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우리가 방송대다

50대 이상 연령대의 방송대 진학이 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못다 한 학업의 꿈’과 ‘지적 호기심 충족’을 위해서 방송대를 선택하고 있다. 늦깎이 공부가 결코 쉽지 않은데, 방송대를 선택한 이들에게 공부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위클리’ 100호 특집으로 마련한 커버스토리 주제는 ‘우리가 방송대다’이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생업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학문의 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누군가에게 또 다른 희망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만들어가는 학우들을 지면으로 초대했다. 1면에서는 부산 수영구 남천해변시장에서 13년째 생선 횟감을 팔고 있는 국어국문학과 3학년 최정혜 학우를 만났다. 2~3면에서는 방송대와 동행하고 있는 여덟 명의 학우를 줌으로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때때로 뒤늦은 선택은, 젊은 날 결단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후회를 더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용감한 결정이 될 수도 있다. 10년 투병 생활을 하던 남편을 한겨울 추위 속에서 영영 떠나보낸 이라면 슬픔에 겨워 누워있을 법한데, 최정혜 학우(국문 3, 65세)는 중학교 동창의 권유로 곧바로 방송대에 원서를 내고 2019년 3월 2일 국어국문학과 1학년으로 입학했다.
“2009년 뇌출혈로 쓰러져 10년을 병상 생활하던 남편이 2018년 12월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이가 쓰러진 뒤로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도 제가 뭔가 일을 해야 했죠. 친정아버지가 어선을 몰았기에 생선 파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몇 번이고 망설여지더라고요. ‘살생중죄, 금일참회’라고 배웠거든요. 그래서 다니던 절을 찾아가서 스님에게 묻고 또 물었어요. 그렇게 해서 주변 도움으로 친정 가까운 남천해변시장에서 활어를 팔기 시작했죠. 그게 벌써 13년이 됐네요.”

 


2학기는 전어철이 겹친다.
하루살이 생선인 전어에 더 집중해야 하니
공부할 시간이 또 준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두 번의 2학기를
잘 보냈기에 자신감이 생겨서다.


13년째 생선가게로 생계 꾸려
11남매 중 막내였던 최 학우는 친정어머니가 눈감기 전에 딸 시집가는 거 보겠다고 해서 선을 50여 차례나 봤지만, 결국은 그녀가 일하던 회사 거래처의 한 건실한 청년과 결혼했다. 26세 때였다. 결혼 생활은 순탄했다. 자가용으로 늦둥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절에서 봉사활동 하면서 기초교리와 금강경을 배우면서 행복한 삶의 순간을 누리고 있었다.
사업하던 남편이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최 학우의 인생길은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평소 병원 한번 안 가던 건강한 남편이었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회복이 쉽지 않았다. 5월에 쓰러졌고, 몇 달을 간병과 사업 뒤처리에 시간을 보내야 했다. 11월 15일, 그녀는 친정 동네인 남천해변시장 지하에서 작디작은 활어 좌판을 열었다. 아침 9시에 시장에 나와 밤 10시에야 ‘머리가 텅 빈 채’ 귀가하면, 아픈 몸의 남편이 눈에 또 밟혔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최 학우는 주변에서 ‘도전’을 많이 권유받았다. 30세 때는 열 살 위의 손윗동서로부터 ‘그 나이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겠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한 귀로 흘려들었다. 44세 때는 절에서 봉사하던 지인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면, 봉사활동 하기가 더 좋다’고 조언해줬지만, ‘지금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늦었다’라고 생각하면서 외면했다.

“무엇을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어요”
“53세에 가장이 돼 생업을 꾸려나갈 때, 10년, 20년 전의 그때를 생각해보니 무척 난감하고 후회되더라고요. 그때 했더라면…. 그런데도 생선 파는 10년 동안, 방송대 다니는 친구 강숙례(중문 4)가 하는 말에는 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참 웃기죠.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눈앞이 캄캄해졌을 때, 그때서야 친구의 말이 귀에 들어오더군요. 텅 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으로 방송대 공부를 해보라는 권유가 참 귀하고 아름다웠죠. 70세까지 천천히 배울 생각이에요. 무엇을 하든, 나이가 많다고 늦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평소 책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지만, 어학 과목에서 과락을 맞고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방송대 공부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는 “공부하기 전에는, 비오는 날이면 손님이 오나 안 오나 초조하게 기다리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비 내리는 날 손님 없는 시간에는 학과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맑은 날에는 손님이 많아서 돈 벌 수 있으니 둘 다 좋아졌어요”라고 귀띔했다.
그는 좌판에 앉아 짬날 때마다 교재를 들여다보고, 집에서 작성한 리포트를 다시 살펴보는 등 ‘짬짬이 학습’을 주로 활용한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13시간을 시장에서 회를 떠서 팔고, 전국으로 전복이며 활어 등을 택배로 보내니 ‘공부 절대 시간’이 모자랄 텐데, 그런 그가 어떻게 입학 후 휴학 한번 없이 계속 학업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최 학우는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활용’, 다른 하나는 학과 스터디인 ‘토마토’의 도움이었다. “시간이 많다고 공부가 잘 되는 건 아니더군요. 평소에 교재와 강의를 반복해서 공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매주 수요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스터디 모임을 했던 게 주효했어요. 다른 학우님들이 제 사정을 듣고 쉬는 날인 수요일(때로는 목요일에 쉰다)에 스터디를 잡았던 거죠. 학우님들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 학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스터디 학우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백 회장님, 미진 학우, 현숙 학우, 경선 학우, 광옥 학우, 은채 학우, 과 대표님, 수석부회장님, 영숙 학우, 영복 학우, 샤론…. 고마운 학우님들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습니다.”

주변 시선 이기고 자신감 갖고 공부
그렇다고 공부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일터인 시장에서 주변 상인들의 시샘은 보통이 아니었다. 회 떠주는 아주머니가 좌판에 앉아 공부를 한다? 남천해변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라도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제 가게에 손님이 많이 드시니까, 장사하려고 절에 가고 방송대 다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어요. 횟감 사러 오는 손님들이 공부하고 있는 저를 보고 제 가게를 더 찾기도 했거든요. 또, 기말시험 마치면 저희 스터디 학우님들이 또 단체로 와서 회식도 했고요. 그렇게 입소문도 나고 하니, 자꾸만 손님이 늘어났죠. 주변에서 다들 수군거리더라고요. 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방송대 공부를 끝까지 마쳐야 그들을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해 전보다 더 자신감을 가지고 여유 있는 ‘방송대인’이 돼 가고 있어요.(웃음)”
간호학과를 다니고 있는 둘째 아들은 지금도 엄마가 방송대에 진학한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혹시라도 공부하다 슬그머니 포기할까 싶어 친한 주변 분들에게 방송대 다닌다는 말을 했어요. 그 나이에 뭐하러 공부하냐, 그냥 쉬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분께서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응원하고 있어서,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인터뷰 중에도 그는 전복 상자를 싸서 택배를 보내거나, 전어를 사러 온 손님을 맞아 회를 뜨면서 연신 분주했다. 최 학우는 국문학과를 마치는 대로 방송대 농학과에 진학할 계획이다. 생선가게를 접으면 아는 스님이 계신 의령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농학이 제격일 거 같아서다. 
그의 가게 이름은 ‘웃음 소(笑)’, ‘맛 미(味)’, 무척 문학적이다. 실은 스님이 지어준 가게명이다. 어쩌면 최 학우가 자신의 인생길을 ‘웃음’ 가득 머금고 아름답게 달려가겠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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