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AI 시대의 생각법

복잡성은 지능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인간의 경우 그것은 신경계를 기반으로 구축된 뇌, 그것을 일부분으로 포함하는 살아있는 몸, 환경, 그리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건으로 한다. AI의 경우에는 처리할 문제의 복잡성, 하드웨어 및 알고리즘의 복잡성, 그리고 이용하는 데이터의 복잡성 정도로 요약된다.
이 차이에 대한 가장 진지한 사색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HAL 9000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회로에 각인된 이율배반적인 두 가지 요구의 논리적 충돌을 해결하려고 승무원의 살해를 시도한다. 동시에 데이비드 보먼이 자신의 모듈을 제거하려고 하자 그는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의학 분야에서 AI는 어떤 난치병의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런데 그 AI는 그 병을 ‘앓을’ 수 있는가?

 


인간과 AI의 협동 작업은 불가피하다.
한글로 사유하는 AI와 상호작용하는

한국인의 삶을 상상해보자.
자신의 새로운 문제 상황을 고민하는 한국인을
그리는 것이 그렇게 불가능한 것인가? 

 


사회적 양식이 된 데이터 처리
현실적으로 AI는 복잡한 문제를 고도화된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복잡한 데이터를 이용해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가운데 마지막 낱말은 점점 더 ‘크기’를 뜻하는 어휘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빅 데이터, 하이퍼스케일, 거대, 초거대 등등. 복잡성과 크기의 문제는 AI의 핵심이다. 기술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남는 것은 하나다. 즉 데이터의 내용과 크기이다.
이 복잡성 측면에서 데이터는 AI에 이르러 인간의 범위를 벗어났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기보(棋譜)를 검토한 프로 바둑기사는 알파고 이전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 방식의 혁신성과 속도, 그리고 이를 이용한 문제 해결의 수월성 제고는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양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 귀결 가운데 하나는 데이터 자체가 재화로 변모하는 현상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 구축돼 있는 다양한 데이터베이스의 존재들과, 이렇게 수집되고 가공된 것을 배경으로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메타버스(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는 그 대표적인 예증이다. 지금도 진행 중일 뿐만 아니라, 근미래에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사회적 현상 가운데 하나는 바로 데이터 전쟁이다. 
이런 점에서 흥미로운 우리 문화사의 한 장면이 있다. 한글은 ‘거의 모든 한국인’들에게 ‘거의 공짜’로 주어졌다. 그것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자본의 규모를 상상해보라. 다시 그것을 한문을 익히기 위해 필요했던 자본과 비교해 보라. 그 다음 한문을 익힌 지배집단의 시각을 자본주의적으로 재구성해보라. 자신들이 투자하고 독점함으로써 결국 사회적 지배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지적 자본으로서 한 언어를 대체하는 대안 언어가 거의 공짜로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가능성을 상상할 때, 자신들의 자본이 무화되는 상상 공간의 가능성은 그들을 얼마다 두렵게 만들었는가?  
AI 시대의 어휘로 표현하자면 한글을 제안했던 세종대왕의 행위는 자본주의적 양식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왜냐하면 한글의 등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적 데이터 생산의 출발을 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종 자신이 생산자로서 철저하게 통치계급의 최고위층이었지만, 사용자를 ‘공동체의 모든 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조지 오웰보다 몇 세기를 앞선 안티 빅-브라더 기획을 출현시켰다는 뜻이다. 우리 문화사에서 한글-기계로서 세종은 현대의 AI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의 복잡성을 추동하는 스위치 가운데 하나를 눌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종의 사례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전체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데이터를 한글처럼 만들어야 할 영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 공용화된 데이터의 대략적인 양상과 크기를 명료화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다. 즉 그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생산한 모든 텍스트’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창조된 어떤 AI는 이런 문화사적 요구를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국인이 접근하고, 이용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하기 위해 기존의 데이터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상의 AI를 상상할 수 있다. 이 AI는 한글로 인류가 만든 모든 지적 성취를 보관하고 가공하며, 주어진 문제 해결을 위해 독자적인 배열을 시도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유한다’. 자연스럽게 한국인은 여기에 접근하는 포털의 언어로서 한글을 사용한다. 내게는 이것이 바로 AI 시대 한글을 가진 공동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어떤 것이다.
이 기획의 특징은 인류의 모든 문자적 비문자적 텍스트와 한글이라는 두 거대 범주의 혼성이라는 점 이외에도 또 다른 협동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AI의 지능과 속도 및 효율성을 한국인의 문화적 조건과 혼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생산하지 않은 텍스트들이 한국인에게 익숙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전환 작업에 이 두 영역은 공히 그들의 최고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론상 모이는 데이터의 질과 양이 늘어날수록 AI의 범용화 가능성은 촉진될 것이다.

당신은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렇게 사는’ 대신에 그렇게 사는 것을 ‘본다’. AI를 이용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그 문제로 뛰어들지 않고 AI를 경유한다. 땅을 파기 위해 손을 쓰는 대신에 포크레인을 이용하는 것처럼 이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반면에 사례를 극단화하자면 우리는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이를 AI에게 위임하는 방식을 개발하는 데 몰두할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이미 나타났었다. 그리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AI인 심사숙고(深思熟考, Deep Thought)는 750만년의 사색 끝에 42라고 대답했다. 물론 SF소설의 짓궂은 농담이다.
포크레인의 사용은 단순한 삽질의 대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삽질을 배우는 대신 포크레인의 운전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AI의 사용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행동의 의의는 분명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서 새로운 중요성을 가지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문제와 대처 방식들이 출현할 것이라는 것도 어긋난 추론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AI를 매개로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양식을 출현시킬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AI의 협동 작업은 불가피하다. 한글로 사유하는 AI와 상호작용하는 한국인의 삶을 상상해보자. 낙관적인 HAN 9000은 지구상의 모든 지적 성취를 한글로 포괄하는 데이터베이스를 배경으로 메타버스의 세계를 창출할 것이다. 그 세계의 한 가운데서 활동하며 자신의 새로운 문제 상황을 고민하는 한국인을 그리는 것이전남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조선의 유학자들, 켄타우로스를 상상하면 理와 氣를 논하다』, 『인지유학의 첫걸음』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이정유서(二程遺書)』, 『이정외서(二程外書)』 등이 있다.  그렇게 불가능한 것인가? 
 『노자』42장에서는 신비주의적 어투로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문을 엿보지 않아도 천도(天道)를 본다”라고 했다. 과거의 불투명한 잠언이 예측할 수 없었던 방식을 통해 현실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했다. 늘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고, 그 다음에 남는 것은 새로운 것을 향한 열정과 무모해 보이는 실천뿐이다. 끝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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