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최고 황금기는 결혼과 함께 시작됐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최종 단계를 경험할 기회가 드디어 주어진 것이다! 물론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됐지만, 그 어떤 시기보다 평안했고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후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지독하게 책에 빠져들었다. 이를 계기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회색이라는 시선한 충격
방송대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5년 동안 입학과 편입 독려 문자를 꾸준히 보내왔다. 그간 무심코 넘겼던 메시지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 홈페이지를 다시 열었고, ‘문화교양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교과과정을 훑어보며 ‘유레카!’를 외쳤다. 그 어느 대학에도 없는 학과인 것도 놀라웠지만 내가 그동안 꾸준히 읽어왔던 책의 내용들을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당시 나는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에 당면해 있었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본격적으로 지도교사로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고, 지부장과의 상담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학력 조건이 내 발목을 잡았다.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던 것. 당시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배움의 목마름과 현실적인 필요로 문화교양학과에 첫발을 내디뎠다.
학교 공부를 하면서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나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공감 능력이 생긴 것이다. 사회 저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도 선물받았다. 표면적인 것만 보고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길러진 것이다. 그간 흑백논리로 살아온 나에게 회색이란 색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평화 시위에 동참했고, 꾸준한 기부도 시작했다. 거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한동안 힘든 시기도 보냈다. 그러나 이런 분노는 당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챙기며 돌보는 마음가짐을 선물해줬다.
또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깨닫게 했다. 입학 당시 비교적 젊은 층에 속했던 나는 여러 학우에게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공부 방법, 과제물 작성법, 각종 학사 일정과 행사 등 다양한 문의부터 세세한 부분까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그 모든 요청이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았기에 하나씩 찾아가며 함께 공부했다. 그 모든 과정이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했다. 왜 그랬을까? 아직도 나는 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다. 단지 내 작은 노력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결국에는 나에게 닿는 선순환을 계속 경험하다 보니, 학교생활은 내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 줬다.
방송대 공부를 하는 목적은 학우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하는 목적은 단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를 위하면서도 남을 위할 수 있는 공부.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삶을 사는 것 말이다. 우리가 배우는 이 모든 지식과 지혜 역시 누군가가 후대를 위해 남긴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공부의 본질은 배워서 남을 주는 것이다. 오로지 기계적으로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고,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부는 배움의 부스러기가 아닐까. 학우들과 함께 하는 공부야말로 현실의 삶과 조우하며 체화되는 배움이다. 몸이 기억하는 배움은 쉬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보다 현명해지기 위해 배우고 익힌다. 혼자 하는 공부는 어리석음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에 배움에 역행하는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닌지 매번 되돌아 보며 노력했다.
나를 위하면서도 남을 위하는 공부
4년간의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노력이 결실을 맺어 올해 봄, 기다리고 기다리던 졸업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을 막 걷기 시작했다. 서양미술사 강사가 되기 위해 다시 펜을 든 것이다. 공부하는 4년 동안 나를 지켜본 지인의 권유로 덜컥 일을 저질렀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결과는 하늘에 맡길 뿐이고 과정을 즐기면 된다.
배움이 맹목적이면 늪이 된다. 늪의 깊고 깊은 수렁은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차단한다. 코끼리 발만 더듬다 결국 머리만 무거운 가분수가 돼 휘청거리다 넘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 배움의 늪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은 던져본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