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춘기 자녀와 소통하고 싶으세요?”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법’ 강연에서 부모님들께 드린 오프닝 멘트다. 열망을 가득 담은 “네!”라는 대답에 이어 내가 내놓은 대답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말 안 걸면 돼요.” 청중들은 함께 웃는다. 말 걸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아들, “엄만, 알지도 못하면서…” 하던 딸이 떠오르며 ‘자녀에게 말 안 거는 게 소통’이라는 말이 웃픈 현실임을 우리 부모는 안다.
아이가 어렸을 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언제 떨어져 나가나 싶었는데 이제 부모가 사춘기 자녀에게 자꾸 다가가 말 걸고, 자녀는 그런 부모로부터 달아나려고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조언’도 해야 하고 ‘진로와 진학’에 대한 가이드도 하고, 학폭 등 고민은 없는지 궁금하지만 아이는 도통 입을 열지 않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자녀가 사춘기가 되어 과묵해진 게 아니다. 아이들은 말한다. “부모님 하고는 말이 안 통해요.” “엄마 아빠 하고 말해봤자… 뻔하잖아요.”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더니 이 말을 듣는 부모는 아프다. 아이는 ‘부모 빼고’ 다른 사람들과만 소통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제 와서 어떻게 대화해야 하지? 자녀와 소통하려니 소재는 빈곤하고, 대화 코드는 번번이 빗나가고, 대화 스킬도 그다지 없는 부모는 당황스럽다. 유아기를 통틀어 지금까지 자녀와 대화한 거라곤, “씻었어? 숙제는? 학원은?”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말’만 했지, 알고 보면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對話)’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는 늘 아이 위에 군림하며 명령과 잔소리를 일삼지 않았던가.
부모가 권위적으로 통제하는 동안 아이의 인지 능력과 부모를 평가할 줄 아는 자아가 성장했다.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는 부모의 화풀이나 일방적 조언이었음을 깨달은 자녀들에게 우리 부모는 ‘입만 열면 잔소리!’ ‘엄마 아빤 내가 잘할 땐 가만 있다가 내가 못할 때만 콕 집어 혼만 내는 분’으로 자녀에게 인식된 잔소리 대마왕, 지적질 끝판왕이다.
부모도 할 말이 많다. “알아서 하면 좀 좋아? 나 좋으라고 하는 거야? 너를 위해서지!”다. 하지만 그럴까? 부모 속 편하자고 아이를 권위로 누르고 부모의 말만 강요한 적은 없는가. 아이들은 비장한 부모보다는 유연성을 가진 따뜻하고 유머 있는 부모가 좋은데 우린 끝장토론으로 아이를 이기려고만 하는 부모는 아닌가.
‘맞짱’ 뜨는 게 아니라 맞장구치는 부모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이 기특해서 엄마는 기분 좋게 간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아들의 방문을 여는 순간 엄마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온통 어질러진 아들의 방이 트리거, 즉 방아쇠가 된 것이다.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방 좀 치우라고 이야기한 게 몇 번이야? 이게 방이야? 이런 쓰레기장 같은 데서 공부가 돼?” “나중에 치울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 마음대로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자신의 말에 아들이 벌떡 일어나 방 치우는 시늉이라도 하길 기대했는데, 오히려 적반하장 반응을 보이자 엄마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네 방? 여기가 네 집이야?” “내 방이죠!” “어째서 네 방이야? 여기는 내 집이야!” 엄마가 생각하기에도 유치한 공격이었지만 엄마는 아들의 입에서 나온 ‘내 방’이라는 말을 대적할 만한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다. 엄마와 아들은 네 방, 내 집으로 싸우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고등학생 아들과 엄마의 대화 한 토막이다. 남의 집 이야기를 잠시 들여다만 봐도 사춘기 자녀의 특성이 보인다.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는 모순덩어리 자녀와 마음 통하는 대화를 하기란 좀처럼 어렵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안다. 여전히 자신이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부모의 품속으로 다시 들어가 숨고 싶지만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부모의 감정만 툭툭 건드리며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그래도 여전히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부모에게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평소엔 “노터치”를 외치며 제멋대로 하다가 불리할 때만 어린아이처럼 구는 아이가 부모에게 곱게 보일 리 없다. ‘오냐 오냐 해줬더니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오네! 어디 해볼래?’라며 감정적 폭격을 퍼붓는다. 아직 품안의 자식이라 여기던 아이가 한껏 이빨을 드러낸 야수처럼 굴면 당황한 부모도 ‘맞짱’뜨며 아이 수준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이기기보다 부모를 뛰어넘게 하라
사춘기 아이와의 대화가 특히 힘든 이유는 ‘공격성’ 때문이다. 때로 이 공격성이 부모를 이기려는 안간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모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음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자녀의 이런 모순과 욕구를 다그치고 채근하면 역효과다. 사춘기 자녀의 공격성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구, 상대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긍정적 동기부여가 된다. 부모를 뛰어넘어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이는 지금 잘 자라는 중이니 부모가 가끔은 도망쳐주고, 져주고, ‘네가 옳다’고 지지해주자.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법, 세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후일을 도모하는 대화를 하자. 맹수를 만났을 때 생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다. 아이와 말싸움하지 말고 이성적인 부모가 먼저 정신을 차려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좋다. 두 번째, 자녀 뒤를 따라다니며 말을 걸지 않는다. 사춘기 자녀에게는 말 걸기보다 더 중요한 게 아이가 입 열 때 적극 들어주는 것이다. 세 번째, 좀 더 성숙한 부모라면 유머를 발휘해 대화한다. “내 방이니까 나가 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네. 방주인님, 집주인님은 이만 나가 볼게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이 어른이 된 것처럼 굴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부모의 사랑을 확인한다. 다만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이 다소 비상식적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여전히 날 사랑해요?”라는 식이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서 ‘진짜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거치는 아이의 발달단계를 이해한다면 부모의 ‘쓸데없는 분노’가 솟구치지 않을 것이다. 부디, 사춘기 자녀와의 슬기로운 대화로 부모와 자녀 모두 행복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