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소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책, 공연, 영화 등에서 여행까지 다양한 문화를 접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살찌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란 개개인이 혼자 빚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즉 공생의 의미와 실천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문화를 소비한다는 것의 의미와 더불어, 개인에서 타자로 시선을 확장하는 관점에서 ‘문화적 인간’을 조명한다. 2면에서는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해 이준석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의 해석을 들어본다. 3면에서는 방송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한 이후 문화적 인간으로서 실천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재학생과 동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호모 파베르(Homo faber)….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간을 정의하고자 탄생한 용어들은 많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인간이나 동물에게 다 같이 적용할 수 있으면서도, 생각하는 것이나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이것이 ‘놀이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인간의 정신적 창조 활동을 문화사의 지평에서 짚어냈다.
언어, 관습, 종교, 공통의 기억…. 문화는 이와 같은 여러 요소로 구성된다. 인간의 조상 종들은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문화를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했다. 이 지난한 과정에서 환경 변화에 더 적합한 문화를 갖춘 집단이 생존에 성공했고, 그들의 문화를 확산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집단이 분리되면서 문화 역시 분화했다.
문화는 인간 집단의 협력도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현생 인류는 우리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인간이 의사소통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추상적인 개념 또는 사물을 문자, 기호, 숫자 등으로 나타내는 상징체계들을 통해 ‘문화’라는 틀 안에서 소통한다. 이동 수단의 변화와 인터넷의 탄생으로 문화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국경을 초 단위로 넘나든다. 또한 다양한 문화가 충돌, 융합되는 과정에서 이질적인 문화를 포용하는 ‘문화적 인간’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다.
3대가 함께 하는 문화 소비 에티켓
그렇다면 문화를 소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프랑스 유학 시절 경험 한 토막을 나눠보고자 한다. 영화관에서 20유로 상당의 티켓을 구매하면, 한 달 동안 극장에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무제한으로. 영화뿐만이 아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문화 바우처로 학생이라면 누구나 단돈 5유로에 오페라, 전시 등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학생(유학생 포함)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정책으로, 청소년들이 문화에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마을 단위로 설치돼 국가가 관리하는 관광청과 지사에는 그 마을만의 오래된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장소부터, 최근 유행을 접목한 스포츠 활동까지 접목해 촘촘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산품은 그 지역을 방문해야만 구매할 수 있다. 불국사를 가든 해인사를 가든 똑같은 기념품을 사게 된다거나, 지자체 경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정체불명의 지역 축제를 목도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사실 제도적 뒷받침보다 기자를 놀라게 한 건 문화를 소비하는 태도였다. 첫 오페라 관람 때였다. 전 연령이 볼 수 있는 오페라였고, 나름 옷차림에 신경 써 20분 전 극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사! 유치원에 다닐 법한 아이들이 가득한 것 아닌가. 객석은 이미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했다. 이렇게 첫 오페라를 망치는구나 낙담하는 사이, 객석에 어둠이 깔렸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쉿! 쉿!’ 소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손주들을 조용히 시키고 있었다. 놀랍게도 순식간에 극장 안은 완전한 침묵으로 전환했다. 긴장된 공기는 배우들이 공연을 시작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완성했다. 대를 넘어 문화를 함께 소비하는 에티켓에서 어떤 ‘격’을 느꼈다고 할까.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1908~1970)는 ‘욕구는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요인이며, 인간의 욕구는 낮은 단계에서부터 그 충족도에 따라 높은 단계로 성장해 간다’는 ‘욕구 5단계 이론’을 주창했다. 1단계는 생리적 욕구고 2단계 안전의 욕구다. 3단계 어떤 단체에 소속돼 애정을 주고받는 사회적 욕구이고, 4단계는 소속 단체의 구성원으로 명예나 권력을 누리려는 자기존중의 욕구다. 마지막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해 자기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려는 최고 수준의 욕구다. 문화 소비는 아마도 3단계 이상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를 넘어서 문화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4, 5단계에 접어들어서야 적용될 수 있다. 문화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나를 넘어서 타자를 확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가 정신의 창조 활동이자 개인의 완성이라는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경이 사라지고,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서, 문화적 인간은 자기 또는 개인의 완성을 향한 노력인 동시에, 이를 넘어서 공생과 타자를 환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태학자 최재천이 주장하는 생물의 다양성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호모 쿨투랄리스 탄생의 의미
이런 점에서 한양대 평화연구소가 2018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웹진 <호모 쿨투랄리스(Homo culturalis)>는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타자에 대한 환대와 공생의 문제 인식을 기반으로, 보편적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문화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갈등에 주목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난민,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얼굴의 이방인을 대면함에 있어 여전히 국가중심주의, 배타적 민족주의의 관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인종차별, 젠더 갈등, 성소수자 문제 등을 비롯해 전 세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화적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방법과 대응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시각은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도 맥을 같이 한다. 인류학에서 발달한 중요한 개념인 ‘문화상대주의’는 세계 여러 문화를 가치관이나 우열의 척도를 갖고 보지 않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계화 시대에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현대인들에게 환기하는 바가 크다. 특히 외국 문화가 무조건 훌륭하다고 보는 문화사대주의나, 자기 문화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문화국수주의의 태도는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분명 재고돼야 할 부분이다.
문화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각에서 벗어나, 타자와 사회를 바라보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연대한다는 의미다. 문화적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뉴스에서만 접했던 우리 주변의 새터민, 농촌과 도시의 다문화 가정, 아프리카와 시리아 난민, 맘충과 노키즈존 논란, 지속가능한 도시재생과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등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프랑스 작가이자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1900~1944)는 『인간의 대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상관없어 보이는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돌멩이 하나를 보태면서 세상을 건설하는 데 기여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