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詩를 잊은 그대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마지막으로 읽었던 때는 언제일까?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위안 받기도 하고 삶과 우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도 한다. 때로는 시인처럼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런 우리가 왜, 언제부터 시를 읽지 않게 됐을까? 96호 커버스토리 ‘시를 잊은 그대에게’ 1면에서는 시를 읽지 않게 된 우리의 모습을 출판시장과 교육 측면에서 접근한다. 2면에서는 시집서점을 6년째 운영 중인 한 시인을 통해 2021년 대한민국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짚어보고, 3면에서는 다양하게 시 활동을 펼치는 재학생, 동문을 만나본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시작한 사회생활. 우리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난다. 다들 내 마음 같으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세상 70억 인구는 모두 제각각의 모양새다. 일상이 더해져 나이를 먹어갈수록 동글동글 다듬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뾰족해지기만 하는 마음을 불쑥 발견할 때면, 멈칫 놀라게 된다. 얼굴은 굳었고, 말투는 삐딱해졌다. 때론 마음을 다스리는 책 문구를 뒤적이거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관심사를 옮기려 애써본다. 또 집을 나선다. 그럭저럭 살아진다. 어떻게든. 그러다 또 길을 잃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머리는 뜨거운데, 가슴은 차가워졌다. 한 세월 제법 잘 살아왔다고 여겼던 오만도, 남들만큼 살아왔다는 겸손도 문득 무너져 내리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시다.

 

서정시가 필요한 시대
우리는 언제부터 시를 잊고 살았을까? 아니, 한 번이라도 시가 당신의 곁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을까? 김신정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시는 장르 특성 자체가 대중 장르가 아닌 소수 장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에 시가 많이 읽히긴 했지만,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 게임, 웹툰 같은 매체가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에 시의 입지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그렇다고 시가 특별히 안 읽히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꾸준히 시집은 나오고 있으며, 시인도 더 증가하는 추세”라고 보탰다.
민주화 운동이 뜨거웠던 당시는 김지하 시인 등의 참여시들이 사람들에게 즐겨 읽혔다. 시집 최초로 100만부 판매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던 『홀로서기』(서정윤, 문학수첩)를 비롯해 『접시꽃 당신』(도정환, 실천문학사) 등과 함께 한국시의 모더니즘적 특성을 더욱 심화한 황지우, 이성복 시인 등은 1980년대 한국 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최근 류근 시인은 “지금은 극강의 서정시가 필요한 시대”라고 일갈하며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들을 모은 시선집을 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실제 시문학사에서는 서정시가 고도화할 때를, 역사적 전망을 상실했을 때로 본다. 역설적으로 서정시를 읽지 않고, 서정시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건, 역사적 전망이 오히려 차고 넘쳐서 문제가 되는 시대라는 의미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사용되는 출판계이지만, 시집 시장은 다르다.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 출협)가 매년 발간하는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시집 발행 종수와 부수는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출협 납본분 기준). 1989년과 1990년 2년 동안 국내 발행된 시집은 각각 670종과 757종, 부수로는 91만 9천820권, 98만2천250권이 발행됐다. 2009년에는 1천45종, 1백7만5천170권이 발행됐다. 2011~2020년 문학도서 장르별 현황을 살펴보면 2011년 804종에서, 2016년 2천334종으로 처음 2천 종을 넘겼다. 2019년에는 2천505종에서 2020년에는 2천948종으로 17.7%가 증가했다. 시집 발간 종수는 1989년과 비교하면 2020년 4배 이상 성장한 것.

 

시인과 시집의 증가 이유로는 과거에 비해 등단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과 자비 출판이 용이해졌다는 점이 꼽힌다. 김신정 교수는 “지금은 창작자와 독자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라면서 “문단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고,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를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
시인도, 시집 종수도 꾸준히 늘고 있는데 여전히 시는 어렵다. 시를 연으로, 행으로 그리고 의미소 단위로 쪼개 시의 의미를 추적해 내고 마침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내도록 훈련받는 우리나라 문학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오래된 일이다. 소리, 운율, 이미지, 구조 등 시 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등 다른 매체와 연결해 시를 즐길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대다수 학교에서는 입시를 이유로 해석과 문제 풀이 위주로 문학교육을 하고 있다.

 

실례로 서점 중고생 학습지 코너에는 ‘고교 문학 7일 만에 끝내기’, ‘교과서 시 완전 정복’ 등의 제목을 단 참고서들이 쉽게 눈에 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는 대신 손가락을 바라보는 교육이다.

김신정 교수는 “시험을 위해 정해진 답을 찾아야 하니 시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없다”라고 지적하면서 “문학이 가진 매력은 탈고정성이고, 작품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나 편의 시를 기인과 그의 시대, 현재 독자가 사는 환경 등 씨줄과 날줄 사이의 연관성 속에서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시 쓰기 단계로 넘어가면 우리나라 초중등 문학교육의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주장도 있다. 지식 없는 시 쓰기는 맹목적 활동이라고 지적하는 박제원 전주완산고 교사는 “교사들이 시 창작 활동을 늘리면 학생들이 시인처럼 멋진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비현실적이다. 시인은 이미 장기기억의 지식을 통해 어휘력, 조어력, 구성력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어 학생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멋진 시를 창작하고 심미적 감성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시를 둘러싼 여러 지식과 기법을 충분하게 기억하게 한 후에 재현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측면에서 김성곤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중국이 여전히 문화대국인 이유 중 하나로 고전문화의 정수인 한시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후진타오나 원자바오 같은 리더들이 외국 정상과 회담에서 고전 시를 인용하는 것은 오래된 외교적 관례”라면서 “중국은 초등학교에서도 100수 이상 고전시를 외우게 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면 수백 수를 배우게 돼 젊은 세대도 일상에서 쉽게 시를 인용하곤 한다”라고 설명했다.

 

시를 쓰고 싶은 당신에게
2010년 3월 11일 법정 스님이 입적했을 때, 서울시 성북동 길상사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지금의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요정으로 김영한(1916~19999) 여사가 주인이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은 그가 1997년 당시 시가 1천억 원 상당의 대원각을 기부했고, 법정 스님은 그에게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지어줬다. 그의 이름을 따 사찰명은 길상사가 됐다. 한 기자가 그를 찾아 1천억 대 재산을 내놓고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강렬했다. “1천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시를 쓸 거야.” 사실과 다르다는 학계 지적이 있긴 하지만, 60여년 전 헤어졌던 백석 시인과의 사랑이 여전히 그 안에 시로 남아 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시를 읽어야 한다는 계몽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김신정 교수는 첫 강의 때면 학생들에게 “친구 사귀듯 시와 친해지자는 말을 건넨다”고 했다. 그는 “친구를 다양하게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요. 사람 친구가 많아도 좋지만, 시라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면 어떨까요? 힘들 때 시 한 편에서 위로를 얻기도 하고 세상을 보는 재미있는 시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나날이 시를 통해서 달라지는 한 순간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생 친구 하나 더 사귀듯 시와 친해진다면, 우리 인생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이미 시를 읽고 있다면? 이제는 쓸 때다. 인간에게는 자연을 모방하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시 쓰기 역시 그 욕망의 발로. 다만, 시는 진입장벽이 높다. 말하기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턱 높아 보이는 신춘문예에서 눈을 살짝만 돌려도 시를 써볼 곳은 넘쳐난다. 그런 당신에게 방송대출판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제45회 방송대문학상 ‘시 부문’에 응모해보기를 슬그머니 추천한다. 5편이면 된다. 마감은 8월 31일 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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