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지식생태계 왜곡
휴대성 좋은 작은책 장점 많아
‘아로리총서’ 등 새로운 시도
『출판사전』(범우사, 2002)에 따르면, 문고본(文庫本)은 ‘문고형식으로 간행한 책’을 가리키며, 문고는 ‘소형의 경장본’을 말한다. <위클리> 제15호는 뜨거워지는 여름, ‘스마트폰 시대의 문고본’을 호출했다. 이제 더 이상 책은 주머니에 쏙 들어가지 않는다. 책 대신에 각양각색의 스마트폰이 주머니를 차지했고, 손바닥 위에 올라섰고, 온통 눈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다. 그렇기에 ‘문고본’을 호출한다는 것은, 과거의 향수를 소비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지(知)의 전체성’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다시 출현한 문고본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의 경험을 제공하는 동행자가 될 수 있을지, 도대체 문고본은 어떤 ‘추억’을 만들어줬기에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것인지, 문화의 일부로서 문고본의 역사와 특징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본다.
해방 후 출판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문고본은 1970년대에 정점을 이뤘다. 1976년 무렵30여 출판사에서1천여종의 신간을 쏟아냈을 정도다. 정치적으로 가장 엄혹했던 시절에 문화사적 자양이 대중화됐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이들 문고본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급속히 쇠퇴했다. 출판평론가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한자 혼용에서 한글 전용으로, 가로 조판에서 세로 조판으로, 맞춤법의 변천, 컴퓨터 편집의 도입, 고급 컬러인쇄 도입 등으로 문고본 출판이 감소했다. 또한 신세대 독자의 수요 감소, 출판사와 서점들이 상대적으로 이윤이 적은 문고본 취급을 회피한 것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고 문고본 쇠퇴를 설명한다.
주춤거리던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 책세상의 ‘책세상문고’(2000년)와 살림출판사의 ‘살림지식총서’(2003년)가 문고본 전통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떠맡았지만, 고군분투 상태였다. 2008년에는 자취를 감췄던 대학출판부의 문고본도 등장했다. 우리 대학 출판문화원이 내놓은 ‘아로리총서’였다. 그러다가 2017년 민음사의 ‘쏜살문고’, 마음산책의 ‘마음산문고’ 등이 후발 주자로 문고본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달(2019.6.19.~23)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출현(Arrival)’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미래형 도서를 출품한 출판사 부스에 인파가 몰렸다. 오디오북에 오랜 시간 공들여온 민음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전작 오디오북으로 제작해 전시했다. 사람들이 바글거린 이유다. 그 한쪽에 이 출판사가 2017년 선보이기 시작한 ‘쏜살문고’가 비치돼 있었다. 색다른 편집과 큐레이션을 거친 김승옥의 『차나 한 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등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국제도서전 부스에서 외면 받았다고 해서 새로운 문고본이 홀대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음사는 『자기만의 방』(이미애 옮김)을 2006년 ‘세계문학전집 130’ 반양장본으로 소개한 바 있다. 「자기만의 방」과 「3기니」 두 작품을 묶은 책이다. 502쪽에 정가 1만1천원. 2017년에 선보인 쏜살문고 『자기만의 방』(이미애·이민경 옮김)은 168쪽에 5천800원이었다. 얇고 싸게 한 것이다. 온라인서점 한 곳에서 이 책의 반응을 살펴봤는데, 흥미로웠다. 한 구매자가 남긴 댓글이 눈길을 끌었다. “기존에 이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리뉴얼 된 후 다시 구입했습니다. 가볍고 디자인도 예뻐서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주로 20~30대 여성층이 주 구매층이었다.
크기와 휴대성, 그리고 가격
어쩌면 문고본 『자기만의 방』을 구입한 익명의 독자가 남긴 짧은 댓글에서 문고본의 강점, 쇠퇴하다가도 다시 호출돼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크기와 휴대성, 가격이다. 칼럼니스트 이수진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한 칼럼에서 문고본 책이 좋은 이유를 ‘값이 싸다, 가볍다, 보관이 쉽다, 어디서나 살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1960년대, 1970년대의 문고본은 전방위적 지의 종합이란 거대한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오늘날의 문고본에서 이런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하기는 어렵다. 책의 전문화와 지식의 개방이 상당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실제 서구의 경우, 문고본은 ‘단행본 하드커버 출판 → 문고본 출판’ 방식을 취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쉽게 말해, 역량 있는 저자들이 좋은 책을 쓰고, 이걸 좀더 쉽게 대중에게 풀어주는 방식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출판사의 관점이 아닌 독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고본은 가벼운 읽기에서 시작해서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안내하는, 일종의 징검다리다. 그렇다면 이 ‘징검다리’ 역할을 좀더 심화하는 건 어떨까. 2008년 우리 대학 출판문화원이 ‘아로리총서’를 세상에 내놓을 때, 가장 염두에 둔 것도 ‘평생학습시대를 맞아 교양인에게 필요한 기초 지식을 지속적으로 저렴하게 제공한다’였다. 역시 ‘징검다리론’을 뒷받침하는 구절이다.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정보를 만나는 것은 수동적인 지식의 습득 방식이다. ‘텍스트’로 구성된 책에서 걸러내는 능동적인 읽기 방식은 그것과는 다른 각고의 노력을 요청한다. 문고본으로 이런 트레이닝을 거칠 수 있다는 건 큰 강점이다.
‘앎의 완성’으로 가는 ‘징검다리’
출판평론가인 이권우 경희대 특임교수(경희대출판문화원)의 지적도 경청할 만하다. 그는 문고본의 등장을 ‘독서인구가 줄면서 생긴 현상’으로 설명하면서 문고본 기획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독서력이 떨어지니, 가볍고 얇은 책을 내서 읽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시장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한 기획이라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문고본 책들은 모두 퍼즐의 조각들이다. 모두 맞추면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나는 것처럼 ‘지의 종합’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과거 1970년대 ‘삼중당문고’의 백과전서적 지식의 재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각들 하나하나가 징검다리가 돼 더 깊은 지(知)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점에서 훨씬 진화됐다고 할 수 있다. 『법의학의 세계』,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이상 살림지식총서), 『자유론』, 『공산당선언』(이상 책세상문고), 『교양이란 무엇인가』, 『글쓰기의 지도』(이상 아로리총서) 등 잠깐 훑어봐도 문고본 도서목록은 하나하나가 징검다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 누군가 짧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스마트폰 대신 문고본 책 한 권을 주머니에 꽂고 낯선 세계로 나아가길 권한다. 그 낯선 세계는, 루카치식으로 말한다면, 낯설고 두려운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곧 친숙한 세계가 될 것이다.
휴대성 좋은 작은책 장점 많아
‘아로리총서’ 등 새로운 시도
『출판사전』(범우사, 2002)에 따르면, 문고본(文庫本)은 ‘문고형식으로 간행한 책’을 가리키며, 문고는 ‘소형의 경장본’을 말한다. <위클리> 제15호는 뜨거워지는 여름, ‘스마트폰 시대의 문고본’을 호출했다. 이제 더 이상 책은 주머니에 쏙 들어가지 않는다. 책 대신에 각양각색의 스마트폰이 주머니를 차지했고, 손바닥 위에 올라섰고, 온통 눈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다. 그렇기에 ‘문고본’을 호출한다는 것은, 과거의 향수를 소비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지(知)의 전체성’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다시 출현한 문고본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의 경험을 제공하는 동행자가 될 수 있을지, 도대체 문고본은 어떤 ‘추억’을 만들어줬기에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것인지, 문화의 일부로서 문고본의 역사와 특징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본다.
해방 후 출판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문고본은 1970년대에 정점을 이뤘다. 1976년 무렵30여 출판사에서1천여종의 신간을 쏟아냈을 정도다. 정치적으로 가장 엄혹했던 시절에 문화사적 자양이 대중화됐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이들 문고본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급속히 쇠퇴했다. 출판평론가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한자 혼용에서 한글 전용으로, 가로 조판에서 세로 조판으로, 맞춤법의 변천, 컴퓨터 편집의 도입, 고급 컬러인쇄 도입 등으로 문고본 출판이 감소했다. 또한 신세대 독자의 수요 감소, 출판사와 서점들이 상대적으로 이윤이 적은 문고본 취급을 회피한 것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고 문고본 쇠퇴를 설명한다.
주춤거리던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 책세상의 ‘책세상문고’(2000년)와 살림출판사의 ‘살림지식총서’(2003년)가 문고본 전통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떠맡았지만, 고군분투 상태였다. 2008년에는 자취를 감췄던 대학출판부의 문고본도 등장했다. 우리 대학 출판문화원이 내놓은 ‘아로리총서’였다. 그러다가 2017년 민음사의 ‘쏜살문고’, 마음산책의 ‘마음산문고’ 등이 후발 주자로 문고본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달(2019.6.19.~23)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출현(Arrival)’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미래형 도서를 출품한 출판사 부스에 인파가 몰렸다. 오디오북에 오랜 시간 공들여온 민음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전작 오디오북으로 제작해 전시했다. 사람들이 바글거린 이유다. 그 한쪽에 이 출판사가 2017년 선보이기 시작한 ‘쏜살문고’가 비치돼 있었다. 색다른 편집과 큐레이션을 거친 김승옥의 『차나 한 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등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국제도서전 부스에서 외면 받았다고 해서 새로운 문고본이 홀대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음사는 『자기만의 방』(이미애 옮김)을 2006년 ‘세계문학전집 130’ 반양장본으로 소개한 바 있다. 「자기만의 방」과 「3기니」 두 작품을 묶은 책이다. 502쪽에 정가 1만1천원. 2017년에 선보인 쏜살문고 『자기만의 방』(이미애·이민경 옮김)은 168쪽에 5천800원이었다. 얇고 싸게 한 것이다. 온라인서점 한 곳에서 이 책의 반응을 살펴봤는데, 흥미로웠다. 한 구매자가 남긴 댓글이 눈길을 끌었다. “기존에 이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리뉴얼 된 후 다시 구입했습니다. 가볍고 디자인도 예뻐서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주로 20~30대 여성층이 주 구매층이었다.
크기와 휴대성, 그리고 가격
어쩌면 문고본 『자기만의 방』을 구입한 익명의 독자가 남긴 짧은 댓글에서 문고본의 강점, 쇠퇴하다가도 다시 호출돼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크기와 휴대성, 가격이다. 칼럼니스트 이수진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한 칼럼에서 문고본 책이 좋은 이유를 ‘값이 싸다, 가볍다, 보관이 쉽다, 어디서나 살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1960년대, 1970년대의 문고본은 전방위적 지의 종합이란 거대한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오늘날의 문고본에서 이런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하기는 어렵다. 책의 전문화와 지식의 개방이 상당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실제 서구의 경우, 문고본은 ‘단행본 하드커버 출판 → 문고본 출판’ 방식을 취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쉽게 말해, 역량 있는 저자들이 좋은 책을 쓰고, 이걸 좀더 쉽게 대중에게 풀어주는 방식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출판사의 관점이 아닌 독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고본은 가벼운 읽기에서 시작해서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안내하는, 일종의 징검다리다. 그렇다면 이 ‘징검다리’ 역할을 좀더 심화하는 건 어떨까. 2008년 우리 대학 출판문화원이 ‘아로리총서’를 세상에 내놓을 때, 가장 염두에 둔 것도 ‘평생학습시대를 맞아 교양인에게 필요한 기초 지식을 지속적으로 저렴하게 제공한다’였다. 역시 ‘징검다리론’을 뒷받침하는 구절이다.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정보를 만나는 것은 수동적인 지식의 습득 방식이다. ‘텍스트’로 구성된 책에서 걸러내는 능동적인 읽기 방식은 그것과는 다른 각고의 노력을 요청한다. 문고본으로 이런 트레이닝을 거칠 수 있다는 건 큰 강점이다.
‘앎의 완성’으로 가는 ‘징검다리’
출판평론가인 이권우 경희대 특임교수(경희대출판문화원)의 지적도 경청할 만하다. 그는 문고본의 등장을 ‘독서인구가 줄면서 생긴 현상’으로 설명하면서 문고본 기획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독서력이 떨어지니, 가볍고 얇은 책을 내서 읽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시장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한 기획이라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문고본 책들은 모두 퍼즐의 조각들이다. 모두 맞추면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나는 것처럼 ‘지의 종합’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과거 1970년대 ‘삼중당문고’의 백과전서적 지식의 재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각들 하나하나가 징검다리가 돼 더 깊은 지(知)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점에서 훨씬 진화됐다고 할 수 있다. 『법의학의 세계』,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이상 살림지식총서), 『자유론』, 『공산당선언』(이상 책세상문고), 『교양이란 무엇인가』, 『글쓰기의 지도』(이상 아로리총서) 등 잠깐 훑어봐도 문고본 도서목록은 하나하나가 징검다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 누군가 짧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스마트폰 대신 문고본 책 한 권을 주머니에 꽂고 낯선 세계로 나아가길 권한다. 그 낯선 세계는, 루카치식으로 말한다면, 낯설고 두려운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곧 친숙한 세계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