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저자를 만나다

 

 퇴임하자마자 서울을 떠나 계획을 실천한 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네요.

 블루베리라는 작물을  선택한 것은

 은퇴 생활에서 정말 ‘신의 한수’였어요.
 500평 블루베리 재배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농사이기 때문이죠.

 

 

 

한여름 뙤약볕이 쨍쨍한 오후 2시 30분 기자가 찾은 곳은 충북 괴산군 문광면의 한 나지막한 야산에 조성된 500평 규모의 블루베리 농장이었다. 불볕더위에도 잘 익은 끝물 블루베리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문원 방송대 명예교수(농학과)가 두텁게 채비를 갖추고 나무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는 지난 6월 말 ‘농학자 문원 교수가 재배하며 체험한’이란 부제를 단 『블루베리 핵심재배기술』(지식의날개, 이하 ‘블루베리’)을 내놨다. ‘블루베리 재배기술’이라고 했으니 기술서 혹은 실용서로 볼 수 있겠지만, 이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절반의 이해에 불과하다.
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10년 농사 체험해보니 한국 농업, 농민, 농촌에 대한 그간의 제 시각이 크게 달라진 것 같아요. 한마디로 바로 볼 수 있게 됐다는 건데, 큰 변화죠. 그런 체험 위에서 블루베리로 행복의 파랑새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절절하게 담은 게 바로 이 책입니다.”

블루베리는 행복의 파랑새
블루베리 열매를 수확한 뒤, 문 교수는 다시 예초기를 메고 골마다 키를 높이고 있는 잡초 제거에 나섰다. 투명 보호장구까지 쓴 그의 얼굴이 온통 땀에 젖고 있었다. 블루베리 농사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가 블루베리를 통해 ‘행복의 파랑새’를 잡을 수 있다고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확신의 원천은 바로 10년의 농사 체험이다.
무엇보다 이 ‘행복의 파랑새’는 그의 것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함께 거머쥘 수 있는 일종의 공유자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유는 가까운 데 있었다. 괴산 치재의 블루베리 농장은 문 교수의 것이 아니었다. 진짜 주인은 농학과에서 가르쳤던 제자이자 방송대 대학원 농학과 1기 졸업생으로 인천에서 귀촌한 정숙현 씨다. 올해 500평 농장에서 예상하는 수입은 대략 2천만 원 정도. 수입은 모두 농장 주인인 제자가 가져간다. 문 교수는 블루베리의 성장을 관찰하고, 돌보면서 자신이 공부해왔던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는 일에 집중한다. 제자가 농장 관리용으로 지은 농막 2층은 그의 현장 서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블루베리』는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7년 전 퇴임하고 여주에다 터를 잡은 뒤, 괴산과 삼척 두 곳을 번갈아 오가면서 블루베리 농사를 지었어요. 괴산 치재 농장에 내려오는 날이면, 낮에는 블루베리를 살피고 밤에는 서재에서 책도 읽고, 틈틈이 블루베리 재배에 관한 글을 썼었죠. 방송대출판문화원 도서공모전에도 보냈는데, 마윤희 팀장이 원고를 기억하고 출판을 제안한 게 바로 이 책입니다.”

재미있는 ‘사잇글’과  체험담, 그리고 부록의 힘
『블루베리』는 블루베리의 의미, 나무의 특성, 적지와 품종 선정, 묘목 심기와 관리, 가지 치고 꽃눈 따 주기, 나무 보살피기, 수확과 저장 그리고 판매 등 모두 7장에 걸쳐 알토란 같은 내용으로 구성했다. 실용서가 주는 딱딱함을 의식해 문 교수는 곳곳에 실제 체험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등 ‘사잇글(박스글)’을 알차게 담았다.
예컨대 ‘세계 1등 한국 블루베리’와 같은 사잇글, ‘백두산 들쭉나무, 들쭉술과 말린 들쭉과실’을 설명하는 그림 자료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단숨에 책을 읽게 만든다. “백두산에 자생하는 들쭉나무(bog blueberry)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야생 블루베리 가운데 하나다”라는 본문 설명이 이어지면서 가독성까지 북돋운다.
본문 내용도 재밌지만, 이 책의 빛나는 미덕은 다섯 가지 부록에서 찾을 수 있다. 블루베리 재배와 수확 후 가공법과 같은 재배정보에서부터, 수익성 높은 작물로 키워낸 성공사례까지 다양하다. 「월별 중점 재배관리 포인트」, 「블루베리, 맛있게 먹는 방법」, 「블루베리, 간편 가공방법」, 「연금나무 수익 모델과 성공사례」, 「블루베리 ‘게으름의 농사’ 체험수기」 등 그의 10년 블루베리 농사 정수를 집약했다.
블루베리 농사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마당 텃밭에 몇 그루 심는 취미형에서부터 농장형까지 다양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쉽지 않다. 문 교수가 제시한 ‘부록’은 실제 블루베리 농사 경험에서 확인한 ‘블루오션’, 즉 그의 표현대로 ‘행복의 파랑새’를 잡을 수 있는 노하우를 가득 담고 있다.  문 교수는 특히 ‘체험수기’를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의 한수’가 된 은사님의 선물
어쩌다 문 교수는 이렇게 블루베리에 빠져든 것일까? 그의 은사인 이병일 서울대 명예교수 때문이다.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블루베리를 도입해 보급하신 분입니다. 목화의 문익점 선생 같은 분이시죠. 선생님의 어깨 너머로 블루베리를 보고 온갖 잔심부름을 하다가 그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죠.” 그렇게 블루베리의 매력에 빠진 뒤로는 방송대 옥상에다 블루베리를 심고 공부하면서 농학과 학생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프라임칼리지에 개설한 「블루베리: 연금나무, 게으름의 농사」는 지금도 인기 과목이다. 그는 이 모든 게 은퇴 후 귀촌 아니면 귀농을 위한 포석이었다고 말한다.
문 교수는 평소 제자들에게 ‘해갑귀전(解甲歸田)’ 즉, 도시의 무거운 갑옷을 벗어 던지고 전원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해왔다. 그는 블루베리 농사를 선택한 걸 ‘대만족한다’고 말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후배 교수님들에게 은퇴 후 삶의 역할 모델이 된 것 같아 은근히 속으로 자랑하고 있답니다. 퇴임하자마자 서울을 떠나 계획을 실천한 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네요. 블루베리라는 작물을 선택한 것은 제 은퇴 생활에 있어 ‘신의 한수’였습니다. 500평 블루베리 재배는 제가 감당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농사였기 때문이죠.”
농사는 그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줬다. 문 교수는 매년 완판에 소득도 괜찮았지만, 배운 대로, 매뉴얼대로 안 되는 것이 농사임을 실감했다. 농사에는 날씨가 큰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도 몸으로 확인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을 되뇌며 농사는 자연에 맡기는 것이 순리임을 깨쳤다. 그런 생각 끝에 창안한 게 바로 ‘삼무 농사’였다. 무관수, 무비료, 무농약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10년째 실천하고 있다. 괴산 치재의 블루베리 농장에서 나는 열매는 그런 삼무농사의 결정체다.
7년 전 방송대에서 퇴임했지만, 그는 여전히 방송대 사람이다. 명예교수로 출석수업도 하고, 인연을 맺었던 교수, 직원들과도 소통하고 있고, 의리 있는 제자들이 주변에 계속 머물러 있으니, 떠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내년이면 방송대 개교 50주년, 문 교수는 꼬박 33년을 방송대와 함께 했다.

“시골에 살지만 매주 오는 <KNOU위클리> 덕에 방송대 소식을 잘 접하고 있어요. 류수노 총장님이 중심이 돼 방송통신대법이 시행될 수 있게 된 것도 잘 압니다.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성과라고 생각해요. 예나 지금이나 방송대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대학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오늘과 내일의 대학이라고 봅니다. ‘노교수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웃음) 늘 방송대와 함께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그의 맑은 웃음소리가 괴산 치재 블루베리 농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