한 여성이 단신으로 밀림에 들어가 그들을 관찰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초반에는 어머니가 연구에 동행해 함께 지내게 된다. 제인은 4세 때 암탉이 알을 낳는 것을 보려고 네 시간 동안 닭장 안에 잠복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를 찾지 못한 가족이 실종신고를 내고 사방을 뒤졌지만, 얼마 뒤에 마주한 것은 활짝 웃으며 닭장에서 의기양양하게 걸어 나오는 꼬마였다. 그 때도 제인의 어머니는 아이를 꾸짖지 않았고 즐겁게 재잘대는 딸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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