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시린 에바디는 꿋꿋하게 자라는 한 포기의 클로버였다. 클로버는 땅 위로 내민 연약한 줄기와는 다르게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강인함이 있다. 그녀는 조국 이란에서 야만에 맞서 싸웠다. “나는 처음에 잘못 읽은 줄 알았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똑똑히 보았다. ‘다음 처형할 사람은 시린 에바디’ 바로 나였다.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글자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 우리는 함께 나의 처형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한 정보부의 암살 미수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 이에 정보부 장관은 라마단 기간 이후라면 언제든지 좋다는 답변을 보냈던 것이다. … 나의 피는 이슬람에서 살육을 허용하는 동물의 것이고 신이 인정한 것이었다.”―『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시린 에바디· 아자데 모아베니 지음,  황지현 옮김, 황금나침반, 2007) 중에서1980년에 판사직 박탈당해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시린 에바디(Shirin Ebadi,  1947~ )의 일생을 보면 엘리엇의 이 시가 떠오른다. 시린 에바디는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이며,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슬림계 최초의 인물이다. 1947년 6월 21일 이란 하마단에서 상거래법 교수인 아버지와 아름답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1남 3녀 가운데 둘째딸로 태어났다. 이란의 다른 가정과는 달리 딸·아들의 차별이 전혀 없이 자란 그녀는 테헤란대학교 법과대학을 거쳐 23세에 판사가 된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이란의 정치상황은 무참하게 치닫고 있었다. 1951년 국민의 지지 속에 총리에 선출된 국민 영웅 모하마드 모사데그가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이란의 사회정치 상황은 황무지처럼 변해 갔다.이 쿠데타로 모하마드 레자 샤 팔레비 국왕이 정권을 장악해 사리사욕에 따라 정치를 했는데, 결국 이 정권은 1979년 1월에 국민의 저항으로 종식되고, 그 해 4월 호메이니의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시작된다. 혁명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호메이니 정권은 여성들의 머리에 베일을 씌웠고, 에바디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1980년에 판사직을 박탈당했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에바디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법무부 조사국의 보조직을 지키며 버텼다. 이란의 형법 조항 중 여성의 생명이 지니는 가치는 남성의 절반이고, 법정에서의 여성 증언 역시 남성의 효력의 절반이었다. 여성이 이혼하려면 반드시 남성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조항들은 테헤란대학교 법학 교수들의 분노를 불렀다. 하지만 형법에 반대하는 자는 이슬람에 반대하는 자로 누구든 엄벌에 처해졌다. 피살된 대학생 변호하다 구금되기도이란을 비극의 땅으로 몰아넣은 큰 사건이 다시금 밀려왔다. 바로 1980년 9월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이란 침공이었다. 혁명 이후 사람들은 이란을 버리고 떠나가기 시작했다. 약 20년 동안 400~500만여 명의 이란인들이 조국을 등졌다. 에바디의 친구들도 거의 다 떠나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두 딸과 함께 조국을 지켰다. 테헤란에 공습이 있을 때도 잠시 피난을 갔을 뿐, 자신의 터전인 모국을 떠나지 않았다. 1988년 7월, 페르시아만의 미국 함대가 이란 민간 항공기를 폭파시킨 사건이 발생하면서 결국 이란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정전 결의를 수용하게 된다. 8년여의 시간 동안 50만 명이 목숨을 잃고 2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전쟁이 종식됐다. 1989년 6월 호메이니가 죽자 새로운 지도부는 사회적 제재를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풍속 단속 경찰인 ‘코미테’는 전 국민을 괴롭혔는데, 일단 자신들의 눈에 걸리면 어떤 죄목을 꾸며서라도 가만두지 않았다. 이란인들은 자신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코미테에 의해 공개적으로 체포되고 채찍질당하며 모욕을 겪었음을 기억한다. 여성들에 대한 잔인한 법률로 무자비하게 상처받은 여성들의 자살이 늘어났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1996년 여름, 생계를 위해 야생식물을 채집하던 11살 소녀 레일라가 세 남자에게 난폭하게 성폭행당하고 머리를 맞아 낭떠러지에 굴려져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인 남자들에게 사형이 구형됐으나, 희생된 레일라의 가족들은 이들의 처형에 대한 보상금으로 수천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가난한 가족은 결국 신장을 팔고자 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긴 의사에 의해 판결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났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변론을 하고 있던 에바디는 이 사건의 전모를 써서 잡지에 투고했고 잡지는 완전히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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