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기도 한 5월의 맨 앞에 놓인 건 바로 어린이날이다. 가정의 중심축이 미래 세대인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린이책 작가인 김소영은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출판사, 2020)에서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 세계가 넓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5월 가정의 달, 어린이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린이들은 안전하지 못하다. 여전히 가정폭력과 학대, 빈곤, 차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계도 제대로 넓어졌다고 할 수 없다. 위클리 87호 커버스토리는 사회적 차별 속에서 움츠러든 어린이의 세계를 회복하는 내용으로 기획했다. 1면에서는 어린이들이 여전히 학대와 폭력, 빈곤, 차별 속에 던져져 있음을 환기하고, 2면에서는 시대별로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던 캐릭터의 의미와 온 가족이 가족애를 나눌 수 있는 영화를 살폈다. 3면에서는 가족 우화를 통해 자녀-부모의 의미 있는 동행을 모색한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라면…
자유와 존엄성 보장 중요
민법상 ‘자녀 징계권’ 삭제돼
생활 속 무의식적 차별도 심각
삶의 가치 성취하도록 도와야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
원 연구주임 교수를 지냈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그의 대표작 『아동의 탄생』(문지영 옮김, 새물결, 2003)에서 오늘의 아동은 역사적 발명품이라고 주장했다. 아동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며, 독자적인 발달 시기를 밟는 인격체라는 근대적 자각은 근대교육의 진화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그는 “중세에는 아동기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어른의 모습으로, 즉 축소된 어른으로 그려질 정도로 아이들의 독자성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산업혁명기 영국의 어두운 공장 골목에 소년·소녀 노동자들이 즐비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의 지적에는 비록 논쟁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수긍할 대목도 적지 않다. ‘어른의 축소판’, 노동력을 지닌 작은 기계로서 아동은 근대사회의 여명기를 그늘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동 혹은 어린이에 대한 인식은 192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있었던 아동 복지를 위한 세계 회의(World Conference for the Well-being of Children)에서 ‘국제 어린이날’을 제정하면서 변화의 바람을 맞게 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1954년부터 유엔과 유네스코는 11월 20일을 ‘세계 어린이날’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1922년, 민족운동 차원에서 ‘어린이날’ 제정
어린이날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수하다. 일제 강점 하에서 일종의 민족운동 차원에서 일찍이 1922년 ‘어린이날(소년일)’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각 지역에서 창설되기 시작한 소년회가 기원이다. 이를 주축으로 1922년 4월 각 소년운동 단체, 신문사 등이 모여 5월 1일을 어린이날(소년일)로 정했다. 소파 방정환이 소년운동 활성화를 돕기 위해 나선 것도 이후의 일이다. 일제의 탄압이 있던 시기인 1939년부터 중단됐다가, 1945년 광복 이후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살리기 위해 1946년에 부활돼 오늘에 이르렀다.
1989년 11월 20일, 전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이라는 아동을 위한 역사적 약속을 이뤄냈다(특히 협약에서는 ‘아동’을 ‘만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으로 규정했다. 우리나라 「아동복지법」도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규정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기본 원칙은 △비차별 △아동 최선의 이익 △생존과 발달의 권리 △아동 의견 존중이다. 특히 ‘아동은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고, 자유와 존엄성이 보장되는 조건 속에서 건전하고 정상적인 방식으로 신체적·정서적·윤리적·정신적·사회적 측면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법률을 포함한 모든 수단에 의해 모든 기회와 편의가 모든 아동에게 제공돼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그렇다면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후 어린이 세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유니세프에 따르면 협약 이후 30년 간 아동의 삶은 △1990년 이후, 5세 미만 아동 사망률 50% 이상 감소 △영양 부족 상태 아동 절반으로 감소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은 인구 26억 명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동 수백만 명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의 아동기를 위협받고 있다.
세계 경제 대국 9위의 그늘
OECD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9위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린이 세계는 여전히 학대와 폭력에 노출돼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했던 ‘여행가방 아동학대 사망 사건’, ‘경남 창녕 여아 학대사건’, ‘정인이 사망사건’ 등은 아동학대와 폭력이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4월 19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민법 제915조(징계권) 조항 삭제 100여 일을 맞아 학령기 아동(초등 고학년∼고등학생)을 양육하는 학부모와 자녀 3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체벌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악용됐던 민법상 ‘자녀 징계권’ 조항이 삭제된 지 100여 일이 지났지만, 조사 대상 아동의 80%, 학부모의 66.7%는 징계권 조항 삭제로 자녀를 체벌하는 것이 금지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전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비폭력적인 훈육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실제 양육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폭력, 빈곤, 차별을 넘어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2019)에는 아동빈곤에 관한 시사적인 발언이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아동빈곤율은 낮은 수준이지만, 한부모가정(36.7%~44.8%), 조손가정(53.6%) 등 가족형태에 따라 빈곤율과 기초생활보장 수급율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라는 지적이다. 빈곤의 한 양상인 열악한 주거환경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우울하게 만들기 쉽다. 친구관계도 어렵고, 교류 활동 참여도 줄게 된다. 호흡기질환 발병률이 높아 건강에도 부정적이다.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을 가리켜 ‘삶의 가치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박탈된 상태’라고 정의했다(『삶의 질』, 1993). 그의 말인즉 빈곤은 단순히 물질적 결핍이나 저소득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좀더 다른 경로로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의 박탈이란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아동빈곤 문제는 OECD 평균 이하라고 자위할 사안이 아니다.
또 하나 어린이와 관련해 어른 세계의 무의식과 의식에 내장된 차별 문제도 시정될 필요가 있다. 근래 어떤 분야에 새롭게 입문한 새내기를 가리켜 ‘~린이’라고 명명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커피에 입문한 초보자는 ‘커린이’, 주식에 처음 뛰어든 사람은 ‘주린이’ 이런 식이다. 말에는 의식 세계가 투영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신조어에는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왜곡된 인식이 깔려 있다. 그것은 미숙하고 불완전하며, 서툰 존재라는 전제를 아무런 비판 없이 재생산하는 ‘2차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5월 어린이날을 지나면서, 우리는 과연 어린이의 세계를 어디까지 보듬어 안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