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나는 반대한다

1997년 개봉한 영화 가타카(GATTACA)가 그려내는 미래사회는 유전자 조작으로 우성인자만 지니고 태어난 엘리트 들이 지배계층을 이룬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아이는 엄마 아빠를 모두 가질 권리가 있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 사회의 일원으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보살핌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비혼 출산에 의해 아버지가 없는 경우에는 아버지 자리에 대한 정서적 공백이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회질서가 무너지게 되는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서 자녀 출산으로 이뤄지는 전통적 가족 개념을 존중해야 한다.

 

UN아동권리협약 7조에 따르면 아동은 양쪽 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만약 나를 낳은 부모의 기원을 모른다면 심각한 정체성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국가에 따라 자녀가 만 18세가 되면 정자 제공자의 신원을 공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정서적 단절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미혼모와 달리 자발적 비혼모는 아동의 권리를 침범하는 행위라고 본다. 이것이 비혼 출산이 여성의 권리라고만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비혼모의 아이는 정체성 형성에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비혼모의 아이는 미혼모의 아이처럼 아버지가 없지만 그 아버지에 대한 인격적 차원이 다르다. 미혼모의 아이는 비록 아버지가 자취를 감추었다 해도 출생의 타당성을 가지고 태어난 셈이다. 반면 비혼모의 아이는 정자만 수정받는 형식으로 태어나므로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된다. 정액은 침이나 오줌 같은 생체 분비물일 뿐, 아버지의 인격이나 성품 등 정신적인 것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비혼모의 아이에게는 아버지 역할이 없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다. 부모는 전 생애에 걸쳐 양육과 보호 및 교육을 통해 아동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발달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이가 성장해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책임감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부모가 창출하지만 엄마로서 아빠로서 아기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부분은 서로 다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자녀의 사회성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는 놀이를 통해 자녀에게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 결과 아버지와의 접촉이 많은 아동은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호적이고 활발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비혼 출산으로 탄생한 아이의 경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버지의 결손으로 인해 사회성 결여를 겪을 수 있다. 또한 성 역할 모델을 설정하지 못해 잘못된 성 역할 개념을 가질 우려도 있다.

 

비혼 출산 가정의 자녀는 함께하는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아버지가 없다면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알지 못하며 편향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입은 상처는 생각보다 깊어, 치유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비혼 출산을 사회가 허용해서도,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정자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결혼을 통해 성윤리를 지켜내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을 양육할 수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 모든 국민은 이 안에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권리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결혼을 장려하고 양친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라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여론이 높아진다 해도 정당하지 않은 요구는 받아들이면 안 된다. 건전한 가정구조의 위협, 아동의 권리 침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라야 하는 아이의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생명·성윤리에 반해서는 안 돼!

일부 여성 및 개신교 등의 시민사회단체는 비혼 출산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종합해 보면 우생학의 상업화로 인해 생명윤리에 반하게 된다는 점, 정자 제공은 본의 아닌 혼외정사와 같아 건강한 사회질서를 와해시킬 수 있다는 점, 여성의 자기결정권남발 등 세 측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생학의 상업화로 인한 반생명윤리적 측면부터 들여다보자. ()배우자간 인공수정은 정자와 난자를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돈으로 환산돼서는 안 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성에 심각한 손상을 가한다고 주장한다. 정자와 난자를 판매하는 과정에 우생학이 개입될 수 있어서다. 구매자는 냉동 보관된 정자나 난자 중에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최적의 대상을 찾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배우자간 수정의 총아인 대리모 출산의 경우에 대리모의 역할을 하는 여성에게는 고가의 대가가 지불되는 것이 통상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실상 어린이 매매(the sale of children)’와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성윤리에 반하는 측면도 만만치 않다. 시험관 수정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개입이 불가능했던 생식과정이 완전히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대체되고, 자녀 출산은 부부간의 성행위로부터 단절된다. 시험관 수정은 하나님에 의하여 주도된 인간의 출산과학기술적 출산으로 변모시킴으로써 비인간화를 심화시킨다고 비판한다.

 

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임신하는 경우에 본의 아니게 혼외정사를 한 것과 같은 결과며, 이렇게 탄생한 아이는 정체성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한다. 비 배우자간 수정은 어떤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나 생물학적인 성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자녀를 출산하게 되므로 자신과 자녀 사이의 부모관계가 해소될 수 없는 결함을 안고 비정상적으로 출발하게 되며, 이것은 결국 사회의 아노미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남발함으로써 임신과 출산이라는 특별하고 고귀한 여성의 영역을 무참히 침해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자기결정권이라는 명목으로 한 쪽에서는 태아를 자기 맘대로 죽일 수 있는 낙태의 권리를 달라고 외치고, 또 한 다른 한쪽에서는 본인이 원한다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출산권을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자기결정권은 자기 멋대로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죽이거나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비혼 출산에 따르는 심각한 문제점들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거치지 않은 채 법제화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결국 이들은 자녀출산은 결혼과 가족이라는 지평 안에서, 부부간의 연합적 사랑과 이 사랑 안에서 이뤄지는 성의 열매로서 나타나야 한다는 전통적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종교적·윤리적 가치가 작동하지 않은 다양한 가정을 허용한다면, 일부다처제 가정, 근친상간 가정 등 온갖 가정도 다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보편상식과 도덕에서 벗어난 것을 다양성으로 포장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장빛나 기자 bitna65@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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