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어린이라는 세계

햇살이 내리쬐는 마루에서 어미개 보들이는 기지개를 켰습니다. 집안일도 다 했고 잠시 명상이나 할까 하는 생각에 방석 한켠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으려는 그때,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보들이, 뭐 하니?”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보들이는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보들아, 여기야. 빨래건조대 옆 대야 속이란다.”
보들이는 경계심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마루 구석에 있는 빨래건조대 옆으로 가보았습니다. 그 옆에는 흰색의 네모난 대야가 있었고, 돌무더기 옆에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보들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집에서 저희가 함께 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도 할 줄 아세요?”
“그럼, 나는 보들이 네가 이 집에 오기 훨씬 전부터 여기에서 살고 있었단다. 나는 암미부인이라고 해.”
“반가워요. 저는 동동이 엄마 보들이예요.”
“알고 있단다. 나는 이미 자녀들을 다 키워서 독립시키고 혼자 지내고 있지.”
“어머, 이렇게 이야기 나눌 분이 계시는 줄 알았으면 진작 차 한잔 할 걸 그랬어요.”
“때론 침묵이 더 갚질 때가 있지. 보들이 네가 동동이를 키우면서 애태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단다.”
“그동안 저를 바라봐 주셨군요. 저는 저 혼자인 줄만 알고 외로워했는데…”
“그래, 보들이도 아이가 어리니 초보 엄마나 다름없지. 힘들 거야.”
“오늘 아침에는 동동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제가 잔소리를 좀 하니까, 왜 엄마가 원하는 대로만 이끌어가려고 하냐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지.”
“동동이는 저보고 말투를 예쁘게 해달라고 하는데, 바쁠 때 어떻게 일일이 다 설명을 해요? 게다가 저도 자라면서 항상 명령과 강요만 들어봤는데, 제가 안 배운 걸 어떻게 아이에게 해줄 수 있냐구요.”
보들이는 한숨을 폭 내쉬었습니다. 

 

 

“그렇다네. 따뜻한 눈길 한번,
따스한 포옹 한번, 칭찬 한마디,
이런 것들이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는 걸

잊지 말게나.”


“동동이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때가 언제인지 물어봐. 보들이 네가 사랑을 주어도 아이가 못 느끼면 그건 사랑을 준 게 아니야.”
암미부인은 아주 느릿느릿하게 돌무더기 위로 걸어 올라오며 말했습니다.
“부모가 되는 건 끊임없이 배워가는 과정인 거야. 보들이 네가 기억하는 부모님과의 행복한 시간은 언제였었니?”
“아마 마루에서 별을 바라보며 가족이 다 같이 수박을 먹던 때 같아요.”
“맞아.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은 거창한 때가 아니야.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기억은 오히려 일상 안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에서 나와.”
“세 살 이전의 상처가 사춘기 때 드러난다는 말을 들어서, 너무 걱정되고 후회돼요. 제가 못 해준 것들이 많았거든요.”
“사춘기 아이들의 말은 그것을 싼 포장지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알맹이를 봐야 해.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마음으로 들어야 하지.”
“제가 동동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떨 때는 제 상처가 건드려질 때도 있고, 어른인 제가 더 유치해지기도 하고요.”
“부모가 자기 상처를 알고 있어야 아이의 일과 나의 일을 구분할 수 있지. 내 욕심을 알고 있어야 아이가 원하는 삶과 내가 바라는 삶을 분리할 수 있게 되고.”
“맞아요. 혼낼 때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줘야 하는데, 일단 소리부터 왈왈왈 짖게 돼요.”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거야.”
“제가 엄마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 같아요. 흑흑”
“울지 마, 보들아. 괜찮아. 잘하고 있는데 뭘. 힘내렴.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을 거야. 일단 보들이 너 자신부터 알고, 수용하고, 사랑해주어야 해.”
“청소년교육과에 다니며 공부도 여러 가지로 많이 했는데, 앎과 실천이 왜 이렇게 다른 걸까요?”
“할미인 나도 수십년 간의 요가와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수련해왔는데, 겨우 몇 년만에 완성을 하려 한다고? 호호호.”
“암미부인께서 꼬리로만 몸을 지탱하신 채, 네 발을 다 들어올리고 한참 정지해 계시는 수련자세는 정말 하루아침에 되신 건 아니시죠.”
“그럼. 그리고 어른도 자기 안의 아이를 보듬어주고, 보살펴주어야 해. 자기 안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아이는 그 상처를 입었을 때의 바로 그 나이에 머물러 있게 되거든. 어린 보들이를 칭찬하고, 다독이고, 위로하고, 공감해 주렴.”
“저 스스로에게 힘을 북돋아 줘야겠네요.”
“그렇지. 그리고 그런 힘을 갖게 해주는 것이 바로 자녀들이란다. 부모는 아이를 통해 성장하게 되어 있어. 아이들을 잘 자라나게 하고 싶은 그 마음이 바로 그 부모를 성장하게 하는 거야.”
“어떨 땐 동동이가 한 말이 저에게 깨달음을 줄 때도 있더라구요.”
“아이들의 마음으로 어른들이 정화되고, 아이들의 말을 통해 어른들이 깨우치게 되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또 어떻고! 이 세상 어떤 음악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보다 더 아름답지는 못할 거야.”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네요. 꾀꼬리 소리보다도 예쁜 게 아이들의 목소리지요.”
“아이들은 단순해. 쉽게 마음을 열고 감정에 솔직하고, 하나 이상으로 계산하지도 않지. 겉모습이나 조건으로 상대를 판단하지도 않아. 화해도 얼마나 쉽고 빠른지! 어른들보다 규칙도 더 잘 지키고, 배운 대로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 아이들일세. 아이들 모습 안에 진리가 숨어 있어.”
“그런 순수하고 연약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은 정말 크게 벌을 받아야 해요.”
“연약한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라도 귀하게 대접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일 걸세.”
“누구라도 귀하게 존중하는 것…”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지, 어떤 학력이든지, 아이에게는 부모가 온 우주에서 가장 대단한 존재야. 부모가 아이를 더 사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부모들을 더 사랑해. 조건이 없거든.”
“아이들이 부모를 더 빨리 용서해주기도 하구요.”
“그렇게 귀한 아이가 바로 내 앞에 있는 데도, 어른들은 돈, 명예, 인정, 재미를 구하는 데 더 몰두해 있다네. 가족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건 없어.”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모가 싸우지 않는 것, 아이에게 말로 상처주지 않는 것.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려워요.”
“그렇다네. 따뜻한 눈길 한번, 따스한 포옹 한번, 칭찬 한마디, 이런 것들이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는 걸 잊지 말게나.”
“말 많은 엄마보다, 사랑이 많은 엄마가 되도록 앞으로 더 노력할게요.”
“아무렴. 난 또 당분간 입 다물고 보들이 자네를 믿으며 따뜻하게 지켜보겠네. 거북이들만 내 자식들이겠는가?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다 내 자식들인걸. 그럼 이만!”
암미부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미끄러지듯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교하는 동동이를 마중하러 밖으로 나가는 보들이의 뒷모습이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듯 아주 힘차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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