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명절, 자유를 허하라]


구스타프 슈바브(Gustav Schwab, 독일, 1972~1850),「구혼자들을 살육하는 오뒷세우스」, 1882.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가위를 즐겨왔다. 고된 여름 농사와 가을 추수 사이에 놓인 이 황금 같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농경으로 삶을 꾸렸던 그들은 지금까지의 수고를 자축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다가올 수확을 위해 기력을 모아야 했고, 그러려면 또 그만한 잔치와 놀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꼭 추석만 그럴까, 한식이나 단오 같은 명절들도 쉼 없는 노동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때마다 필요한 휴식과 충전을 잊지 않고 챙기려던 조상들의 혜안이었다.
옛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명절’은 즐거이 기다려지던 시간이었다. 수 많은 신들을 섬기던 사람들답게, 이들의 명절은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의 祝·祭였다. 예로, 매년 아테네 전체를 들썩이게 했던 ‘大디오뉘소스 제전’에서 시민들은 제사를 바친 다음, 비극경연을 관람하고, 술과 음식과 놀이로 흥성였다. 이 제전의 꽃이었던 비극경연에서 살아남은 보석들이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메데이아」 같은 기원전 5세기의 비극작품들이다.
축제와 잔치는 일상의 활력소일 뿐만 아니라, 고전 문학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했다. 전투장면이 무려 전체의 7할을 넘는 죽음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도 사람들은 틈틈이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며 잔치를 열고,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의 죽음조차도 고인을 추모하는 장례경기와 성대한 잔치로 장식된다. 「오뒷세이아」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잔치들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트로이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에 환상세계에 들어선 오뒷세우스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온갖 신기한 잔치를 경험한다. 생로병사의 굴레 아래에서 노동으로 일상을 삼고 살아야하는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난 환상세계의 종족들은 축제와 잔치를 일상으로 삼는다. 그런 세상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모든 도피처의 모습을 하고 오뒷세우스를 유혹한다. 의무의 망각, 고생 없는 삶, 영원한 잔치. 여신 칼륍소가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안할 때, 그 유혹은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배우고 변화해온 그는 현실의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를 열망하며,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한계도 분명하고 고생도 많은 인간 세계지만, 오뒷세우스가 자신의 인간다움을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곳도 인간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돌아온 고향에서 오뒷세우스는 자기 아내 페넬로페에게 4년째 구혼해오던 108명의 무리에게 화살을 퍼부으며 그들을 죽인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새해를 맞이하는 아폴론의 축제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 마지막 장면을 몹시 불편해하기도 한다. 인간의 가치를 몸과 마음에 새긴 영웅치고는 너무 무자비한 살육을 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 호메로스는 구혼자들의 행위가 죽음으로 씻어야 할 범죄라는 것을 작품 곳곳에서 일관되게 보여준다.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은 다른 어떠한 인간들과도 질적으로 다른 조건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마치 환상세계의 신화적 종족이라도 된 듯 잔치를 일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환상세계의 종족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누리는 풍요는 타인들에 대한 억압과 강제의 결과라는 점이다. 오뒷세우스의 재산을 축내며 잔치에 탐닉하는 그들은 모든 의무를 남들에게 전가하고, 혹독한 노동을 강요한다. 이렇게 약탈적으로 얻어낸 풍요를 일상으로 누리는 구혼자들은 결핍을 모른다. 그러니, 그들은 자기 삶을 이끌어줄 어떠한 원칙도 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스스로 신들의 지위를 차지하려 한다. 호메로스가 그리는 모든 인간들 중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지 않는 자는 이 구혼자들이 유일하다. 구혼자들이 누리는 수월한 삶,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향락, 이 모든 것은 사실 올륌포스 신들의 전형적인 존재 방식이며, 지상의 인간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낯선 삶의 방식이다. 구혼자들의 목적은 왕권도, 페넬로페와의 결혼도 아니고, 신들의 삶을 인간의 세상에서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금지된 욕망을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알아본 이가 오뒷세우스였으니, 그들은 아폴론의 축제일에 살육돼 기괴한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 구혼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뒷세우스가 부정하는 모든 것이다. 구혼자들은 마치 신과 같이, 자기만의 세상을 가질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도를 넘어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 조건의 연약함과 한계를 한사코 거부한다. 우리는 한편으로 오뒷세우스가 영생의 제안 앞에서 인간 조건을 영웅적으로 수락하는 것을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삶이 너무 수월하여 파멸하는 구혼자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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