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詩를 잊은 그대에게

2014년 강화된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후 동네 곳곳에 생겨난 독립서점(동네서점)들 틈에서 위트앤시니컬은 단연 돋보인다. 2016년 위트앤시니컬을 창립해 올해로 운영 6년 차에 접어든 유희경 대표는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총 3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동양서림과 함께 서울에서 100년 된 서점을 지향해 보고 싶다”라는 그에게 시집서점을 운영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2021년에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시집 전문서점을 내셨습니다
딱딱한 느낌 때문에 ‘전문’이라는 단어를 안 써요. 편집자 일을 하다가 비전도 흥미도 잃었어요. 건강도 나빠져서 쉬게 됐는데, 어차피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시쓰기와 함께 기획일을 하는 걸 고민했었죠. 당시 작은 서점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또 뭔가 서가 구석에 꽂히는 시집을 전면에 내세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했죠.

 

서점 이름이 ‘위트앤시니컬’입니다
시인 셋이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어요. 제가 “위트 있는 시인, 위트 있는 시를 쓰니까”라고 말했는데, 다른 시인이 이걸 잘못 알아듣고 “위트 인 더 시니컬이 뭐야?”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어요. 갑자기 생각이 들었죠. 누군가 A라고 말한다고 꼭 A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을 수도 있구나,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생성되는 게 시의 힘이 아닐까 하고요. 그때 나온 말이 “훗날 시집서점을 하면 ‘위트앤시니컬’로 해보자”라는 거였어요. 생각해보면 위트와 시니컬은 시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일 것 같았거든요.

 

독특한 시낭독회로도 알려졌는데요
사실 독특한 게 아니에요. 낭독하는 건데요. 현재의 시낭독 문화 발판을 우리 서점에서 만든거에요. 기존에 신간이 나오면 북콘서트 형식으로 행사를 했죠. 거기서 대화를 뺀 거예요. 보통 90분 정도 공연으로 진행해요. 시 길이마다 다르긴 한데 보통 15편 정도 낭송합니다. 이 모델을 독자적으로 만든 건 아니고, 외국 사례를 참조했죠.

 

대화를 뺐다고요?
그게 시를 좀 더 집중해서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서점을 차리기 전에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북콘서트를 많이 했는데, 뭐랄까요, 소비된다는 느낌이 싫었어요. 북콘서트로 마련한 시간인데도 홍보에 많이 치중하고, 시인도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독자들을 시 텍스트에 집중하도록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낭독회 말고도 여러 기획을 하신다고요
시인과 뮤지션이 협업해서 공연을 하는 ‘시들의 사운드트랙’도 있어요. 보통 시인이 뮤지션의 연주에 맞춰 시를 낭송하는 형식인데, 우리는 사운드트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곡을 새로 쓰고, 시인도 시를 곡에 맞게 또는 변형해서 낭독하죠. 문화의 거점인 혜화동에서 인디 문화씬들과 함께 문학과 음악의 콜라보를 시도했어요. 공연이라고 하지만 시낭독회와 본질적으로 같아요. 목적은 시를 이해하는 거죠.

 

시를 이해하는 거라고요?
시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무쓸모’를 떠올리죠. 어쨌든 저는 이 일을 하니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데요. 시를 텍스트대로 읽으면 그럴 수 없어요. 왜 저렇게 쓸 수밖에 없는지 장르적인 걸 고민해보자는 제안 같은 겁니다. 시를 읽는 사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죠. 그걸 말로 끄집어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도 정확한 표현일 수도 없고요. 시낭독회 역시 시인이 어떤 의미로 시를 썼는지 시인의 리듬으로 시를 읽어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시를 잊은 시대입니다
그런가요? 저는 시를 상기하고 있던 시절이 없었다고 봐요. 국민 시인을 예로 들면, 윤동주 사후는 없어요. 국민 시인이 없다는 건, 시를 잊을 기회도 못 얻는 나라가 아닐까요? 우리나라에 어떤 시인, 작가가 있고, 그의 발언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면서 시대의 지성으로 대했던 시절이 거의 없었잖아요. 어떤 작가가 죽었을 때 국민장을 할까요? 그러니 사실 이제 시작해보자는 겁니다. 한국어라는 현대 언어 구성방식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게 기껏 해 봐야 조선 말기니까요.

 

국민시인 김소월도 있었잖아요
물론이죠. 교과서에서 우리가 접했잖아요. 그렇다고해서 김소월 시인의 고향이 어디인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이해하고 관심 갖는 건 아니잖아요. 국문학과에서 계속 연구를 하겠지만, 그건 학문적인 영역인 거죠. 극장 이름에 셰익스피어가 붙는다든가 끊임없이 기억이 되면 좋겠는데 그럴 풍토도 없어 보여요.

 

그런 면에서 위트앤시니컬의 역할이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를 위한 서점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운영하지도 못해요. 시집서점을 처음 시작할 때 표방했던 이야기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보자는 것이었어요. 여기에 가면 시인을 만날 수 있고, 내 시집이 꽂혀 있고, 독자들은 언제든 시낭송을 들을 수 있고요. 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 시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죠. 『톰소여의 모험』을 예로 들어볼까요? 초반에 톰이 폴리 이모한테 혼나고 울타리에 페인트칠을 하라는 벌을 받죠. 처음엔 고통스럽게 칠하다가 톰이 꾀를 내요. 즐겁게 하는 척하면 친구들이 해줄 거라고요. 결국 다 같이 즐겁게 칠을 하는 놀이가 돼요. 위트앤시니컬이 할 일이 그런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기사를 읽고 시를 접하고 싶은 분들이 가끔 찾을 수 있는 곳이 되는 거죠. 물론 상업적인 공간이니 생계유지를 위해 필수 물량을 팔아야겠지만요(웃음).

 

보람있던 적이 있었다면요
시집이 많이 팔릴 때죠(웃음). 그럴 수밖에 없어요, 공익사업을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시집이 많이 팔린다는 건, 그만큼 시를 많이 읽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요. 많은 사람이 제가 단순히 시인이라 시집 서점을 운영한다고 생각하는데, 전 사업적으로 접근했어요. 애호가층도 분명합니다. 최근 젊은 시인들이 주목받으면서, 새 시집도 많이 나왔어요. 지금은 약간 소강상태긴 하지만, 연 종수로만 따지면 외려 1990년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요.

시인이 된 계기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제가 하는 것 중에 제일 잘하는 거였어요. 어릴 때 백일장 나갔던 거 말고요. 그런 게 있다는 건 나중에 대학교 가서였어요. 누구누구는 어디 백일장에서 만났다고 서로들 이야기하더라고요. 미래파라고 불리는 2000년대 초반에 데뷔한 시인들의 시가 맘에 들었거든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갔어요. 시 공부하다가 연극으로 틀었던 사람이죠.

 

시가 주는 위로, 위안이 있죠
가끔 강의에서 이런 주제를 이야기하면, 저는 ‘위안은 이차적인 감정’이라고 말하곤 해요. 시에서 위안을 찾기 시작하는 순간 시가 가진 여러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위안은 생각 끝에 오는 이차적인 감정이란 거죠. 시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어요. 생각 끝에 위안을 얻거나, 공감하거나, 결국 거부하는 그런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시를 읽고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왜 할까요? 멋진 표현이나, 문장도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시인의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동의하게 할 만큼 쓰는 사람이 시인이라면, 공감이나 동의 이전에 폭넓은 사고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시인이 할 일이겠죠.

 

대한민국에서 2021년에 시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요즘은 시인 보고 작가라고들 많이 하더군요. 저를 유 작가로 부르기도 하고요. 글 쓰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다른 기능과 이어지는 거기도 하니까, 역할이 축소된 느낌이랄까요.

 

작가와 시인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작가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죠. 시인은 자기가 가진 언어를 리듬을 섞어 표현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기술을 가진 직업인이 된 것 같아요.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가치판단은 할 수 없어요. 다만,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시인의 목소리가 울림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화 「일포스티노」(감독 마이클 래드포드, 1996)에서 시인은 세상과 투쟁하기도 합니다.
시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이야기죠. 시인마다 다르다고 봐요. 영화의 주인공인 네루다만 해도 장관을 했고, 상당히 정치적인 인물이었는데, 말년에 서정시를 썼죠.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시가 달라요. 네루다가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 보니, 사회적인 발언에도 무게가 실렸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은 BTS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동양인을 차별하지 말자’고 저명한 시인이 말하는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끝난 것 같거든요. 노벨문학상이 예전처럼 아우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어떤 전환점이 곧 오겠죠. 문학은 미답의 영역에 가까워졌으니까요.

 

요즘은 시인의 자리가 대중가수, 래퍼 등으로 대체되는 것 같습니다
각자 하는 일이 다른 것 같아요.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아닌 영역이 있어요. 강력했던 영화가 TV의 출현 이후 사라졌나요? 아니에요. TV가 할 수 없는 다른 영역을 모색해 살아남았잖아요. 파피루스와 종이가 포개지는 시간이 200년 걸렸다잖아요. 전자책이 나왔다고 도서 시장이 죽은 건 아닌 것처럼요. 아이돌과 힙합은 예전에도 있었어요. 새롭게 유행하는 매체들이 있지만, 극적으로 대체되고 사라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운영 5년째인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요?
코로나19 시국 말고는 특별히 어려운 것 없이 재미있게 일해 왔어요. 어떤 일을 하든 어려움은 있죠. 한두 차례 위기도 오고요. 하지만 그 수준 이상으로 괴로운 적은 없었던 거 같네요. 코로나19는 또 모든 자영업자가 겪는 일이니까요. 다만, 우리는 요식업과 달리 배달 서비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코로나19 돌파구는 있나요?
우리가 돌파구를 마련한다고 마련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버티는 거죠.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최대한 노력을 하자는 마음이에요. 오히려 사람들이 더 부지런히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코로나19가 오니 그게 보여요.

 

시를 읽고 싶지만 못했던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시간을 내주세요. 온·오프라인 서점의 장단점이 있어요.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직접 시집을 펼쳐볼 수 있어요. 온라인 미리보기와는 완전히 다르지 않나요? 시를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는 건, 건강하고 싶은데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요. 서점에 와서 열권이든 스무 권이든 펼쳐보고 골라가면 돼요. 동시대 나와 비슷한 연령대 시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보러 오는 게 정말 중요해요. 내 또래 시인이 쓴 시를 읽어보면 가깝게 느껴지고, 그렇게 영역이 확장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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