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광복, 잊힌 이름을 찾아서

대전시립박물관이 독립기념관과 함께 시민강좌 ‘항일무장투쟁과 여성독립운동가’를 지난 2020년 10~11월 운영했다. 여기서 다룬 여성독립운동가는 항일무장투쟁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조선 말기 의병운동에 참여했던 윤희순과 근우회 활동을 하다 중국으로 옮겨 의열단 및 조선의용대에서 활약한 박차정, 한인애국단원이었던 이화림 그리고 한국광복군에서 싸운 여성들 등이다. 자료 출처=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제작한 포스터 일부.

부족한 역사적 자료와

남성중심주의적 서훈 평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 등의

복합적 이유로

여성독립운동가의 활동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올해로 광복(光復) 76주년을 맞는다. 우리가 온전히 빛을 되찾기까지, 제대로 기록되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을 역사의 더미속에서 발굴해 기록하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 이것이 광복의 참된 의미일지 모른다. 광복의 역사는 한 사람이 써내려간 기록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일제에 저항하다 스러져간,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2000년대부터 조금씩 발굴되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그들이 그동안 왜 역사 더미에 묻혀 있었는지 살펴본다. 2면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아본다. 3면에서는 아직 우리에겐 낯선, 이춘상이라는 인물을 조명한 교수들의 글을 담았다. 이는, ‘되찾은 빛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잊히겠죠? 미안합니다

너무 많이들 죽었어요. 잊히겠죠? 미안합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이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고량주에 불을 붙여 그들을 추모할 때 했던 말이다. 역사에 관심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김원봉이라는 이름이 낯설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를 통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김원봉뿐만 아니라 남지현 같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유관순을 제외한 여성 독립운동가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여전히 우물쭈물 거릴 것이다. 특별히 생각나는 인물이 없어서 말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일까? 한국사 공부를 게을리해서 일까? 우리는 왜 자주 호명되는 독립운동가 이외의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일까?

 

부족한 자료와 남성중심주의적 기록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소장 심옥주)에 따르면,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음식·의복을 마련해 지원하는 것은 물론, 독립 자금을 전달하는 전달책 또는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전달책이나 정보원 임무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의심의 눈을 피하기가 훨씬 쉬웠다.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이 부분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게 항일 무장투쟁에도 앞장섰다.

 

윤희순(1860~1935)은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중국에서 항일의병을 조직했고, 안경신(1877~미상)1920년 임신한 몸으로 평안남도 일본 경찰국 청사에 폭탄을 던졌다. 권기옥(1901~1988)은 중국 항일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가 됐다. 훗날 대한독립군 대령으로 전역해 대한애국부인회를 이끌며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다. 이화림(1906~1999)도 남지현처럼 저격수로 유명해 이봉창, 윤봉길과 함께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사실에 대해 잘 몰랐을까? 그것은 바로 부족한 역사적 자료와 남성중심주의적 서훈 평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 등의 복합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기록과 자료로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이 객관적으로 증명된다면 유공자로 인정되고, 이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수순이 아니다. 국가보훈처의 한 연구원은 서훈의 문제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불리한 것은 시대적 한계 때문일 수 있다. 우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기록이 부족하다. 또한 기록이 존재한다 해도 남성중심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자료가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 전체 독립유공자 16685명 중 여성 독립유공자는 526(3%, 2021. 3. 기준)에 불과하다. 2003년엔 149명에 불과했으니 그나마 크게 늘어난 셈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숫자의 여성들이 독립운동의 현장 곳곳에 존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발굴하는 작업은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모두의 기억이 되기 위하여

현재에도, 미래에도 역사적 고난 앞에서 머뭇거리기보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사람들은 저항을 하고 있고, 할 것이다.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바로 기록과 자료. 송찬섭 방송대 명예교수는 기록하지 않는 개인과 사회의 삶은 망각 과정을 거친다. 이런 삶은 전복되기 쉽다개인이든 사회든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았던 기록이 바로 역사이고, 역사에서 조연은 없다라고 말했다

 

육영수 중앙대 교수(역사학과)호모 메모리스(이진우·정근식 외 공저, 책세상, 2014)에서 역사란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라고 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기록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머릿속 원본 기억의 유효기간은 인간의 수명과 같이 1백년 정도다. 기억을 간직한 자, ‘호모 메모리스로서 인간이 진짜 과거와 마주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면 더 많은 기억을 기록해 망각과 싸워야 한다.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찾아서(얼레빗, 2020)를 쓴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이 책 머리말에서 말이 10여 년이지 호주머니를 털어 세계 각 곳에서 활동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대, 누구 하나쯤은 이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이 일에 매달렸다라고 한다.

 

이름 없는 역사(이상미디어, 2018)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소개한 윤종훈 작가도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글재주도 대단치 않은 내가 거친 시대의 거대한 물결에 외롭게 맞선 숭고한 분들의 삶을 이야기한 것은 주제 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내용의 깊이나 전문성을 따지기에 앞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작은 소망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은 아직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 기록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내보내 그들이 태양 아래로 드러나길 바란다고 한다. 이로써 그들이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됐으면 하는 것이 기록하는 이들이 갖는 공통적인 희망이다. 이런 의지들이 모여서인지 최근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생활공동체를 이끌며 돌봄의 가치를 실현한 독립운동의 또 다른 주역인 여성들에 대한 서훈 방침이 정해지고 있다는 희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18년 국가보훈위원회에서는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여성이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당시 사회 분위기상 관련 기록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해, 일기나 회고록 등의 직·간접자료에서 독립운동 활동내용이 인정되면 추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모두의 기억이 되기 위한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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