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복수의 두 얼굴

최근 막을 내린 TV 드라마 「빈센조」와 「모범택시」는 우리 사회의 정의의 문제를 다시금 소환한 문제적 작품이다. 시청자에게 통쾌하고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복수극에 대중이 몰입하는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복수 드라마가 흥행하는 사회는 어쩌면 기존의 법질서가 정의와 거리가 먼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95호 커버스토리는 복수극을 통해 우리 사회의 법질서와 정의의 문제를 성찰하고자 한다. 2면에서는 최근 복수 드라마가 대중들을 사로잡은 이유를 분석한다. 이어 3면에서는 고전 작품 속에 그려진 복수의 양상을  살피고, 사상가들의 법과 정의의 에 대한 생각을 엿본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복수는 오래된 서사 주제다. 복수가 서사 작품에 자주 소환되는 이유는 개인의 원한 풀기가 현실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아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허구의 서사를 통해서라도 해소하려는 원망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중들이 복수극에 매료되는 이유를 개인적 차원으로만 협소하게 이해하면, 사회 전체에서 작동하고 있는 법체계와 법질서의 오동작을 놓칠 수가 있다. 그렇기에 복수극을 법질서의 부정의와 연결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복수는 개인이 주체가 되어 사적 정의와 심판을 실현하는 행위다. 그러나 법질서가 작동하고 있기에, 이러한 사적 처벌과 처단은 개인에게는 공정하다고 해도, 법의 잣대를 적용하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범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법질서는 과연 오류가 없는 것일까?

‘악을 악으로 처단한다’에 열광하는 사회
근래 복수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 대중의 관심이 크게 쏠렸다. 특히 최근 종영한「빈센조」,「모범택시」,「괴물」은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단연 돋보였다.
「빈센조」는 전국시청률 평균 10.4%를 기록했다. 제작진은 “이 작품은 ‘법’ 위에 군림하며 ‘법 정신’을 거스르는 ‘코리안 카르텔’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다”라고 설명했다. 이 기획의도에 맞춰, 조직의 배신으로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가 베테랑 독종 변호사와 함께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마피아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최고 시청률 18%를 찍었던 「모범택시」는 아예 ‘사적 복수 대행극’을 표방했다. 제작진은 “정의가 실종된 사회, 전화 한 통이면 오케이.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운수와 대표기사 김도기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특수부대 장교 출신의 모범택시 기사를 중심으로 사적 복수 대행에 나서는 이들 모두가 법으로부터 외면당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들 드라마에 비해 낮은 시청률을 보이긴 했으나 「괴물」도 놓칠 수 없는데, 사적 복수에 나선 이가 경찰이라는 점이다. 만양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여동생을 죽인 진범을 찾아가는 사투 속에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내면 변화를 그려내 매니아 팬심을 사로잡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복수 드라마에 대중들 몰입
정의 원하는 약자들의 분노 반영

허위의식일 수 있지만
사회구조적 측면도 살펴야

 


드라마는 현실 재현의 문화
『TV 드라마의 이해』(경상대출판부, 2017)를 쓴 홍상우 경상국립대 교수는 “TV 드라마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콘텐츠”라고 말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TV 드라마는 현실 재현의 문화, 독특한 서사구조, 오락성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바로 ‘현실 재현의 문화’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잇따른 복수극과 이에 쏠렸던 대중의 관심에는 ‘현실’이란 거울이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이 거울은 무엇을 비출까? 「모범택시」의 연출을 맡았던 박윤주 PD가 지난 4월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상기해보자.
“이들이 대행하는 사적 복수가 옳은 것인가, 복수는 과연 완성될 수 있는 것인가가 드라마를 관통하는 이야기다. 공권력도 어떻게 보면 공적 복수라고 볼 수 있는데, 공적 복수는 피해자에게 완벽한 것인가라는 질문도 담고 있다.” 여기서 ‘공권력’은 법질서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피해자에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완벽’이란 말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와 같은 형식 명제를 가리킬지도 모른다. 만일 법이 완벽하다면, 가해자에게 상처 입은 피해자는 그 어떤 원한도 더 이상 가지지 않을 것이다. 법의 그물이 느슨해서 상처 입은 자들의 고통이 아물지 않는다면, 그는 어디서 ‘정의’를 구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인물이 대행하는 사적 복수에 대중이 손뼉을 치고 환호하고, 그럼으로써 비슷한 에피고넨들이 다시 등장하고 반복되는 데는 대중의 박탈감이 작용한다. 특히 사법부 불신이 뿌리 깊다. 단적인 예를 보자. 2018년 6월 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성인 500명을 상대로 사법부의 판결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불신한다’는 응답이 63.9%, ‘신뢰한다’는 답변은 27.6%에 그쳤다. 이렇게 현실에서 법에 대한 불신이 자라면서 나와 가족이 당한 피해에 걸맞은 사적 복수 욕망이 꾸역꾸역 꿈틀거리게 된다.
근래의 복수극에 쏠리는 열광을 보면, 1980년대 대중을 사로잡았던 『인간시장』(김홍신 작)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음습하게 존재하던 모든 종류의 악과 대결하는 주인공 장총찬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약자들, 이른바 서민과 빼앗긴 자, 억울하게 당한 자의 편에 서서 오로지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일념으로 악인을 응징해 나가는 주인공을 그려냈다고 한다. 당시 평론가들은 주인공의 폭력적 해결 방식에 대중이 끌렸던 데는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정의를 갈구하는 욕망’이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2021년 오늘, 사적 복수를 대행하는 ‘다크 히로인’에게 대중이 열광하고 있다면, 이것은 1980년대 『인간시장』에 작동했던 ‘원초적인 정의를 갈구하는 욕망’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의’의 문제를 환기한다. 그 가치가 어느 한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사회 전체가 ‘좋은 삶’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사회적 분노, 그리고 정의에 대한 갈구
사적 복수를 극화한 드라마의 한계는 분명하다. 드라마 비평가인 신주진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복수 정동의 이행 구조」중앙대, 2018)에서 그 위험성을 일찍이 이렇게 지적했다. “시대 복수 정동이 사회적 분노의 표출, 정의와 평등, 공평함을 요구하는 목소리이자 자기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싸움을 의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적 복수가 사회적 분노와 트라우마를 개인화된 방식으로 해소하고, 복수 정동의 투사와 전가를 통해 복수 정동의 확산과 모순된 현실의 재강화를 낳을 위험성이 있다.”
물론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좀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존재한다. 이 사적 복수와 개인의 분노가 공의롭지 못한 사회적 구조와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며, 개인의 희생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막을 내렸을 때, 주인공에 투사됐던 그 거대한 감정의 물결이 어떤 ‘정동(affect)’으로 전환될지 사회적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칸트는 “도덕적 행동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처지보다 내 이익과 처지를 앞세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샌델은 그런 그의 말을 빌려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정의란 무엇인가』,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라고 말했다. 마이클 샌델이 말한 ‘정치’의 자리에 ‘법’을 대입해보자. 이 말이 순수하게 성립한다면 우리 사회는 좀더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약자를 주눅들게 하는 부정의한 그늘을 마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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