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형제에게 따뜻한 말과 함께 무료로 치킨을 제공해 화제가 됐던 홍대 앞 ‘철인 7호점’ 사장의 선행을 알린 고교생의 편지는 따뜻한 행동과 글의 무게를 보여준 좋은 사례다. 말도 이와 같아서 그 영향력이 강조돼 왔다. 말에는 형체가 없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허공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지는 말들이 쌓여 행동을 유발하고, 행동은 실질적인 결과물들을 낳는다. 우리는 그렇게 말의 힘을 확인한다.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며, 조직 생활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2면에서는 연설로 세상을 움직인 수사학의 대가들에게서 설득의 기술을 알아보고, 3면에서는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소통전문가들이 말하는 슬기로운 가정·회사 생활을 위한 말하기 기술과 일상생활에서의 실천법을 배워 본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배우 윤여정(74세)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감독상과 작품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지만, 연기로 수상한 배우는 윤여정이 한국 최초다. 이날 아카데미가 주목한 영화는 「미나리」(감독 정이삭)였지만, 주인공은 윤여정이었다. <CNN>은 “윤여정이 아카데미 쇼를 훔쳤다”라고 했고, <가디언>은 “윤여정은 오늘 밤의 승리자였다. 최고의 수상소감이다”라고 세계에 타전했다.
왜 전 세계는 윤여정이라는 인물에 열광했을까? 이는 오랜 기간 생계형 배우로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그러면서도 위트를 잊지 않는 ‘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직전에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그는 “고상한 척하는 영국인들로부터 받은 상이어서 더욱 뜻깊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해 이미 영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바 있다. 네티즌들은 윤여정의 말투를 두고 아예 ‘휴먼여정체’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하는 “어우, 증말”, “어머 얘 어떡하니?”와 같은 말투에서는 직설적이면서도 친근한 감정이 과하지 않게 다가온다는 것.
윤여정의 수상 기사에 달린 “무엇보다 영어로 말씀하셨는데 ‘여정체’로 들리는 건 나뿐이었을까?”라는 댓글은 그의 말투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진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의 심정을 대변한다. 자신을 ‘올드 피플’이라고 칭하지만, 떨리는 순간에도 재치와 유머, 솔직함을 담아 할 ‘말’은 다 하는 배우. 무턱대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닌, 주변의 흐름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됐을 때 가능하고, 이는 그의 발화를 통해 드러난다. 그가 아카데미시상식 무대에 올랐던 4월 26일은 그의 ‘말의 힘’이 전 세계를 사로잡은 ‘별의 순간’이었다.
‘나쁜 말’, 전염되고 성과 떨어뜨려
이처럼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디 이뿐이랴. 말은 조직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런 면에서 『규칙 없음』(리스 헤이스팅스·에린 마이어 지음, 이경남 옮김, RHK, 2020)에 소개된 윌 펠프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의 실험은 흥미롭다. 그는 4개 대학에서 차출한 학생들로 몇 개의 팀을 구성해 각 팀에 45분 안에 관리 업무를 끝내라는 과제를 줬다. 1등 팀에게는 100달러를 주기로 했다. 학생들은 전혀 몰랐지만, 일부 팀에는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배우가 1명씩 끼어 있었다. 빈정거리길 좋아하는 ‘삐딱이’ 역할을 맡은 사람은 “지금 장난해?” 혹은 “당신, 비즈니스 클래스 타본 적 없지?” 등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재능이 뛰어나고 아는 것이 많은 팀원들로 구성됐더라도 그중 하나가 엇나가는 말과 행동을 할 경우, 팀 전체의 능률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 달 동안 수십 차례 거듭된 실험에서 이런 배우가 한 명이라도 있는 팀은 그렇지 않은 팀에 비해 성과가 무려 30~40%나 뒤처졌다. 기존 연구 결과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과였다. 당시 연구는 팀원 개개인이 집단 전체의 가치와 규범을 따라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에서는 불과 45분 동안만 함께하는 팀이라도, 개인의 말과 행동이 다른 팀원에게 금방 전염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펠프스 교수는 “놀라운 사실은 다른 팀원들이 문제가 되는 사람의 특성을 흉내 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라면서 “그들 중 한 집단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생각납니다. 시작할 때는 참가자 모두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아무리 까다로운 과제라도 흥미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달려들었죠. 하지만 마지막엔 모두 퍼진 자세로 책상에 얼굴을 묻고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말의 공동체와 소통의 본질
이렇게 말의 힘은 개인의 품격을 드러내기도 하고, 조직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 대화 중에서 말의 품격을 잃어가고 있는 부분으로는 비속어 남발, 지나친 신조어 사용 등이 꼽힌다.
2000년 이후 국립국어원에 등록된 신조어 중에는 ‘맘충, 주린이, 설명충, 헬조선, 십선비’ 등 줄임말이 많다. ‘재벌, 갑질’ 등은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같은 특정 집단에서 쓰던 말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언어의 성질 중 하나가 경제성이라지만, 혐오 표현을 내포하는 이런 축약어들이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표현의 조악성과 좋은 글, 문장에 대한 훈련이 점점 약화됨으로써, 제대로 된 말글의 내면화 역시 결여되고 있다.
불문학자였던 고(故)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축약의 남발도 말에 가하는 폭력의 일종이지만, 욕설과는 성질이 조금 다르다. 욕설 등속은 말을 여전히 말로 대하는 반면에, 과도한 축약어는 말을 오직 기호로만 대한다. 기호를 소통의 도구로 삼는 사람은 오직 외부와 소통할 수 있을 뿐인데, 말을 말로 대접해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도 소통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말은 공동체의 규범이다. 중요한 것은 타자를 향한 말이 결국은 발화자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 말과 행동 사이에 ‘부끄러움’을 넣다
공자는 “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고자 언지불출 치궁지불체야)”라고 말했다. ‘옛날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한 말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는 의미다. 공자는 말과 행동 사이에 ‘부끄러움’을 넣었다. 이 부끄러움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감을 부여하고,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흔히들 나이 40이면 스스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얼굴에 드러나는 인격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하고, 말 또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심신으로 40년을 살았다면, 40세 이후 내 표정은 내가 만든 말로 형성돼 온 것은 아닐까? 지금 당신의 삶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 건 주변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울을 바라보자. 그리고 한 발짝 떨어져 내가 했던 말들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