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인 리더들의 말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수사학의 대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연설할 때 수사학의 요소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면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사학, 즉 레토릭(rhetoric)이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말로 영향을 주는 설득의 기술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수사학은 오늘날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학문의 가장 선구적인 인물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꼽는다. 그는 수사학을 ‘기술적인(technical)’과 ‘기법(technique)’의 어원인 ‘테크네(tekhn?)’로 칭했다. 이는 수사학과 철학을 대비시키기 위한 의도였는데, 철학은 영원한 진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학문인 반면, 수사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수사의 첫 번째 요소는 ‘가능한 최고의 설득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발견은 또 3가지로 나뉘는데, 바로 설득에 절대적 기반을 이루는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다. 에토스는 연설가의 성실성을 기반으로 청중과의 관계를 확립하는 방식이다. 로고스는 청중의 마음을 이성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파토스는 청중에게 분노, 동정, 두려움, 환희 등의 감정을 북돋우는 방식이다. 수사학의 대가 중 ‘광장의 전투견형’, ‘독불장군 유형’, ‘소통형’으로 나눠 소개한다. 이들이 시대의 리더가 되기까지 감춰진 말의 비밀을 『철학자의 설득법』(안광복 지음, 어크로스, 2012)과 『레토릭: 세상을 움직인 설득의 비밀』(샘 리스 지음, 정미나 옮김, 청어람미디어, 2014)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오, 카틸리나, 언제까지 우리의 인내심을 모욕할 생각이시오? 그대들의 광기로 언제까지 우리를 조롱하려는 거요? 그대들이 지금처럼 파렴치하고 뻔뻔하게 굴며 거들먹거리는 걸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냔 말이오? 그대들로 인해 팔라틴 언덕에 야간 경비가 세워졌고 도시 전체를 감시하는 것을 알면서도, 또 선량한 국민들이 경고를 보내고 있고, 경계를 하기 위해 이렇게 원로원이 소집됐는데도, 이 자리에 참석한 존엄한 분들의 시선과 표정을 보면서도,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단 말이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대들의 음모를 모두 알게 됐고, 이제 그대들의 공모가 발각돼 소용없게 됐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겠소?” -키케로, 로마 원로원회의 연설 中
로마 광장의 전투견: 키케로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민중만큼 불확실하고 여론만큼 우매하며 선거인 전체의 의견만큼 거짓된 것은 없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고, 눈은 마음의 은밀한 고백자다”. 로마시대의 정치가이자 웅변가, 철학자, 고전 라틴 산문의 틀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106~B.C.43)는 2000년 전에 숨을 거뒀지만, 수사학에서 그의 규범은 19세기까지 지배적이었다.
키케로는 수사학을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숫기가 없었던 그는 웅변가가 불성실한 인상을 주는 것을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으며, 청중의 매서운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의식했다. 젊은 시절 극단에서 수업을 받으며 웅변가로서의 명성을 키워갔다. 그가 생각한 웅변은 지적 기술을 터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신체적 기술까지 익혀야 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장시간에 걸쳐 다양한 수련이 필요했다. 변호사 아폴로니우스 말론에게서 2년 간 교육을 받은 후 그는 “그를 통해 더 많은 경험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거의 다른 사람이 됐다. 이젠 목소리를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고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말한다. 이렇게 하니 문체도 차분해졌고 폐도 강해졌다. 이제는 몸도 빼빼하지 않다”라며 달라진 모습으로 자신감을 보였다.
살아있는 내내 최고의 순간들로 가득했던 키케로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가 집정관이었던 시절, 원로원 회의에서 라이벌이었던 카틸리나를 탄핵하는 연설을 했던 것이다. 카틸리나는 집정관 선거에서 패하자 무력으로 권력을 잡으려 했던 인물이다. 위에 인용한 연설 부분에서 키케로는 카틸리나를 ‘모든 사람’, ‘국민’, ‘이 존엄한 분들’로부터 소외시켰다. 게다가 ‘공모가 이미 발각됐다’며 주장의 요지를 기정사실화했다. 즉, 불확실한 무언가에 필연성을 부여해 주장을 강조했다. 이 연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수사법은 수사 의문문이다. 결론에 다다를 무렵 키케로는 카틸리나가 제 발로 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일로 여겨지게끔 50여 가지의 유도 질문을 던진다. 키탈리나는 응수하려 했으나 고함에 묻혀 제대로 말도 못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키케로가 의도했던 대로.
“영국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中 연설
독불장군식 연설의 전형: 윈스턴 처칠
제1, 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서 있었던 윈스턴 레오너드 스펜서 처칠(1874~1965)의 걸출함은 장소, 시간, 인물, 행운, 연설가로서의 재능이 한 데 어우러진 산물이었다. 전시 중의 리더로서 대중과의 일체감은 물론, 자신의 독보적 위치를 확립해야 하는데, 처칠은 그런 면에서 탁월했다. 대중과 자신의 관심 사항이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동 목표 속에서 단결을 끌어내는 연설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처칠의 연설문은 단어 수만 총 400만 개가 넘으며, 모두 모으면 책으로 8권 분량이라고 한다. 1900년부터 1955년 사이에 평균 일주일에 한 번꼴로 연설을 했다. 하지만 처칠도 키케로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웅변가는 아니었다. 그의 유창함은 결연한 의지로 노력해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그의 과장적인 표현방식은 18~19세기 영국 역사가의 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크롬웰, 버크와 같은 정치인을 롤 모델로 삼아 그들의 연설을 외웠으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독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여기에 그의 독자적인 소질까지 더해, 과장적인 표현방식을 보다 친화적인 스타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즉, 처칠은 탄탄히 훈련된 기반으로 한 언어 구사력으로 분위기를 급전환시키는 데 선수였고, 여기에 유머를 적절히 구사했다. 대중의 주목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대중에게 의외의 놀라움을 안겨주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연단에서 소리 높여 열변을 토하다가도, 연단을 내려와서는 청중의 소맷자락을 살짝 당기는 등 친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연습벌레였다. 거울 앞에서 제스처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면서 만족할 때까지 연습해야 직성이 풀렸다. 연설을 준비하는 동안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중요한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 활활 불태우기 위해 군악을 연주하곤 했다.
일각에서는 처칠을 ‘장황스럽고 화려한 문체에 도취된 기교적인 수사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묘한 행운이 없었더라면 그는 단지 자신의 견해에 도취돼 구닥다리 연설이나 하다가 역사에 허풍쟁이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화려한 문체가, 분별력은 높지만 감동이 없는 문체보다 설득력이 높을 수도 있다. 정치인 찰스 마스터맨은 처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떠한 진실이든, 일단 그가 연설을 하기 시작하면 수사적 기교를 쏟아냈다. 그는 그 진실을 확신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이 깎아내려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제가 남부로 돌아갈 때 품고 갈 신념입니다. 이런 신념을 품고 있으며, 우리는 이 나라의 듣기 거북한 불협화음을 형제애로 가득한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1963년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 연설 中
소통의 결정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현대사를 통틀어 이렇게 짧은 말로 유명한 사람이 또 있을까. 이 말은 1963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1929~1968)가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 연설에서 반복한 어구다. 이 연설은 존 F. 케네디의 민권법안의 의회 통과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 짧은 어구는 아직까지도 20세기 미국 수사학의 최고봉으로 남아 있다.
이 역사에 남은 연설에서 그는 대중에 가슴에 깊이 와 닿을 상식과 관용어를 이용했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링컨 대통령을 이야기하면서 연설의 서문을 열었고, 자연스럽게 아모스서, 이사야서, 시편 등을 떠올리도록 성경을 인용했으며, 헌법과 애국가 구절을 활용했는가 하면, 결론에서는 흑인 영가를 써서 감동과 운율을 줬다.
킹의 연설은 설교의 성격이 강하다. 설교는 독특하면서도 주목할 만한 수사학 영역이다. 하지만 킹의 연설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에서도 호소력이 있었다. 그의 표현에는 미국 헌법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수사와, 남부 성직자들 특유의 종교적 수사가 두루 구사돼 있다.
또한 킹의 연설은 남부 침례교의 전통적 설교 관점인 ‘청중의 응답식 호응’에서 이해해야 한다. 킹이 각 구를 말할 때마다 청중에게서는 ‘주여’ 또는 ‘아멘’이라는 호응이 뒤따랐다. 이런 식의 호응 구조는 연설할 때 상호 관계를 변화시킨다. 연설가와 청중이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발신자가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에토스적 호소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다. 킹은 단순히 자신을 청중과 일치시키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청중을 자신의 편에 선 연설가로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킹은 설교를 통해 이른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던 간절한 바람을 성공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