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회색 코뿔소(grey rhino)는 덩치가 커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띄며 진동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코뿔소가 달려오면 정작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이 굳어버리게 된다. 충분히 예견되며 파급력이 클 것이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소를 일컬을 때 회색코뿔소가 종종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급격한 인구감소로 대학 입학지원자가 줄면서 지방대학이 폐업할 거라는 예상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회색 코뿔소의 진동을 진즉에 감지했지만 대처에 소극적인 교육부 책임이 크다. 그러다가 벚꽃이 다 지고 나서 쓰러지는 대학을 본 후에 대책이랍시고 발표했지만,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을 빗겨 갔다. 오늘의 대학위기의 본질은 백화점 진열장처럼 나열한 분과학문별 매장설치에 있다. 그런 매장설치를 허가한 교육부의 책임이 무엇보다 중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에서 1995년 5월 31일 발표한 ‘5·31 교육개혁안’에 조응한 이른바 ‘대학설립준칙제도’의 시행(1996년)으로 부실대학을 양산 시킨 정책책임자들은 어디에서 대학의 위기를 지켜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준칙주의는 일정한 기준(땅, 건물,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만 충족되면 대학설립을 허용함으로써 특성화된 소규모 대학설립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2011년까지 60여 개 대학이 새로 세워졌다. 이들 대학이 대부분 부실대학으로 전락했다. 벚꽃은 죄가 없다.

 

대변혁의 시대는

보다 본질적인 교육 콘텐츠에서의 심층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콘텐츠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대학 스스로 내놔야 한다.

 


당시 교육개혁위원회가 새로운 교육체제 구축을 위해 ‘교육법’을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으로 개편했다. 또 ‘사회교육법’ 전면 개정과 ‘평생학습법’ 제정을 개혁 내용에 포함했다. 아울러 학점은행제 도입, 대학 복수전공제 권장, 전문대학원(법조인, 의사, 성직자, 교육 양성 위해)제도 도입, 국립대 특수법인화 추진 등을 5·31 교육개혁안에 담았다.
정책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가진다.  2007년에 미국에서 발사한 이 우주선의 추진 로켓 폭은 143.51cm였다. 로켓을 옮기는 기차 철로의 폭에 맞춘 크기다. 2천 년 전 로마의 마차가 2천 년 후, 우주선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경로의존성’을 설명해주는 예시다. 몇 천 년 이어질 수 있기에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위기의 한국 대학 시스템도 이런 경로의존성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이것은 처음 길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그 길로 가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역사에서 가장 질긴 것 중 하나다. 2007년에 미국에서 발사한 우주선 인데버호의 추진 로켓 폭은 143.51cm였다. 과학자들은 더 큰 추진 로켓을 원했지만, 로켓을 옮기는 기차 철로의 폭에 맞춰야만 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처음 탄생한 철도는 말이 끄는 광산용 수레의 폭을 기준으로 삼았다. 영국 마차의 선로 폭은 2천 년 전 로마 도로에서 마차를 끌던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을 기준으로 정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결과적으로 2천 년 전 로마의 마차가 2천 년 후, 우주선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번 길(기준과 규칙)이 정해지면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다. 극단적인 예라 할지 모르지만, 정책의 경로의존성은 몇 천 년을 지속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 전에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학교 시스템은 산업혁명 기간인 19세기 방식이다. 단일화, 표준화, 대량화라는 산업사회의 가치를 실현하는 노동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깨지면 대학은 급속하게 붕괴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벚꽃과 대학 위기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대변혁의 시대는 보다 본질적인 교육 콘텐츠에서의 심층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매체는 콘텐츠를 옮기는 도구일 뿐이다. 콘텐츠가 위기극복의 본질이란 말이다. 콘텐츠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대학 스스로 내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 진학 연령에 있는 사람들도 대학을 외면할 게 뻔하다.
게다가 교육이 가지는 공공재(public good)적 성격보다는 사적재(private good), 더 나아가 지위재(positional good)의 의미가 더 강해지고 있다. 부모 세대의 경제력 격차가 교육 불평등으로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다음 세대의 경제력 격차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이 경제적 양극화의 다른 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바야흐로 대학, 그 중에서도 오프라인 대학의 종말이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럴듯한 지적 허세를 부리는 대학교수를 가리켜 ‘계란 머리(egghead)’라고 하는데, 계란이 깨지게 생겼다. 학생이 없고 대학이 사라지는 상황에 처한 교수는 설 자리가 없다.
대량 지식을 전달하는 시스템의 위기는 통신 기술, 인공지능으로 개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3S(same age, same time, same place)교육에서 3A(anyone, anytime, anyplace)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고등교육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4년만 지나면 모든 고객을 내쫓는 산업이다’라고 했지만 이제는 고객이 그 산업을 퇴출할 태세다. 우리 대학은 이런 파고를 잘 탈 준비가 잘 이뤄지고 있는가. 회색코뿔소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한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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