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詩를 잊은 그대에게

중학교 때 시를 배우고 나서 조금씩 시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시답지 않은 시였겠지만, 노트에 가끔은 다른 시를 필사하거나 악보를 그려 넣기도 하고 그림도 그렸습니다. 사회에 나가서는 일하기 바빠 한동안 잊고 살다가 문득문득 생각이 날 때면 시를 썼습니다.

 

30대 초반 서울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수원으로 내려와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공계 출신이었고, 학교 다닐 때도 수학을 제일 좋아하고 잘했으니,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별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학원은 오후에 문을 여니 오전에 여분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다 점점 시를 읽고 쓰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시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내 시에 대해서 얼마나 떳떳한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문학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학원 일로 시간 내기가 여의치가 않아 방송대를 선택했습니다.

 

공부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자의누리’ 스터디그룹에 참여했던 저는 공부만 하고 쏙 빠져나가는 도깨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시험 기간이 겹쳐 제 시험 기간에도 아이들 보충수업에 바빴습니다. 아마 함께 공부한 스터디그룹 회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간에 학업을 포기했거나 졸업을 제때에 못했을 겁니다. 학교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교수님들과 교류하며 책 밖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수업으로, 또 교수님을 통해, 교수님들이 권해준 책들을 읽으며 문학과 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졸업반인 4학년 때부터입니다. 학교의 시 쓰는 모임에도 나가 활동하고 지역 문인단체에도 가입해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정대구 시인의 강연을 듣고 ‘온새미로’ 동인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됐습니다.

 

수학과 시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직관성이나 논리적인 구성이 매우 유사합니다. 저는 수학 문제를 보고 풀이를 생각해 내듯, 시어를 생각해 내고 문제를 푸는 것처럼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는 치유입니다. 시는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치유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계속 쓰고 읽는 것입니다.

 

출판사를 운영하거나 책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행히 컴퓨터를 전공해서 그래픽편집 작업이 다른 사람보다는 쉬웠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다 보면 계획대로 안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스트레스나 금전적 손해도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책 만드는 일이 나는 즐겁습니다.

 

지금은 <시마>라는 계간지를 발행하고 있고 한국과 외국(미국?캐나다?호주?홍콩 등) 교포 중심의 종합문예지인 <한솔문학>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시집, 에세이집, 동화책도 만들고 있죠. 지난해 발간한 권달웅 시인의 ‘서정의서정’ 1번 시집 『꿈꾸는 물』은 세종 우수도서로 선정됐고 녹색문학상, 목월문학상도 수상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공부의 연속입니다. 제자리에서 어제와 같은 시를 쓴다는 것은 시에 대한 불손입니다. 음악가, 화가, 무용가 등 예술가들은 하나의 완성을 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글 쓰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글을 쓰려고 합니다. 자신의 시나 글에 대해 떳떳한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서의 학업은 정말로 제 인생을 든든하게 만든 디딤돌이 됐습니다.

 

막연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더 공부하기를 권합니다. 방송대에 등록했다면 스터디그룹 가입과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세요. 시를 쓰고 계신다면 멈추지 말고 시를 계속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예전에 같이 시 공부하던 사람들은 많이 놀랐던 거 같습니다. 신춘문예라는 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다 보니 등단도 하고 아르코 창작기금도 받고 신춘문예에도 당선됐습니다.

 

제가 원래부터 시를 잘 쓴 것이 아닙니다. 처음의 제 시도 당신의 시처럼 서툴고 어색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세상 모든 시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됐다’란 모티브로 <시마>라는 계간지를 만들게 했습니다. 지금은 송산도서관 상주 작가로 「디카로 쓰는 글」을 주제로 온라인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문학 채널도 준비 중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날다의 뜨락’이란 이름으로 준비 중입니다. 사람들은 이 많은 걸 어떻게 다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할 뿐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제 끝이 어딘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그만둘 때도 있겠지요. 뒤로 한걸음 물러설 때가 오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더 공부하고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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