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자 최봉영은 생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생각은 ‘生覺’ 또는 ‘省覺’ 따위로 표기된 경우도 있으나, 한국말에서 생각은 ‘生覺’이나 ‘省覺’을 넘어서는 뜻을 갖고 있다. 한국말에서 생각은 사고(思考), 사유(思惟)에 가까운 말이다. 그런데 생각은 쓰임뜻이 매우 큰 반면에 사고나 사유는 쓰임뜻이 매우 한정됐 있다.”
흔히 ‘생각을 깨우다’, ‘생각을 키운다’, ‘생각이 없다/모자란다/짧다’ 등의 말을 쓴다. 의식 내부에 깃들어 있는 무엇이라는 말뜻이다. 그렇다면 생각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면, 생각의 힘을 기르는 일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시건주립대 생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창조적으로 생각하기’도 곱씹어볼만 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그것들의 기원이나 의미는 무엇인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파악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재통합할 것을 제안한다. 그 역시 창조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시스템에 대한 모색을 강조한다.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요리사의 해석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별미가 되듯,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사고 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생리학자는 상상력을 학습하는 13가지 생각도구를 꺼내 활짝 제시한다. 하지만 알아둘 게 있다. 이 도구들을 일터나 집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쓰임새는 교육에 있다는 것을. “우리의 교육시스템이란 것은 우리들의 인지적·창조적 이해를 구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창조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면 창조적인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시스템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상상력을 배울 수 있는 13가지 생각도구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수동적인 ‘보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찰’이다. 두 번째 이미지를 그려내는 형상화다. 세 번째는 추상화, 네 번째는 패턴 인식, 다섯 번째는 패턴 형성, 여섯 번째는 사물과 현상의 맥락을 읽는 유추다. 일곱 번째 몸으로 생각하기, 여덟 번째 감정이입, 아홉 번째는 입체적으로 보는 차원적 사고, 열 번째 모형 만들기, 열한 번째 일 가지고 놀기, 열두 번째 변형, 열세 번째는 통합이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역사학자인 그의 아내와 함께 쓴 『생각의 탄생』(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 2007)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원서는 1999년에 나왔으니 20여 년 전의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대로 ‘교육의 목적은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그가 말한 13가지 생각도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