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AI 시대의 생각법

근래 사회 변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인공지능의 급부상을 꼽을 수 있다. 음성인식에서 자율주행자동차, 의료까지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문명의 등장을 상수로 전제한다면, 낙관론-비관론은 그리 생산적인 담론 작업이 될 수 없다. 위클리 91호 커버스토리를 ‘AI 시대의 생각법’으로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연 AI 시대에 진짜 필요한 인간 능력은 무엇일까? 1면에서는 일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진화, 지능을 지닌 기계의 등장으로 인한 인간 이해의 변화 등을 짚으면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능력이 무엇인지 환기하고, 2면에서는 AI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추이라고 한다면, 우리 공동체가 모색해볼 수 있는 AI와의 협력은 무엇인지 철학자에게 들어본다. 3면에서는 AI 시대에 생각(사고)을 키우는 방법과 함께 영화에 그려진 다양한 AI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변화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다. ‘음성인식 인공지능 비서’에게 오늘의 날씨를 물어보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해 집 안의 모든 사물인터넷 기기, 예컨대 가전제품, 에너지 소비장치, 보안기기 등을 통신망으로 연결해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홈’ 시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마트홈은 원격제어에서 발전해 AI가 주어진 상황과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하고, 이에 맞는 결과를 스스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사용자는 머잖은 미래 자율주행자동차로 출퇴근할 것이며,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집에서 쇼핑을 하며, IBM의 왓슨과 같은 컴퓨터시스템으로 진료를 받게 될 것이다.

 


2016년 알파고에 놀란 세계
인간의 일자리 위협도 증대

인공지능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의 근본적 능력은 ‘의심’

 

2025년, 인간과 기계 노동시간 같아져
문제는 인공지능 혹은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대량실업과 경제적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데이터가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은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라는 독특한 보고서를 발표해왔다. 2018년, WEF는 「일자리의 미래 2018」 보고서에서 “지금부터 2022년 사이에 약 7천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지만, 기계와 컴퓨터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약 1억3천300만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2020년 10월 세계경제포럼은 다른 분석을 던졌다. 이들은 2025년까지 행정, 회계, 제조업 등의 분야에서 8천500만 개의 일자리가 기계·기술로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2025년이면 인간과 기계가 일하는 시간이 같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WEF는 2018년 보고서와 달리 2025년까지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콘텐츠 생산 등의 분야에서 9천7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보다 일자리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IBM 왓슨 도입한 의료계의 교훈
물론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있다. ‘왓슨(Watson for Oncology)’의 국내 의료계 도입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IBM이 2010년 개발한 ‘왓슨’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2016년 12월 길병원에서였다. 이후 2017년 부산대병원, 건양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조선대병원, 화순 전남대병원 등에서도 잇따라 들여와 화제가 됐다. 그러나 국내 의료 실정과 맞지 않아 비용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지적과 함께 그 열풍이 꺾였다. 재계약을 포기하는 병원이 속속 생겨났기 때문이다.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지능 검사나 체스에서 어른 이상의 성능을 발휘하는 컴퓨터를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지각이나 이동 능력 면에서 한 살짜리 아기만 한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만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에 따르면 의사의 능력은 인공지능이 따라 하기 쉬우나 간호사나 베이비시터 등에 필요한 능력은 인공지능에는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모라벡의 역설’에 착안한다면, 계산이나 암기와 함께 추상적인 아이디어와 개념을 키우는 사고훈련, 즉 ‘생각의 힘’에 좀더 주목할 수 있다. 이것은 기존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성찰도 의미한다.
그렇다면 AI가 점점 더 전면화 되고 있는 오늘날, 인공지능이 이끄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간의 능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논의를 모아보면 대략 이렇다. 기존의 것을 연결해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연결지능,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설득해나갈 수 있는 인성,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원활하게 의견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이다. 이런 능력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교육제도의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19세기적인 지식 주입형 학습에는 더 이상 매달릴 구석이 없다.
저널리스트인 캐서린 슐츠의 말을 곱씹어보자. 그는 『오류의 인문학』(안은주 옮김, 지식의날개, 2014)에서 실수투성이인 인간의 오류를 파고들면서 “확신은 우리의 다른 결점들을 보완해 줄 두 가지 미덕인 상상력과 공감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이 확신은 의심과 관련이 깊다. 슐츠는 햄릿의 예를 들어, 그가 우물쭈물 우유부단하게 보였던 점을 재해석한다. 햄릿이 보였던 의심하는 능력은 평론가 제임스 보즈웰(James Boswell, 1740~1795)의 해석 이후 ‘결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햄릿이 보여준 그 회의, 의심, 고뇌는 결점으로 여겨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햄릿이 도대체 무엇을 두고 그렇게 꾸물거렸냐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에서 새로운 교육을
슐츠는 이 대목에서 그가 의심하면서 꾸물거렸던 내용이 단순히 무엇을 먹을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 삶과 내세의 의미, 군주이자 삼촌인 사람을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음을 환기한다. 그렇기에 슐츠가 보기에 “햄릿은 진정 회의와 싸운다. 사색하는 인물로서 모순과 복잡성에 민감하고, 오류의 가능성에 고뇌한다. 그의 회의는 상황에 대한 진정한 불확신과 그가 저지르려고 고민하는 행동의 중대함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것”이 되고 만다.
인공지능 시대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 여전히 교육이 새로운 희망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면 19세기적 교육 시스템, 산업화 역군 양성에 맞춰진 교육제도는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독일의 경제 전문지 <브란트아인스(brand eins)>의 기자로서 과학기술 전문 기사를 쓰면서 <이코노미스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토마스 람게는 그의 신작 『누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나?: 생각하는 기계 시대의 두려움과 희망』(이수영·한종혜 편역, 다섯수레, 2021)에서 인공지능 시대 정말 던져야 할 근원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계가 점점 더 지능화된다면 인간은 어떤 능력을 개발해야 할까?”라고 질문하면서,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인간의 능력은 의심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기계가 우리에게 말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사유해야 한다.” 17세기 초 데카르트가 던졌던 명제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dubito, ergo cogito, ergo sum)”가 다시금 겹쳐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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